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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Feb 05. 2022

지키자, 평정심

말이 서툴러 글로 남긴다

며칠 전 점심 먹으러 갔을 때입니다. 테이블이 세 개뿐인 매장 안에는 사람이 북적였습니다. 주문도 잔뜩 밀려 있습니다. 사장님은 누군가 쉴 새 없이 통화 중이었습니다. 스피커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수의 목소리가 있는 힘껏 고음을 내뱉고 있었습니다. 그 틈에 있던 저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점심을 먹어야 했기에 사장님이 전화 끊기를 기다렸습니다. 두고 본 사장님은 침착했습니다. 끝까지 차분하게 통화를 마무리했고 여러 손님을 응대했습니다. 그걸 보고 생각했습니다. 장사를 하려면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아야 손님을 대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만약 평정심을 잃고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면 손님은 물론 가까운 사람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예로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를 생각해 봤습니다. 


둘째 채윤이는 호기심과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입니다. 열 달 만에 걷기 시작하면서 10살이 된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멈춤이 없었습니다. 거실에서 대여섯 걸음이면 닿는 자기 방도 토끼처럼 총총 다닙니다. 유일하게 멈추는 순간은 TV를 볼 때뿐입니다. 멈춘다고 가만히 있는 건 아닙니다. 요가를 하듯 몸을 이리저리 꼬으며 한 순간도 같은 자세로 보지 않습니다. 몸도 멈춤이 없듯 입도 쉴 새 없이 떠듭니다. 말도 일찍 터졌습니다. 언니를 보고 배워서인지 두 살 무렵부터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말과 행동에 에너지가 넘치는 채윤이를 당해낼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섯 살까지 장모님이 키워주셨고, 거기까지가 한계였던 것 같습니다. 클수록 통제가 안 되는 둘째를 뒤로 하고 원래 계시던 곳으로 짐을 싸 내려가셨습니다. 물론 아이 때문은 아닙니다. 그 정도 키웠으면 충분히 당신의 역할을 다 하셨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저와 아내가 채윤이를 전담해야 했습니다. 


말을 배우고 행동이 빨라지면서 호기심도 넘쳤습니다. 아이는 저를 필요로 했습니다. 몸으로 부딪히며 놀아주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우울한 시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둘이 벌어도 줄지 않는 빚,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업무, 수시로 결제해 달라고 아우성치는 거래처, 줄 돈 없다고 버티는 대표. 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제 자신이 싫었습니다. 더 나은 직장으로 옮길 자신도 없었습니다. 받아줄 곳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일로 받는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가면 아이들에게 시달릴 일은 없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고 들어가도 아이들과 놀아줄 여유는 없었습니다. 멍하니 TV만 봤습니다. 이런 제 상태를 알리 없는 채윤이는 제 옆을 떠나지 않고 끊임없이 신호를 보냈습니다. 눈치는 챘지만 받아줄 여유가 없다 보니 무조건 밀어냈습니다. 귀찮다는 표정, 짧은 대답, 어색한 미소만 보였습니다. 일종에 '더 이상 다가오지 말아 줄래'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아이는 이해할리 없습니다. 무작정 직진밖에 모를 때였습니다. 채윤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걸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는데 그 당연한 걸 몰랐습니다. 참다가 결국 폭발합니다. 영문도 모르는 아이는 제 반응에 놀랍니다. 마치 영화가 시작해서 화면 앞에 앉았는데 밑도 끝도 없이 결말만 나오는 꼴입니다. 그렇게 화를 내고 돌아서면 후회만 남았습니다. 찰나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화를 내고 나면 제 자신이 더 초라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직장에서도 무기력했던 저는 아이에게도 무능한 아빠일 뿐이었습니다.   


열 살이 된 채윤이는 여전히 에너지 넘치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태권도, 미술, 영어에 피아노까지 배우며 매 순간 열심히입니다. 집에서도 여전합니다. 몸집이 커지면서 몸으로 노는 건 줄었습니다. 대신 여러 재료를 활용해 다양한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자르고, 붙이고, 칠하고, 조립하는 능력이 나날이 발전 중입니다. 여전히 호기심이 많고 손재주도 늘고 있습니다. 그 사이 저에게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밤 10시, 채윤이에게 자라고 말하지만 뭉그적거리다 11시에 잠들기 일 수입니다. 먼저 자야 하는 걸 아이는 같이 자자고 저를 붙잡습니다. 내 감정만 생각했을 땐 뿌리쳤습니다. 너는 너, 나는 나였습니다. 잔뜩 기대하고 아빠를 찾았지만 저는 외면만 했었습니다. 요즘은 제가 먼저 찾기도 합니다. 몸이 피곤한 날은 채윤이를 꼬드겨 같이 자자고 합니다. 싫지 않은 눈치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멀어졌던 간격을 좁히려고 노력 중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채윤이는 늘 꼴등입니다. 먹다가 말하고, 말하다가 먹기를 반복합니다. 줄지 않는 밥을 보면서도 그냥 둡니다. 예전 같으며 닦달하며 빨리 먹으라고, 네가 다 먹어야 치울 수 있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제는 기다려줍니다. 다 먹고 일어나 빈 그릇을 치울 때까지 두고 봅니다.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일과 나를 분리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일로 인해 감정이 요동치지 않도록 조절 중입니다. 이해관계가 얽히다 보면 싫은 소리도 듣게 되고 원하지 않는 일도 해야 합니다. 평정심을 갖겠다고 주어진 일을 놓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일은 하되 일 때문에 내 감정이 휘둘리게 두지 않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휘둘릴 때도 있습니다. 대신 오래 붙잡지 않습니다. 인정하고 바라보고 다시 되돌아오길 반복합니다. 그런 노력이 두 아이를 대하는 태도로도 이어집니다. 일과 나를 분리하듯 아이의 행동을 한 발 떨어져 보려고 합니다. 무조건 잔소리를 하기보다 한 숨 참고 생각한 뒤 말하려고 합니다. 못마땅하다고 불같이 쏟아내지 않습니다. 아직 서툴지만 단편영화를 보여주듯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줍니다. 그사이 제 화도 누그러집니다. 5년 전과 가장 많이 달라진 건 맥락 없이 큰소리를 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불친절하게 결말만 보여주는 그런 영화는 더 이상 안 찍습니다.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게 돈독한 관계를 유지시켜준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생활 이전에 가족과의 관계가 먼저입니다. 가족이라고 소홀해서도, 부모이고 힘이 있으니까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됐습니다. 가족일수록, 부모일수록 평정심을 잃지 않아야 했습니다. 부모가 처음이라 그럴 수 있다는 건 한 번으로 족했습니다. 더 이상 핑계 뒤에 숨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히려 부모이니 더 배우고 노력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 자식 간에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은 부모가 더 빠를 테니 말입니다. 

몰려드는 손님, 시끄러운 음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화를 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았던 사장님처럼 저도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평정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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