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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Feb 14. 2022

고민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17살의 고민, 47살의 고민

'도시락 반찬을 얼마나 지켜낼 수 있을까?'

'1만 원 이면 당구 한 게임은 칠 수 있겠다.'

'중간고사는 시험기간에 준비해도 충분하겠지?'

17살, 이런 고민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 반찬, 네 반찬 가릴 것 없이 둘러 앉아 먹을 수 있는 게 좋았던 점심시간. 누가 무슨 반찬을 싸왔는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내 반찬을 내어주고 더 많은 반찬을 집어 먹는 게 점심시간 최대 고민이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당구장으로 모였습니다. 서로의 용돈을 공개하며 게임비를 준비하고 편을 모아 게임을 시작합니다. 의욕이 앞선 친구는 앞전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재승부를 외치기도 합니다. 상대를 바꿔가며 두어 시간 동안 승부의 장을 연출합니다. 일주일 3-4번 당구장을 가기 위해 용돈을 마련하고 아끼는 건 나랏 살림을 책임지는 그들 못지않게 치열했습니다. 

공부를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시험을 위해 따로 공부할 욕심은 없었습니다. 시험은 오전에 끝났고, 남은 오후 동안 다음 날 시험을 준비하면 충분했습니다. 시험을 앞두고 미리부터 공부하는 건 서로에 대한 배신행위였습니다. 반나절 공부로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서로 뭉쳤습니다. 각자 정리한 노트를 공유하지만 내용은 고만고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나절은 공부에 진심을 다했습니다.


47살, 지금은 어떤 고민을 갖고 있을까요?

'맞벌이로도 버거워지는 아이들 학원비'

'내년 만기가 돌아오는 전세 계약'

'승진, 연봉 인상 올 해는 가능할까?'

'대학원 수업을 듣는 아내 뒷바라지'

'본업 말고 부업을 위한 시간 투자'

'직장을 옮길지 말지, 이참에 전업을 할지 말지'

떠오르는 대로 적었지만 17살의 고민과는 비교도 안 됩니다. 아내와 둘이 벌어도 점점 늘어나는 아이들 학원비를 겨우 감당해 내고 있습니다. 오를 때로 오른 전세금, 계약 갱신 청구권을 이미 사용해서 내년에는 이사를 갈 수도 있을 것 같은 불길함. 승진, 연봉 인상은 언제 된다는 말도 없습니다. 이대로 조용히 넘어가면 그런가 보다 하고 아무 말 못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대학원에 마음만 있던 아내를 부추겨 덜컹 합격하고 나니 올 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이제야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은퇴를 위해 준비 중인 부캐. 본업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시간을 쪼개고 쪼개 보지만 늘 부족합니다. 그런 고민 끝에는 이직, 전업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47살을 기꺼이 받아줄 곳이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말입니다.     


17살의 고민, 그때는 그게 전부였습니다. 부모님의 고민을 알리 없었고, 내가 고민한 들 당신의 무게가 덜 어질리 없었습니다. 그저 눈앞에 재미만을 위해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친구와 놀기 위해 용돈을 마련하고, 폼나는 옷을 입고 싶고, 공부는 남들만큼만 하는 게 고민의 전부였습니다. 지금 고민과 비교하면 고민이라고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그런 고민이 17살 전체를 흔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철없이 반항도 하고, 부모님 몰래 일탈도 했었습니다. 부모님의 보호 아래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라 생각합니다. 

47살의 고민은 도망갈 틈을 주지 않습니다. 일탈은 꿈일 뿐입니다. 내가 손을 놓으면 고스란히 그 피해는 아내와 아이에게 돌아갑니다. 부모의 도움을 바라지도 못합니다. 무작정 내 사정을 봐달라고 회사에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부족한 능력을 그럴싸하게 포장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그랬다가는 지금까지 쌓아온 걸 한 순간에 잃을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압니다. 그렇다고 직장에만 목을 맬 수도 없습니다. 언제 내쫓길지 모르니 다음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말이 쉬워 준비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게 아닐 겁니다. 5년째 매달리고 있지만 월급 말고 한 달에 손에 들어오는 게 몇 천 원, 몇만 원이 전부입니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듭니다. 몇 번의 고비는 있었지만 지금 이만큼 해내고 있는 제 자신이 대견합니다. 무너졌지만 아내 덕분에 버텨냈습니다. 빡빡한 월급이지만 입고 먹고 생활하는 데 큰 불편이 없습니다. 벌이는 시원찮아도 월급 말고 수입을 만들어 냈다는 데 의미를 둡니다. 승진이 늦은 건 가늘고 길게 갈 수 있다는 희망이라 생각합니다. 아내도 대출을 받아 대학원을 갔지만 그 시간을 버티면 분명 한 단계 올라설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잠을 줄이고 시간을 쪼개가며 배운 것들이 누군가를 돕고 있다는 게 잘 살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종교는 없지만 이 말은 믿습니다. 누구에게나 시련은 감당할 만큼만 주어진다는 뭐 그런 말입니다. 감당하지 못했다면 이미 무너지고 포기했을 겁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포기는 선택지에 없었습니다. 두어 번 도망은 쳤지만 다시 돌아왔습니다. 도망 덕분에 정신 차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7살의 고민, 47살의 고민은 종류와 깊이가 다르지만, 그때에 맞는 고민이 있었기에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17살의 고민 덕분에 2,30대를 살아냈듯, 47살의 고민들 덕분에 남은 삶을 살아낼 수 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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