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정한 규칙
집.
저녁밥 먹고 책상에 앉습니다.
빈 화면을 쳐다보길 1시간 30분.
겨우 시작했습니다.
언제까지 써야 한다는 제한이 없습니다.
자리에 앉을 때부터 마음가짐이 다릅니다.
어떤 주제를 쓸지도 못 정하고
'생각이 나겠지'
막연하기만 합니다.
시간 강박이 없으니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 같습니다.
출근 전.
5시 반 집을 나섭니다.
자가용으로 15분을 달리면 현장 근처 맥도날드 매장에 도착합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받아 들고 자리에 앉습니다.
정해진 출근 시간은 8시.
주제도 없고
글감도 없습니다.
의식을 치르듯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틀고
빈 화면을 응시합니다.
새벽이라 집중이 잘 되는 건지,
음악을 듣고 있어 집중이 잘 되는 건지.
생각의 꼬리를 밟으며
주제를 좁혀 갑니다.
첫 줄을 시작하고 한 줄 한 줄 채워 가다 보면
어느새 7시입니다.
남은 시간은 30분.
시선은 화면에 고정하고
생각은 음악과 글을 오고 갑니다.
집중력을 끌어올려 봅니다.
겨우겨우 마무리합니다.
졸작이지만 마쳤다는 데 의미를 둡니다.
Time Limite
군대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하는 데
굳이 예를 가져와 보면,
2,30명이 자고 일어난 자리를 정리하는데
10분도 체 안 걸립니다.
잠자리는 물론 옷도 갈아입어야 합니다.
침상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는 것 훈련의 연장입니다.
보이지 않는 규칙이 그들을 움직이게 합니다.
무엇보다 정해진 시간이 있다는 건
몸을 움직이게 하는 강력한 동기가 됩니다.
출근 전
글을 한 편 쓰는 것도
스스로 정한 규칙 안에서 움직입니다.
규칙은 시간제한입니다.
규칙이 몸을 움직이게 합니다.
시간 때문에 어떻게든 마무리 짓게 됩니다.
공감받고 메시지를 전하는 글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부족한 필력 때문일 수 있고,
정해진 시간을 지키려다 보니 정성이 덜 들어갔을 수 있습니다.
한 가지 팩트는
시간을 많이 준다고 좋은 글이 써지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겨우겨우 시간을 지켜 써낸 글이나,
시간을 넘겨 꾸역꾸역 써낸 글도
결과물은 거기서 거기라는 겁니다.
물론 제 경우입니다.
그래서 저는
완성을 선택했습니다.
스스로 정한 규칙 안에서
스스로 정한 분량으로
한 편의 글을 매일 완성하는 것.
롯데타워는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건물입니다.
뼈대와 외장, 실내까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건물이 완성되어 과정을 되짚어보면
앙상한 뼈대는 볼품없었습니다.
고급 자재로 마감되기 전 실내는 거칠었습니다.
이곳저곳 기술자의 정성과 손길이 닿으면서
지금의 화려한 모습이 완성됐을 겁니다.
지금 쓰는 이 글들은
엉성하고 초라하고 볼품없을 겁니다.
살을 붙이고 마감재를 붙이며
그럴싸한 건물이 되어가듯
이런 표현 저런 문장을 써가며
읽어줄 만한 글로 완성되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건물은 정해진 계약기간 내 완성해야 하는 책임이 있지만,
글을 정해진 계약기간이 없다는 게 큰 차이입니다.
그러니 나 스스로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한 단계씩 완성해 가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