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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Feb 13. 2022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두 가지

어느 직업이나 사람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기 마련입니다. 상처는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유쾌한 감정이 아닌 건 확실합니다. 경력이 쌓이고 경험이 많아지면서 상처 주는 게 무뎌지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내뱉는 그런 사람입니다. 대개는 조직 내 서열이 높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일 겁니다. 전부가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그들도 조직과 개인의 발전을 위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긴 합니다. 지나친 충성심일 수도 있고, 애틋한 동료애일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만족할 수 없는 게 조직이고 대인관계입니다. 누군가는 총대를 매고 나서야 원만한 관계가 유지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과정에서 총대를 매고 나서는 사람도, 그들에 의해 마음의 상처를 받는 사람도 어쩌면 둘 다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상처 주는 사람 마음이 가벼울 리 없고, 상처받는 사람이야 더 말할 필요 없을 겁니다.


영국 의료 시스템에는 '완화의학'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영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학문이라고 합니다. 완화의학은 중증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완화의료를 담당하는 이들도 의사입니다. 일반 전문의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고 합니다. 말기 암 환자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전문의는 암의 상태에 따라 치료를 이어갑니다. 치료에 따라 호전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병세가 나아진다면 환자는 물론 가족도 안심하게 됩니다. 반대로 병세가 악화되면 가족은 물론 의사에게도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러다가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상태에 이르면 치료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말할 수는 없지만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옵니다. 이때 치료를 담당했던 전문의 대신 완화치료 전문의가 환자를 담당합니다. 환자와 가족에게 편안한 마지막을 책임지게 됩니다. 


팻은 삶의 끝자락에서 극도로 취약한 상태였다. 마지막 몇 시간을 최대한 편안하고 품위 있게 머물다 떠나려면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새벽녘에 찾아온 완화 의료팀은 전문 지식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어쩌면 마지막 순간에 더 정성껏 돌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완화 의료 팀의 엄무야말로 질병이 아니라 환자를 중심에 두는 의료 행위였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 레이첼 클라크


환자의 죽음 앞에 담당의사의 마음도 편할 리 없습니다. 곁을 지키는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은 의사를 원망할 수도 있고, 의사도 가족에게 서운할 수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무기력할 뿐입니다. 서로가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완화 의료 팀이 중간자 역할을 합니다. 마지막을 맞이하는 환자가 편히 갈 수 있게 모든 의료적 조치를 취합니다. 곁을 지키는 가족에게도 마음을 다합니다. 이들로 인해 그동안 진료를 담당했던 의사와 환자, 가족 모두 위로와 위안을 받습니다. 


사람 없이 살 수 없는 우리는 수시로 상처를 받게 됩니다. 상처를 받아도 누구에게 속 시원하게 털어 놓지도 못합니다. 터놓고 말할 대상이 없을 수도 있고, 말하는 행위가 익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상처로 인해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결국 관계도 균열이 생깁니다.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그전에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중증환자에게 완화 의료팀이 필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많은 사람이 마음의 안식과 치유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런 경험을 했기에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 직장을 다니며 받은 차별, 믿었던 이의 배신. 쌓이고 쌓였던 상처들이 곪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책을 집어 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며 나보다 더 아픈 상처를 만나고, 글을 쓰면서 내 상처를 들여다봅니다. 책에서 위로를 받고, 글에서 용기를 얻습니다. 그렇게 차츰 내 안의 상처도 완화되어 갑니다. 완벽하게 치료할 수는 없을 겁니다. 살을 짼 부위에 흉터가 남듯, 마음을 치료한 부위도 흉이 남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잘 아물어 가느냐입니다. 흉터를 없앨 수는 없지만 눈에 띄지 않게 만들 수는 있을 겁니다. 사람 사이에서 마음의 상처를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덜 아파야 할 겁니다. 아픈 부위도 빨리 치료하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감기를 빨리 낫게 하는 방법은 정해진 시간 같은 약을 반복해서 먹는 거라고 했습니다. 모든 치료가 마찬가지입니다. 처방받은 약을 매일 꾸준히 먹었을 때 아픈 부위도 낫게 됩니다. 사람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는 진단명도 처방약도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매일 스스로를 단련하는 겁니다. 매일 스스로 정한 분량의 책을 읽고, 매일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적어보는 것. 읽고 쓰는 게 상처는 물론 스스로를 단련하는 최고의 처방이자 예방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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