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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Feb 18. 2022

중학교 1학년,
책을 읽게 할 수 있을까?

책이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

핸들을 바로 하고 시동을 껐습니다. 눈앞에 아내로 보이는 실루엣이 아른거립니다. 차 쪽으로 걸어오는 걸 보니 아내가 맞습니다. 가방을 꺼내고 차문을 잠그고 아내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어깨에 손을 올리며 친한 척했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 나란히 서 제일 먼저 꺼낸 맛이 '저녁 뭐 먹지'였습니다. 밥은 새로 해놨다고 합니다. 반찬은 어제저녁에 거의 다 먹었습니다. 반찬을 새로 할 재료도 마뜩잖습니다. 그때 아내의 입에서 무심한 듯 "회 한 접시 할까"라고 합니다. 한 술 더 떠 "아이들 초밥 좋아하니 같이 시키면 되겠다"라며 저녁 메뉴가 결정되었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두 딸이 점심에 먹은 빈 그릇을 설거지합니다. 그 사이 아내는 단골 횟집에 광어 우럭 '중'을 주문합니다. 설거지를 마친 제가 아이들 먹을 초밥을 주문했습니다. 잠시 뒤 두 딸이 미술학원에서 돌아왔습니다. 저녁 메뉴를 묻는 큰딸에게 주문한 내용을 알려줬습니다. "아싸!"


회 한 접시와 초밥 한 접시를 두고 둘러앉았습니다. 저녁 메뉴 때문인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 두 딸이 재잘거립니다. 맛있는 음식은 사람의 기분을 들썩이게 하는 효과가 있는가 봅니다. 초밥 16피스 중 10피스를 먹은 큰딸은 만족해하는 눈치였습니다. 먼저 자리를 뜬 큰딸은 거실 TV 앞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봅니다. 무언가 찾는 눈치였습니다. 반주를 곁들이지 않고 회 먹는 걸 상상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익숙해지고 있지만 아내는 아쉬웠나 봅니다. 며칠 전 레몬소주를 직접 제조해보겠다며 사놓은 진토닉과 레몬, 소주를 꺼내옵니다. 머그잔에 얼음과 진토닉, 소주를 1:1로 넣고, 레몬 두 조각을 힘껏 짜 넣습니다. 비율이 안 맞는지 맛이 그저 그렇다고 합니다. 

"혼자 먹어서 맛이 없는 거 아닐까?"

"그런 것도 있지. 얼음도 녹고 소주가 덜 들어갔는지 조금 밍밍하다."

레몬 소주 한 잔과 남은 회를 부지런히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큰딸이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조심스레 말을 꺼냅니다.

"중학교도 들어가는 데 필통 하나 사주면 안 될까?" 

덕후까지는 아니지만 유난히 필통에 집착하는 큰딸입니다. 잠깐 생각을 하던 아내가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아내의 예상 못한 빠른 대답에 새로운 기회를 엿봤는지 또 다른 요구사항을 슬쩍 던집니다.

"폰케이스도 바꾸고 싶은데 그건 좀 무리인 것 같고, 액정 필름이라도 붙이면 더 오래 사용할 것 같은데."

"액정 필름 안 붙였구나. 그건 아빠가 사줄게."

평소 봐 뒀던 제품을 그 자리에서 검색했고, 슬쩍 제 것도 끼워 넣어 주문했습니다. 큰딸이 바라는 몇 가지를 십여 분만에 주문해줬습니다. 이때부터 아내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방학 동안 하루 한 권 읽기로 한 건 잘 지키고 있니?"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은 눈치입니다.

"아... 아니... 학원 숙제가 많아서......."

"공평하지 않은 것 같은데. 엄마는 네가 사고 싶은 거 다 해주는 데, 너는 엄마랑 약속한 것도 안 지키니 말이야. 룰을 좀 바꿔야겠는데."

아내는 그 자리에서 규칙을 정했습니다. 원하는 걸 사주는 대신 1만 원 에 책 한 권을 읽는 조건입니다. 이미 사고 싶은 걸 주문해 놓은 상태라 빼도 박도 못했습니다. 큰딸은 당황하는 기색이었습니다. 물리고 싶은 눈치였습니다. 아내는 더 몰아붙였습니다. 

"좀 전에 엄마가 주문한 금액이 5만 2천 원, 아빠가 산 게 1만 5천 원, 6만 7천 원이네. 그럼 반올림해서 7권 읽으면 되겠다. 한 권 읽을 때마다 하나씩 줄 거야. 그럴 수 있지? 말 나온 김에 지금 한 권 읽자."

큰딸은 못마땅한 눈치입니다. 딴짓을 하며 소심한 반항을 합니다.

"아빠 책을 왜 읽어야 돼?" 옳다구나 싶어 바로 받아쳤습니다.

"밥은 왜 먹니?" 

"배고프니까 먹지."

"몸이 건강해지기 위해 밥을 먹겠지? 책은 정신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읽는 거다. 책을 안 읽으면 나이 들어 정신이 황폐해진다."

단언하긴 했지만 속으로 뜨끔했습니다. 저도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2,30대를 책과 먼 일상을 살았었습니다. 마흔이 넘어 책을 들었고 읽으면 읽을수록 일찍 시작하지 못한 게 아쉬웠습니다. 그런 후회가 들 때마다 내 아이들에겐 조금이라도 일찍 책의 중요성을 알게 하고 싶었습니다. 억지로 될 수 있는 게 아니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 독서의 좋은 점을 슬쩍 흘리긴 하지만 잔소리가 될까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러다 어제 작정하고 필요한 이유를 말해줬습니다. 얼마나 이해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며칠 읽는 시늉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강제적으로 해서 될 게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습니다. 독서만큼은 스스로 하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을 겁니다. 제 자신도 그렇게 경험했습니다. 살아오면서 숱하게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마흔셋이 되어 다시 시도했고, 겨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를 통해 이루지 못한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 싶은 부모도 있습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게 사는 게 잘 사는 거라며 아이를 닥닥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아이를 위한 거라며 포장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들 나름의 교육 철학이니 무어라 할 수 없을 겁니다. 저는 아이의 인생에서 꼭 필요한 한 가지만 꼽으라면 단연 '독서'입니다. 책의 효용가치를 모르는 어른은 없을 겁니다. 다만 교육 철학이 다르고, 부모가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환경 탓에 독서의 중요성이 순위에서 밀렸을 거라 생각합니다. 부모는 자식이 안전한 환경과 올바른 교육을 받게 할 의무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바라는 모든 걸 다 해주면 좋겠지만 현실이 그렇지는 못합니다. 다양한 경험, 양질의 교육, 잘할 수 있는 취미, 좋아하는 특기. 하고 싶은 걸 하며 스스로의 인생을 살길 바라는 건 모든 부모의 바람일 겁니다. 저는 그런 부모의 바람을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도구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책만 손에서 놓지 않으면 아이는 스스로 바라는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스스로 책을 들었을 때만 바라는 게 선물처럼 주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입에 넣어줄 수는 있지만 씹어 삼키는 건 오롯이 아이의 몫일 테니 말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아이 앞에 좋아할 음식을 자주 다양하게 차려줘야겠습니다. 스스로 씹어 삼키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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