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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Apr 02. 2022

딸아, 기어코 집을 나가야 했니?

기어이 나가겠다고 버틴다.

말려도 듣지 않았다. 

낮부터 철저히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퇴근 후 마주한 큰딸은 어제의 모습이 아니었다.

앉혀놓고 회유를 시도했지만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내도 당근과 채찍으로 합세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3월 28일 24시, 큰딸은 집을 나갔다.


아내의 자가격리가 끝나는 날 신속항원 검사를 받았다.

두 딸을 데리고 검사를 받았고, 나만 양성 판정을 받았다.

양성 판정을 받고 마음으로 쾌재를 불렀다.

바통을 이어받아 한가로운 일주일을 보낼 줄 알았다.

내심 일주일 동안 무얼 할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물론 내색할 수 없었다.


격리 첫날, 아내는 출근 준비를 했다. 

두 딸도 등교 준비를 했다.

큰딸이 열이 난다고 한다. 

자가 키트로 검사를 했다.

희미하게 두 줄이 보인다.

일단 등교 중지, 아내가 퇴근하고 병원에 가기로 했다.

큰딸은 자기 방에서 격리에 들어갔다.

격리 중에도 밥은 먹어야 했다.

나를 위해 차려놓은 점심 밥상을 큰딸과 나누어 먹었다.

2인분으로 나누어 담아 각자 방에서 먹었고,

먹고 난 뒤 설거지까지 해놨다.

아이방을 수시로 오가며 상태를 확인했다.

결국, 큰딸도 양성이 나왔다.


큰딸과 자가격리 동지가 되었다.

나는 침대, 딸은 이불을 깔고 각자의 영역을 표시했다.

중학교 1학년 딸과 조금은 어색한 동거가 시작됐다.

하루 일과는 뻔했다.

눈 뜨면 아침밥 먹고, 약 먹고, 각자 할 일 하고

점심이 되면 밥 차려 먹고 약 먹고 다시 각자 할 일을 했다.

5일 동안 반복했다.

혼자 신나 하며 세운 계획은 계획으로 끝났다.

시계를 거꾸로 매달아도 시간은 흐른다는 군대 속담이 있다.

길었던 1주일도 결국 끝이 왔다.


큰딸은 격리가 해제되는 순간을 만끽하고 싶어 했다.

해제되는 날 12시 편의점을 찾는 건 격리자들 사이에 의식(?)이었다.

아내도 격리가 끝나는 날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사서 마시고 싶다고 했었다.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큰딸은 달랐다.

격리가 끝나는 그날 혼자 있는 낮시간 동안 준비하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씻지 않은 머리를 감고, 샤워도 마친 상태로 12시가 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퇴근하고 마주한 큰딸은 1주일 동안 봤던 모습이 아니었다.

저녁 내 협박과 회유를 했으니 나가지 않을 거라 믿고 먼저 잤다.

잠결에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어이 나갔다.


아내는 안방에서 둘째와 잤고, 나는 거실에서 잤다.

12시 40분, 아내가 먼저 깼다. 큰딸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잠옷 위에 후드티만 걸치고 트레킹화를 신고 찾으러 나갔다.

아파트 단지는 적막했다.

지나는 사람도 없었다.

가까운 편의점은 이미 문을 닫았다.

전화는 여전히 받지 않는다.

아내가 알려준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별일 없겠지, 별 일 생기면 어쩌지,

혼을 내야 하나, 아니다 잘 참았으니 이 정도는 봐줘야지.

여러 생각이 들수록 호흡도 조금씩 빨라지는 것 같았다.

1시쯤 전화가 왔다.

집으로 가고 있다고 태연하게 말한다.

멀리 친구와 오는 모습이 보인다.

잠옷에 후드티, 트레킹화를 신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방향을 틀어 아파트 현관에서 기다렸다. 


나는 딸과 가급적 부딪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날 일도 한참 그런 걸 하고 싶어 할 때라고 이해하려고 했다.

아내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같은 여자이고, 내가 모르는 둘 사이의 미묘한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도 아내는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둘 사이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감지될 때면 중간에서 난감할 때가 간혹 있다.

그때는 중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쪽과는 적이 되겠다는 의미이다.

상황에 따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게 지금으로써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다.

나도 살아야 한다. 

이 날은 큰딸의 잘못이 51%였다.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엄마에게 사과를 하게 했고, 아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격리당하는 경험도 생소하다.

학교 가는 게 즐겁다는 큰딸에겐 갇혀 지낸 일주일이 갑갑했을 테다.

원치 않는 전염으로 소중한 시간과 그동안의 경험을 잃게 되었다.

밤 12시, 해방감을 만끽하기 위해 편의점을 터는 건 자신에게 주는 보상이라 여기기로 했다.

이제 그 정도 판단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존중해주고 싶다.

별 일 없이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와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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