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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Apr 05. 2022

딸의 배신은
이제부터다

"공차 사주면 따라갈게."

"공차면 되겠어? 다른 건 먹고 싶은 건 없어?"

이 말이 나오고 집을 나서기까지 2시간이 걸렸다. 아내와 나는 옷만 갈아입으면 나갈 수 있는 상태였다. 두 딸은 그제야 머리를 감는다고 한다. 큰딸이 먼저 감으러 들어갔다. 기다리는 동안 낮잠을 잤다. 1시간쯤 자고 일어났다. 그 사이 머리를 다 감은 큰딸은 옷도 안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순한 양 1백 마리를 소환하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기다리는 동안 둘째는 다른 약속을 잡았다. 친구 만나러 도서관에 가겠다고 한다. 기껏 기다렸더니 친구 만나러 간다니, 또다시 순한 양 5백 마리를 불러내며 마음을 다잡는다. 


둘째는 친구 만나러 가고, 나와 아내, 큰딸 셋이서 외출했다. 목적지는 원마운트 내 '공차'와 '다이소'다. 순수한 마음에 따라나선 게 아니라 그런지 말이 없다. 큰딸의 마음은 먹고 싶은 음료수에만 가 있는 것 같았다. 농담을 건네도 반응이 없다. 10분 남짓 걸었지만 대화 다운 대화가 없었다. 마치 갑이 을에게 음료수 접대를 받는 것처럼 건조한 상태로 걷고 있었다. 한 번 말문이 막히니 딱히 무슨 말을 할지도 떠 오르지 않았다. 일단 음료수를 손에 쥐어주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날이 좋아서, 사람이 많아서, 공차엔 대기줄이 길었다. 음료수 한 잔을 손에 들기까지 30분가량 걸렸다. 기다리는 그 시간도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딸의 음료수 한 잔을 사기 위해 아내와 나는 멀뚱이 매장 안을 지켜야 했다. 눈으로 봐도 단맛에 뒷골이 아플 정도의 음료수를 손에 쥔 딸의 얼굴이 미소가 번진다. 한 입 들어가니 그제야 기분이 좋아지는가 보다. 다음 코스 다이소 향했다. 다이소는 사고 싶은 게 없어도 한 바퀴만 돌면 양손에 무언가 들려있는 신기한 곳이다. 큰딸은 이미 '다이소 덕후'가 되어 있었다. 살게 없다고 해놓고도 이미 한 손에 무언가 들려있었다. 2차 득템을 해서인지 기분이 더 좋아 보였다. 이쯤 되면 말을 걸어도 반응이 올까 싶어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때 딸에게 전화가 왔다. 같은 반 친구인 것 같았다. 곧 끊겠지 싶어 기다려줬다. 한 손에는 음료수, 한 손에는 전화기를 들고 이곳저곳을 오가며 통화에 심취해 있다. 전화를 끊길 기다렸지만 결국, 집에 오는 내내 통화만 했다. 아내와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고 말았다.


딸의 통화는 저녁 내내 이어졌다. 저녁을 먹으라는 외침에 그제야 통화가 멈췄다. 장장 3시간을 내리 통화하고 있었다. 윗입술 아랫입술에 자석이 붙은 마냥 입을 꾹 닫고 있던 딸이 그렇게 말이 많을 줄 몰랐다. 가끔 밥 먹을 때 이런저런 대화를 하긴 했지만 길어야 10분 내외였다. 엄마 아빠가 옆에 있어도 아랑곳 않고 통화만 하는 큰딸에게 개미 똥구멍만큼 배신감이 들었다. 벌써부터 덩치 크게 배신감을 느낀다면 나중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일부러 개미 똥구멍만큼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분명 크면서 더 많이 더 자주 배신감을 느끼게 될 걸  짐작하고 있다. 그때 멘털이 덜 나가려면 오늘 같은 일에는 의연해질 필요가 있다.


낮부터 저녁까지 이어진 통화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근데 딸, 밤 12시 넘어서까지 통화는 좀 아니지 않니? 요즘 기침이 잦아 일부러 거실에서 따로 잔다. 월요일 출근을 위해 11시쯤 이불속으로 기어들었다. 불을 끄고 잠이 오길 기다리는 데 딸은 여전히 통화 중이었다. 12시가 넘자 한 마디 했다. 

"아빠 잠 좀 자자."

끊을 것처럼 그러더니 무슨 말이 남았는지 그 뒤로 30분이나 더 이어졌다. 또다시 요구를 하면 짜증 내지 싶어 입을 닫았다. 잔소리 아닌 잔소리가 될까 싶었다. 이것 또한 시간이 갈수록 비슷한 상황이 더 자주 생길 테다. 내 기준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딸에겐 아닐 수 있다. 서로 다른 생각과 기준으로 인해 부딪히는 일이 다반사일 것이다. 그때는 아마 더 험악한 분위기와 거친 말이 오고 갈지도 모른다. 또 그때를 대비해 그 순간도 입을 닫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이미 여러 번 딸과 각개전투를 벌였을 수도 있다. 내 기준에 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여러 번 있었다. 아마 5년 전 내 성격이었으면 막말은 아니어도 듣기 좋은 말이 나오지는 않았을 거다. 나도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라 참고 참으며 속으로 삭이는 중이다. 그렇게 눌러놔야 더 큰 전투에서 힘을 잃지 않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내도 딸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말수가 적은 아내에게 전화기 붙잡고 몇 시간씩 통화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학교 1년, 소녀 감성에 친구가 좋아지는 때라고 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딸과 대화하고 싶다고 아무 말이나 시킬 수 없다. 대화는 상호작용이다. 내가 하는 말을 상대방도 받아주고, 상대방이 하는 말을 내가 받아주며 오고 가야 진정한 대화이다. 가족이니까 대화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윤활유 역할은 할 수 있다. 윤활유가 있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적재적소에 사용해야 윤활유도 가치가 빛난다. 어려서부터 가족 간에 대화가 자연스럽다면 커서도 거부감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사춘기, 중2병을 겪어야 할 두 아이에게 무조건 강요할 수만도 없다. 그저 적절한 때 알맞은 대화라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이어지길 노력하는 수밖에 없을 테다. 바람이 있다면 두 딸의 인생에서 정말 힘든 순간이 찾아왔을 때 엄마 아빠를 찾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엄마 아빠의 존재를 도장 찍듯 마음에 새겨주는 노력도 필요할 것 같다. 어설픈 손재주로 만드는 음식을 사이 두면 그래도 대화가 오고 간다. 그래서 요리를 통해 아이들 쿠폰북에 아빠라는 도장을 찍어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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