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Apr 14. 2022

스타벅스 닉네임이 가르쳐 준 것

웃는 아빠가 되려고 합니다

"닉네임 '귀신꿍꼬또'님, 주문하신 따뜻한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닉네임 '반지하의 제왕'님, 주문하신 아이스 카페라테 나왔습니다."


스타벅스는 매장에서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미리 주문해놓고 바로 받아갈 수 있게끔 어플로 만들었습니다. 이때 주문자의 이름을 닉네임으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이 기능을 시작하고 매장에는 웃지 못할 일이 자주 생겼다고 합니다. 일부 손님은 부르기 민망하거나 거친 표현을 닉네임으로 설정해 직원을 당혹게 했다고 합니다. 가령 '왕밤빵', '우루쿵쿠우웅' 등 익숙하지 않은 표현을 사용하는 겁니다. 그래서 해당 기능 안내문구에 '미풍양속 및 사회통념에 어긋나는 부적절한 표현'을 삼가 달라고 적어놓았습니다. 


엊그제 10분 글쓰기 멤버 분께서 감사한 선물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동안 많이 배웠다며 고마움의 표시로 '스타벅스 기프트 카드'를 보내주셨습니다. 카드를 사용하려면 어플에 로그인해 등록을 해야 했습니다. 그동안 잠자던 어플을 다시 깨웠습니다. 오래 사용하지 않아 업데이트가 필요했습니다. 업데이트를 하고 카드를 등록하니 닉네임 설정 메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혼자 상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귀신꿍꼬또님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를 외치는 직원의 모습을 상상하며 혼자 웃었습니다. 별일 아닐 수 있지만 그 순간은 왜 그리 웃겼을까요? 버스 안에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킥킥대며 웃었습니다. 살다 보면 아주 가끔 별 일 아닌 상황에 꽂혀 혼자 신나서 웃는 그런 경우 있을 겁니다. 상대방과 다른 웃음코드로 혼자 신나서 웃다 보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그때는 아무리 말려도 멈추지 못합니다. 스스로 진정이 되어야 그제야 멈춥니다.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주변에 사람이 적어서 이상한 놈 취급은 받지 않았습니다. 웃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웃어본 적이 있었나? 

    

TV를 봐도 소리 내 웃지 않습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정도입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는 장면이라면 타이어 바람 빠지는 소리처럼 피식피식 웃는 게 전부입니다. 살면서 가장 많이 웃었던 적은 두 딸이 태어나서 품 안에 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때 묻지 않는 미소 한 방이면 머릿속이 하얘질 만큼 즐거웠습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동작을 보며 입꼬리는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올라갔습니다. 옹알이를 지나 '엄마 아빠'를 부를 땐 세상 걱정이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유치원을 가고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생이 되니 웃음 주는 일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나마 철이 덜 들고 매사 긍정적인 둘째 덕분에 자주 웃기는 합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딸이 어릴 땐 그들 덕분에 웃었다면, 아이들이 클수록 내가 웃어야 건강한 관계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춘기도 지나고 입시를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야 할 겁니다. 그럴수록 가족과는 웃을 일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점점 날을 세우게 됩니다. 날이 선 검끼리 부딪히면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남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산 부모가 한 발 물러나는 게 맞을 겁니다. 그때 필요한 게 웃음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보낸 웃음 덕분에 즐겁게 살았다면, 이제는 부모가 웃어 보이며 힘을 주는 겁니다. 물론 쉽지 않을 겁니다. 웃을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을 겁니다.


우리는 언제고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겠다고 결심할 수 있다. 우리의 태도는 단 한 가지, 우리의 생각으로 이뤄져 있다. 그걸 바꾸면 당신의 세계가 바뀔 것이다. - 《스톱 씽킹》 리처드 칼슨


웃지 않고 살았다면 웃겠다고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생각한 대로 행동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내가 어떤 태도를 갖겠다고 결심하면 행동이 되고 삶이 바뀔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봐야겠습니다. 실없는 사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웃어줘야겠습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더 나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면 충분히 시도해볼 만할 겁니다. 웃으면 나도 건강해질 겁니다. 이거야 말로 '일거양득', '일타쌍피', '쌍쌍바', '짬짜면' 아닐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운동 맛 좋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