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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Apr 15. 2022

정답 없는 자식 교육,
정답 찾아 삼만리

자식 때문에 싸운다는 게 이런 거였구나.


7시 반, 네 식구가 모였다. 모이기는 했지만 아내는 예외였다. 목요일은 수업이 있어서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저녁 식사 준비는 내 몫이다. 아내는 퇴근길에 아이들 먹을 간식으로 붕어빵과 한 입 닭강정을 사 왔다. 밥을 준비하기도 전에 두 딸은 간식으로 배를 채웠다. 냉장고를 봐도 반찬도 마뜩잖고, 아침밥으로 먹다 남은 김밥이 있었지만 아이들이 싫다고 한다. 핑계 삼아 배달앱을 켰다. 간식으로 닭을 먹었으니 연장으로 치킨 한 마리 먹자고 제안했다. 마다할 아이들이 아니다. 큰딸은 거기에 더해 비빔면을, 둘째는 냉면을 먹고 싶다고 한다. 비빔면은 사놓은 게 있었지만 냉면은 없었다. 둘째를 달래 냉면을 포기시키고 비빔면으로 갈아타게 했다. 주문으로 해놓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아내의 PPT를 수정했고, 둘째는 TV를, 첫째는 친구와 카톡 중이었다. 


치킨이 도착하고 비빔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준비가 다 될 즈음 보민이가 잠깐 친구를 만나러 갔다 와도 되겠냐고 묻는다. 30분만 보고 오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이때는 몰랐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셋이 뽀로로 밥상에 모여 치킨과 비빔면을 먹었다. 분위기 좋았다. 둘째가 언니의 비빔면을 먹고 싶다고 하자 기꺼이 내어주는 훈훈한 모습도 연출되었다. 큰딸이 자기 먹을 걸 내어준다는 건 기분이 좋다는 의미이다. 보민이는 나갈 시간이 될수록 먹는 속도가 더뎠다. 반이나 남긴 체 자리를 일어나 친구 만나러 나갔다. 남은 자리를 정리하고 나도 내 할 일을, 둘째도 숙제를 시작했다. 


아내는 10시가 넘어 거실로 나왔다. 나도 듣고 있던 강의가 끝나갔다. 집을 한 바퀴 둘러보고 큰딸이 집에 없는 걸 알고부터 아내의 태도가 달라졌다. 아내를 위해 따로 시켜놓은 치킨 반 마리를 먹으며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몇 조각 먹지 않고 덮었다. 아마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했나 보다. 아내는 차분하고 둔탁하고 짧게 한 마디 했다. 

"요즘 너무 오냐오냐 해주는 거 아니야?"

그랬다. 내 딴에는 사춘기 딸과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방법으로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는 중이었다. 아내 몰래 먹을 것도 사주고, 용돈도 주지만 결국 아내도 다 알게 된다. 타박을 주기보다 아내도 내 노력을 인정해준다. 아내는 잔소리를 선택했다면, 나는 어설픈 보호막이 되어주려고 했다. 얼마 전 격리 해제하는 날 밤 12시에 나가겠다는 것도 아내는 말렸다. 반대로 나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결국 그날도 늦은 귀가로 아내의 심기를 건드렸고 잔소리를 들었다. 주의를 줬지만 똑같은 행동으로 또 아내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 그 화살을 제일 먼저 내가 맞았다. 


딸도 이해 못 하겠고, 나도 이해 못 하겠단다. 나가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늦으면 늦는다 연락도 안 하는 큰딸, 늦어도 손 놓고 있는 아빠, 둘 다 이해 안 된단다. 내가 너무 느긋한 건가 생각했다. 이런 일에 엄하게 대하는 게 맞을까? 그런 모습도 필요할 테다. 한편으론 총대를 맨 아내가 먼저 잔소리를 할 텐데 나까지 나서서 거드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딸에게 잔소리하는 아내를 말리지 않았다. 말리면 더 큰 화살을 맞을 것 같았다. 일단 상황을 두고 봤다. 아내도 처음은 거칠게 몰아붙였다. 시간을 두고 조금씩 삭히는 눈치였다. 아내도 고민이 된다고 말한다. 한편으로 조금의 자유를 허락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지만, 적어도 이런 식의 자유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버릇이 잘못 들까 걱정이라고 한다. 친구를 만나는 건 좋지만 늦게까지 다니는 건 이해 못 할 것 같다고 한다. 여러 감정이 드는 것 같았다. 내 생각을 말했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내 생각은 이상적이라고 한다. 언제까지 태연하게 모든 걸 다 받아줄 수 없다며 단호했다. 나도 어느 정도 구속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그게 어느 시점부터 인지가 중요할 것 같다. 내 기준에 적어도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아내의 잔소리를 받아내고 있는 보민이의 모습을 봤다. 입은 닫고 눈만 껌뻑였다. 불만 가득한 표정이다. 보민이도 엄마의 반응이 마음에 안 들 수도 있다. 뭘 그 정도 갖고 그렇게까지 하냐고 속으로 그럴 수도 있다. 다만 내색을 안 할 뿐이라 생각한다. 똑같은 상황이 시간이 더 지난 뒤 생긴다면 그때는 서로 진검승부를 하지 않을까 싶다. 바짝 날을 세운 체 등 뒤에 숨겨 둔 칼을 빼들고 말이다. 제발 그런 상황이 안 생기길 바랄 뿐이다. 


내 역할에 대해 생각이 많다.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마냥 딸 편에 설 수만도 없고, 그렇다고 아내를 옹호하며 딸과 등을 질 수도 없다. 딸을 믿고 지지해주는 아버지의 태도가 자식을 올바르게 키운다는 건 여러 사례를 통해 알고 있다. 하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어디까지 믿고 지지해줘야 할지도 의문이다. 정답이 없다는 자식 교육, 풀리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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