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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May 08. 2022

둘째야! 기대를 채워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마음이 편한 일을 하라

토요일 오후 2시, 혼자 남았다. 흔치 않은 기회다. 아내와 딸, 4시에 다시 모이기로 했다. 서둘러 가방을 챙겨 동네 단골 카페로 향했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둘째는 잘 다녀오라는 인사도 건넸다.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켜고 퇴고 파일을 실행시킨 뒤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1시간 반이 남았다. 적어도 두 꼭지는 수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켰다. 익숙한 음을 들으며 원고와 마주했다. 늘 출발은 쉽지 않다. 잠시 망설이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다. 몇 글자 손을 보면 한 줄씩 고쳐간다. 20분쯤 지났다. 전화가 온다. 둘째였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아무도 없어서 전화를 했단다. 당연히 없지. 둘째는 3시 반까지 놀다 오겠다면 나갔다. 30분도 못 놀고 돌아왔고, 이유를 물으니 친구가 할머니 집에 가야 된다고 했단다. 뒤로 이어질 대화가 짐직됐다. 둘째는 분명 다시 나가겠다고 말할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혼자 있기 심심하다면 킥보드를 끌고 엄마가 있는 미용실로 가겠단다. 가봤자 할 일이 없다고 설득해봤지만 씨알도 안 먹힌다. 집에 있으라고 했지만 말을 안 듣는다. 엄마와 통화해보고 알려주겠다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내와 통화해도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생각해봤다. 둘째와 약속이 생각났다. 둘째가 놀러 나가지 않았으면 자전거를 수리하러 가기로 했었다. 몇 주 전부터 자전거를 고쳐준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에게 보내 애물단지가 되느니 나와 같이 자전거를 고치러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한편으로 글을 쓰는 시간도 지키고 싶었다. 혼자 집에 있으라고 반 강제로 말해버리면 둘째도 어쩔 도리 없다. 하고 싶은 걸 못하게 된 둘째는 분명 TV를 보거나 스마트 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을 거였다.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가방에 다시 쓸어 담고 집으로 향했다.


나를 본 둘째는 엄마에게 가도 되냐고 묻는다. 대답 대신 자전거 고치러 가자고 말했다. 표정이 밝아진다. 베란다에서 먼지 쌓인 자전거를 꺼냈다. 앞뒤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 탈 수 없는 상태였다. 다행히 굴러는 갔다. 자전거를 이끌고 집을 나섰다. 얼마 전 새로 오픈한 자전거 매장으로 향했다. 채윤이에게 자전저는 이미 다 고쳐진 상태였다. 자전거 탈 상상을 하는지 들뜬 표정이었다. 한편으로 고장 난 자전거를 끌고 가는 내가 안쓰러운지 자기 쪽 손잡이를 꼭 붙잡고 따라왔다. 걷기 불편했지만 말리지 않았다. 자기도 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10분을 걸어 매장에 도착했다. 같은 규격의 타이어를 취급하지 않는단다. 돌아 나오는 데 둘째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길 건너 다른 매장이 있다고 알려주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여전히 자기 쪽 손잡이를 잡고 따라 걸었다. 다시 10분을 걸었다. 열린 문으로 자전거를 들고 들어가 물으니 같은 답을 한다. 허탕이었다. 대답을 들은 채윤이는 울기 직전이었다. 마침 엄마에게 전화가 왔고 자전거를 고칠 수 없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아내도 대충 상황을 파악했는지 다음에 새것으로 사주겠다고 말한 것 같았다. 채윤이도 실망했지만, 미리 알아보지 않고 헛 걸음 한 나 자신도 실망스러웠다. 몇 주를 끌어온 약속은 결국 지키지 못했다.


집으로 가는 길, 자전거는 여전히 거추장스러웠지만 마음 한 편은 가벼웠다. 만약 자전거를 고치러 가지 않고 나는 나대로 둘째는 둘째대로 있었다면 내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 같다. 글을 쓰겠다고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어도 집중이 안 됐을 터였다. 결국,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했지만 적어도 마음은 편했다. 


결정에 앞서 결과에 대해 여러 가정을 하게 된다. 수많은 가정을 한다고 해도 행동하지 않고는 결과를 알 수 없다.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겨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는 선택의 순간을 가볍해주는 유일 방법이 하나 있다. '내가 내린 결정에 내 마음이 편한가'이다. 바꿔 말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 결정이라면 적어도 내 마음은 편할 수 있다. 마음이 편하면 결과에도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모든 선택이 최상의 결과를 가져다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드물다. 또 내 선택에서 의해 상대방도 즐거우면 좋겠지만 그런 일 또한 드물다. 최상의 결과, 상대방도 만족하는 선택, 이런 건 차치하더라도 내 마음이 편한 결정을 내린다면 적어도 '탓'으로 인해 서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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