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May 27. 2022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

'3년 만에 '생존 보고회' 자리를 마련하니 많은 참석 바람.'


생사를 확인하겠다는 반 억지 핑계로 모임을 갖는다. 3년 동안 얼굴 볼 기회가 없었다. 경조사에도 온라인으로 인사만 전했다. 세네 명씩 단출한 만남을 가진 게 전부였다. 언제나 마지막 인사는 같았다.

"코로나 풀리면 다 같이 만나자."

끝날 것 같지 않던 코로나 시국도 뮤지컬의 화려한 피날레처럼 끌어 올랐다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다시 일상으로'를 여섯 글자를 조심스레 세상에 꺼냈다. 사람들은 그 말만 기다렸다는 듯 꽉 잰 허리띠의 옆구리 살처럼 쏟아져 나왔다. 우리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말이 나오고 시간차 없이 곧바로 장소와 시간을 공지했다. 반응이 뜨거울 거라 예상하지 않았고 예상은 맞았다. 웬만해서 변하지 않는 게 사람이라 했다. 몇몇 만 들떠 보였다. 반응하고 적극적인 절반, 반응 없고 소 닭 보듯 조용한 절반. 대꾸도 없는 절반에는 오래전부터 익숙하다. 일일이 반응해봐야 나만 피곤하다. 대꾸하지 않아도 올 놈은 오고 대꾸해도 안 오는 놈도 있으니 말이다.


17살, 같은 고등학교 같은 과에 입학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졸업할 때까지 치열하게 놀고, 아낌없이 놀았다. 추억의 99퍼센트 놀았던 순간뿐이다. 당구장, 노래방, 호프집, 중국집, 보라매 공원, 서울랜드, 노량진, 동대문, 대방동, 영등포, 다양한 곳에서 많은 사건이 있었다. 동대문에 옷 사러 갔다가 삥 뜯기고, 당구장 갔다 경찰에 잡혀 반성문 쓰고, 보라매 공원에서 단체 미팅, 서울랜드 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노량진 학원가에서 공부 대신 만화책만 봤었다. 사춘기를 같이 보내 추억으로 27년을 끈끈하게 이어왔다. 그 사이 한 가정에 가장으로, 직원의 생계를 책임지는 대표로, 이름만 들어도 아는 건물 인테리어 시공 소장으로, 조직 안에서 임원으로 팀장으로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는 냉철하고, 꼰대스럽고, 나름 아우라를 갖고 있다. 그래야 자리를 지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다 같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17살 그때로 돌아간다. 여전히 먹는 걸 밝히고, 야한 농담을 즐기고, 거친 욕을 편하게 내뱉는다.


일 년에 한두 번 모였다. 대개 퇴근 후 만난다. 하루 동안 단소리 쓴소리 다 받아내고, 먼지와 땀이 범벅되고, 화나고 짜증 나고 엿같은 감정이 쌓인 채로 한 자리에 모인다. 한 명 두 명 빈자리가 채워지면서 기억도 감정도 17살 그때로 돌아가는 것 같다. 27년째 반복하는 이야기지만 할 때마다 처음인양 깔깔대고 웃는다. 40년 넘게 밥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먹고, 마시며 한바탕 떠들고 나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잠잠해진다. 말수가 줄고 취기는 오르지만 에너지는 충만하지 싶다. 그렇게 웃고 떠들면서 엿같은 감정도 씻어내고, 먼지와 땀도 닦아내고, 단소리 쓴소리도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내 헛소리도, 넋두리도, 고민도 다 받아주고, 말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있기도 하다. 아마 함께한 세월의 힘이 아닌가 싶다.


오래 만났지만 불편한 사람이 있다. 오래 만나도 늘 새롭고 설레는 사이가 있다. 친구는 당연히 후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같은 친구라고 해도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도 중요하다. 나에게 27년 지기 친구는 인생의 절반을 함께 나눈 사이다. 돈이 없어 힘들었던 시기, 직장을 잃고 방황했던 때, 가족을 꾸리고 가정을 건사하는 지금, 희로애락이 모두 담긴 사이다. 모임이 있거나 경조사가 있을 때만 찾게 되지만, 그때마다 함께해 주는 친구가 있어서 감사하다. 어쩔 수 없이 떨어 지낸 3년의 애틋함을 오늘 저녁 남김없이 쏟아붓고 싶다. 나만 이렇게 들뜬 건 아니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둘째야! 기대를 채워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