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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14. 2022

곁에 있어서 고마운 존재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그 음악을 내 귓가에 속삭여 주며 아침햇살 눈부심에 나를 깨워줄 그런 연인이 내게 있으면~~'

이 가사가 귀에 익숙하다면 저와 비슷한 세대를 살았던 분이라 짐작해봅니다. 1994년 프로젝트 그룹'마로니에'가 1994년 발표한 <칵테일 사랑>이라는 곡입니다. 이 노래 가사에 나오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매일 듣습니다. 가만히 듣다 보면 귀에 익은 악기 음도 있지만 바짝 신경을 써야 들리는 악기 소리도 있습니다. 곡이 연주되는 동안 각각의 악기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시간의 빈틈을 메워줍니다. 들리지 않는다고 대충 연주하지 않을 겁니다. 정확한 타이밍에 정해진 음을 냈을 때 곡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각자의 역할을 해냈을 때 다른 악기 연주자도, 지휘자도, 청중도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늦은 밤 카톡이 바쁩니다. 30년 지기 친구입니다. 찐하게 한 잔 마신 친구가 집에 가는 차 안에서 보고 싶다며 문자 주사를 날리는 중입니다. 오타 섞인 글이지만 섭섭함이 절절하게 묻어났습니다. 우리 네 명은 20대부터 함께 했습니다. 한 주에 한두 번은 만날 정도 서로에게 애정이 깊었습니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서로 나누어 가졌고, 연애 고민에는 앞 다투어 잔소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가정을 꾸리기까지 쓴소리 단소리를 무한 반복하는 애정도 과시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서로 친구가 되길 바라며 자주 만남을 이어갔습니다. 마흔이 넘고 아이도 자라고 직장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다 보니 만나는 횟수도 줄었습니다.  그러다 한 친구가 강진으로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터를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몸이 멀어지는 게 아쉬웠지만 잘 살기 위한 선택이니 응원해주었습니다. 또 한 친구는 스무 살에 시작한 일을 마흔일곱인 지금도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주말도 없이 일만 합니다. 조르고 졸라야 겨우 얼굴 한 번 보여주는 친구입니다. 그리고 저는 5년 전부터 책 읽고 글을 쓰면서 만날 기회를 스스로 자제해 왔습니다. 술을 마신 친구와는 10분 거리에 살지만 자주 만나지 못했습니다. 6개월 전 술을 끊으면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술기운이 묻어나는 글자는 저에 대한 서운한 감정도 담겨 있었습니다. 퇴근 후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마시는 게 기계 부품 같은 일상에 빈 틈을 주는 낙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빈틈이 보이지 않는 저에게 먼저 연락하는 게 부담된다고 했습니다. 


다른 친구와 주고받는 문자를 가만히 두고 봤습니다. 무슨 말로 끼어들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아무 말 못 하고 창을 닫고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열어봤습니다. 마음이 더 무겁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매일 열심히 살지만 잘 사는 건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친구가 필요할 때 무작정 달려간다고 좋은 친구, 잘 사는 삶은 아닐 겁니다. 그렇다고 친구가 나를 필요로 할 때조차 나만 생각하며 외면하는 것도 잘 사는 삶은 아닐 겁니다. 둘의 균형을 맞추며 사는 게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서로에겐 눈치를 봐야 하는 가족도 있으니 말입니다. 서운한 감정이 드는 건 비단 한 번의 술자리를 갖지 못해 생기는 건 아닐 겁니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서운한 감정이 들지 않게 미리 행동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만나지 못한다면 자주 연락이라도 주고받는 것도 방법일 겁니다. 평소 연락이 뜸하던 친구에게 사정이 생겨 전화를 하려면 망설여지게 됩니다. 내 잇속만 챙기려고 연락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만약 평소 아무 일 없을 때도 안부 전화하고, 실없는 농담 몇 마디 주고받았다면 아마 덜 미안할 겁니다.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건 바쁘다는 핑계를 방패 삼아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함은 아닐까요? 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친구뿐 아니라 어머니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마음만 있을 뿐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들도 일상이 있기에 저에게 대단한 걸 바라지는 않을 겁니다. 그저 서로를 생각하고 있다는 걸 표현해 주는 게 전부일 겁니다.         


소리가 도드라지지 않는 악기도 제 역할을 했기에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 수 있습니다. 내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것 중 사람, 특히 친구의 존재는 특별할 겁니다. 있는 듯 없는 듯해도 그들의 존재만으로 마음 한 편이 든든해집니다. 오랜 시간 많은 걸 함께 하며 서로의 곁을 지켜왔습니다. 오래 많은 걸 함께 했다는 게 오히려 서로를 당연하게 여기게 된 건 아닐까 생각 듭니다. 잘 들리지 않는 악기 소리도 제 음을 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당연한 게 없다는 의미입니다. 친구라는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하게 생각하면 정작 내가 필요할 땐 곁에 없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때 가서 후회하기보다 연락이라도 자주 하며 지내야겠습니다. 마른 정신에 실없는 농담이 소주에 취해 무슨 말인지 모르며 던지는 말보다는 나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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