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직장생활 목숨 걸지 마라
루이스 분은 서글픈 인생을 요약하는 세 마디로, “할 수 있었는데”, “할 뻔했는데”, “해야 했는데”라고 말했다. 새로운 시도 앞에서 주저하고 망설이면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의미이다. 돌이켜 보면 아홉 번의 이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시도하길 주저하고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스물여섯 살에 첫 직장을 가졌다. 그때까지 사회 경험은 아르바이트가 전부였다. 직장에 대한 개념과 경험이 없다는 건 흰 종이나 마찬가지였다. 내 마음껏 무엇이든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는지 몰랐지만 일단 뛰어들었다. 한편으로 나를 이끌어주는 형에 대한 믿음도 한몫했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으로 도전을 선택했다. 하지만 넘치던 열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세상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고시원을 새로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고, 공사 현장에서 하는 일을 할 거라 각오는 했지만 맞닥뜨린 현실은 달랐다. 형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할 공사마저 직접 하겠다고 욕심을 부렸고, 나를 비롯한 다른 직원은 못 마땅했다. 매일 자재를 나르고 삽질을 하고 청소를 하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 손이 부족해 사람을 쓰자고 했지만 형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날이 계속되었고 서로 지쳐갔다. 불만이 불만을 낳으며, 결국 일부는 공사가 끝나기도 전에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벗어나고 싶었지만 인정에 이끌려 결국 눌러앉았다. 그때의 선택을 시작으로 무려 4년 반을 함께 했다. 중간중간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땐 다른 직업을 찾기도 했지만 또다시 스스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분명 다른 기회가 주어졌고 새로운 직업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서른 살, 이번에는 제대로 된 직장을 얻었다. 대학 졸업장도, 전공도 달랐지만 친구의 도움으로 새 직업과 직장을 갖게 되었다. 모든 게 생소했다. 여러 명이 한 공간에 모여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하는 모습에서 두려움부터 들었다. 과연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나이만 먹었지 실무 경험도 없어서 시키는 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어리바리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낙하산으로 들어왔지만 낙하산이라는 꼬리표는 달고 싶지 않았다. 내려놓을 것도 없었지만 바닥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마음먹은 대로 행동한 덕분인지 성과는 빨리 나왔다. 묵묵히 노력하는 모습을 좋게 봤는지 회사 내 존재감을 한 단계 올릴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 신규 현장을 맡았고 잘만 마무리하면 더 좋은 조건으로 더 오래 다닐 수 있는 기회였다. 시작은 좋았지만 결국 얼마 못가 스스로 뛰쳐나오고 말았다. 부담감을 이기지 못했던 것 같다. 주변에서도 말렸다. 누구나 다 겪는 과정이라고 했다. 옆에서 도와줄 테니 조금만 버텨보자고 용기를 줬다. 하지만 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왔다. 내 실력을 보여주고 인정받을 뻔했던 기회를 차 버리고 나왔다.
제 발로 걸어 나온 뒤부터 삶이 꼬이기 시작했다. 전공도 다르고, 대학 졸업장도 없고, 경력도 짧고 나이만 많은 나 같은 사람을 선뜻 뽑아주는 곳이 없었다. 망해가는 회사, 이제 막 시작해 자리 잡아가는 곳에서나 기회를 줬다. 원하는 월급보다 주는 대로 받았고, 하고 싶은 일보다 시키는 일만 해야 했다. 시간이 갈수록 이런 나 자신에게 불만이 쌓였다. 벗어나고 싶다면 분명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취업을 준비할 시간과 돈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직장을 다니며 틈틈이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노력하는 만큼 더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으로 못 하는 건 없었다. 문제는 언제나 생각으로만 끝났다는 것이다. 토익 600점을 목표했지만 징검다리 건너듯 공부했고, 자격증을 목표했지만 문제집엔 먼지만 쌓여갔다. 업무 역량, 대화능력, 리더십 등 직장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려고 책을 샀지만 몇 장 읽고 책장에 자리만 차지했다. 시간은 계속 흘렀지만 손에 쥐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나는 몽상가였다. 무엇이든 시도하면 다 될 줄 알았고, 나에게는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직을 마주한 순간은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이력서에 더할 스펙이 없었다. 비어있던 줄을 채우지도 못하고 늘 비슷비슷한 이력서로 더 좋은 직장만 찾아다녔다. 더 좋은 조건, 더 든든한 직장, 더 많은 월급을 받고 싶었다면 더 노력했어야 했다.
새로운 선택에서 망설여지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용기를 내서 시도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노력과 운이 더해져 바라는 결과를 얻는 경우도 있다. 망설여진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일단 시도하면 성공이든 실패든 둘 중 하나는 손에 쥘 수 있다. 적어도 “할 수 있었는데”, “할 뻔했는데”, “해야 했는데” 같은 후회는 남기지 않는다.
새로운 도전, 새로운 직업을 갖는다는 건 불확실에 뛰어드는 것이다. 직장을 다니며 변화를 갖는다는 건 더더욱 만만치 않다. 하지만 누구나 변화의 시기를 맞아야 한다.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사람은 겨우 60퍼센트 정도만 올바른 판단을 내린다고 했다. 필요한 나머지가 ‘용기’와 ‘실행력’이라고 덧 붙였다. 결국 용기와 실행력이 60퍼센트의 판단을 명확한 성과로 바꾸어준다는 의미이다. 과거의 ‘나’는 이미 지나갔다. 지나간 내 모습에 만족하든 불만족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지금의 ‘나’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미래의 ‘나’가 결정된다.
자신의 판단을 확신으로 바꾸어주는 게 용기와 실행력이라고 했다. 지금 당장 삶이 흔들릴 만큼의 변화를 마주하고 있지 않다면, 우선 일상에서 조금씩 용기와 실행력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운동이 필요하면 계단을 오르내리기 시작해보고, 책을 읽겠다고 하면 하루 한 페이지라도 읽기 실천하고, 가족과 더 행복해지고 싶다면 10분이라도 더 대화하는 시간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이런 용기와 실행이 쌓인다면 더 큰 판단을 내릴 순간과 마주했을 때 뒷걸음질 보다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판단하고 용기내고 실행에 옮긴 결과가 좋지 않아도 자신의 인생에서 서글픈 순간으로는 기억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