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에 한 번 도서관에 간다. 허용된 7권을 다 빌리기도 하고 너 댓 권을 빌리기도 한다. 그렇게 빌려보는 책이 한 해 평균 100여 권이다. 운전을 할 땐 오디오북을 듣는다. 출퇴근이나, 업무로 이동 중에만 듣다 보니 2~3일에 한 권 읽는다. 일주일에 2~3권을 읽는다. 틈틈이 중고서점을 들려 사놓고 읽을 책을 고른다. 많으면 5권, 적어도 2~3권을 산다. 이렇게 빌려보고 사는 책인 한 해 평균 250~300권이다. 한 번은 자주 이용하는 중고서점 어플에서 한 해 동안 구매한 이력을 분석해 통계를 내줬다. 내가 거주하는 지역 상위 1%라는 결과가 나왔다. 지금껏 살면서 이런 타이틀을 가져본 적 없었다. 학교 때는 성적은 늘 중간이었다. 연봉도 직장인 평균을 밑돌았다. 등수를 매기는 곳이면 늘 중간 어디쯤에 위치했었다. 중간에 머무르는 게 늘 익숙했다. 남들보다 뛰어나야겠다는 욕심도, 그럴만한 능력도 없었다. 내 분수를 알고 내 수준에 맞는 위치를 지키려고만 했다. 이랬던 내가 달라졌다.
2018년 책을 읽기 시작했고, 5년 동안 꾸준히 읽은 덕분에 독서량만큼은 대한민국 상위 1%에 든다고 자부한다. 옛 선인들은 책 많이 읽는 걸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겸손해지라고 했다. 내 자랑하려고 이 말을 꺼낸 건 아니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한 적 있는지, 바라는 목표에 닿았던 경험이 있는지 묻고 싶어서다. 20대, 뭐든 해낼 것 같은 의욕이 넘쳤고, 위아래로 치이는 30대를 건너, 아랫사람이 많은 40대, 역할이 줄어드는 50대에 이르면 퇴직을 앞둔다. 그러는 동안 일에 치이고 타성에 젖어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일상을 살아왔다. 할 일이 줄어들면서 서서히 홀로 설 준비를 하게 된다. 누군가는 모아 둔 돈으로 장사나 사업을 시작한다. 또 누군가는 새로운 걸 배워 새 직업을 준비한다. 어떤 선택을 하던 결과는 자신의 몫이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적어도 한 번은 미칠 각오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나처럼 미친 듯이 책을 읽을 수도, 새 기술을 배우는데 열정을 쏟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지금껏 한 가지 일을 하다 보디 머리는 굳고 나이 때문에 체력도 따라주지도 않는다. 마음속 열정은 넘치지만 생각만큼 잘 안 되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현실을 탓하고 핑계 댈 수만 없다. 낯선 도전 앞에 멈칫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마흔셋부터 책을 읽기 시작한 나도 책을 읽는 게 과연 맞는 건지, 무얼 얻을 수 있을지, 시간 낭비만 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그때 만약 의심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때와 비슷한 일상을 살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의심은 들었지만 매일 꾸준히 책을 들었다. 뚜렷한 대안이 없을 때라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자 마음먹었다. 나는 책을 들었지만 여러분은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손에 쥐면 된다. 그게 무엇이든 그것에 투자하는 시간이 결코 허투루 낭비되는 시간은 아닐 것이다. 뉴스 검색하고 쇼핑하고 TV 보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을 테니 말이다. 무색무취였던 일상에 색색의 물감이 한 방울씩 떨어지면서 서서히 자신의 색을 찾아가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내 색을 찾을 수 있었다. 글을 써본 적 없었지만 책을 읽은 덕분에 글을 쓸 용기도 낼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글로 먹고사는 직업의 매력을 알았다. 낯선 직업이었지만 도전해보고 싶었다. 늦은 나이지만 도전을 결심한 이상 남들보다 잘하고 싶었다. 9번을 이직하는 동안 흐리멍덩했던 그때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더 이상 기대할 수 있을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손에 쥔 책을 더 꽉 움켜쥐었고, 글 쓰는 손가락에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한쪽 발에 무게가 실리면 빠질 수 있는 살얼음 위는 걷는 심정으로. 두 발에 균형을 맞추며 매일을 살고 있다. 균형을 맞추며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갈 수 있으면 적어도 목적지에는 닿을 수 있다. 잘 타고 못 타고는 나중 문제이다. 느리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길 반복하며 앞으로 나 아가다 보면 언젠가 바라는 곳에 닿을 수 있다. 모두가 같은 얼음판 위에서 중심도 못 잡고 서 있다면 그중 한 발이라도 떼는 사람이 그들보다는 앞설 수 있다. 한 발을 떼면 다음 발도 뗄 수 있다. 그렇게 천천히 나아가면 자신이 속한 무리 중 선두에 설 수 있을 것이다. 나이 때문에, 경력이 많아서 열정이 식었다는 핑계 뒤에 숨지 않으면 한다. 나도 열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매일 책 한 권씩 읽을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냈다. 특별한 비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돈을 주고 배운 것도 아니다. 그저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내가 해야 하는 것에 집중했을 뿐이다. 시간의 가치를 깨닫고 시간을 아끼고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집중하면서 열정도 생기고 꾸준함도 생겼던 것 같다.
우리는 1등만이 존중받는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학교, 직장, 사회의 무리 속에서 1등이 되기 위해 발버둥 쳤다. 말 그대로 1등은 한 명뿐이다. 모두가 나름 최선을 다 하지만 그중 1등은 단 한 명뿐이다. 나머지는 존재 가치를 의심받는다. 그러나 직장인은 모두 은퇴한다. 은퇴 이후의 삶에도 등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묻고 싶다. 언제까지 타인에게 내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살아야 할까? 내 가치는 나 스스로 인정해주면 되지 않을까? 등수를 매기는 건 동기부여가 될 수는 있다. 포기하지 않으려면 꾸준히 동기 부여받고 자극을 받아야 한다. 이때 상대와 나를 비교하기보다 나 자신과 비교하는 건 어떨까? 일 년 전의, 한 달 전의, 어제의 나와 비교하는 거다. 그때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면 그게 진정한 성장이 아닐까?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1등의 가치는 달라진다. 범위가 넓을수록 가치는 높아지고 범위가 좁으면 그 반대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굳이 범위를 정하고 가치를 따지며 줄을 세워야 할까? 최선을 다하는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은퇴 이후의 삶은 분명 이전과 다르다. 낯선 것에 도전해야 하지만 생각처럼 안 될 수도 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주저앉을 수만도 없다. 경쟁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비교는 해악일 뿐이다. 경쟁이 필요하다면 남이 아닌 나 자신과의 경쟁일 것이다. 스스로 정한 기준안에서 상위 1%가 되겠다는 노력이면 적어도 어제의 자신보다 1%는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1%의 불씨가 열정이 되어 은퇴 이후의 삶을 타오르게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