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 내가 나를 아끼는 방법

by 김형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상상을 해봤다. 20킬로그램이 넘는 배낭을 메도 발걸음은 가벼울 것 같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함께 걷는 동료가 있어서 즐거울 것 같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무릎이 시큰거려도 잠들기 전 마시는 맥주 한 잔에 피로를 잊을 것 같다. 매일 다른 풍경을 눈에 담으며 걷다 보면 800킬로미터도 한 달음에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상상으로 1년을 버텼다. 2019년 한 해 동안 300권의 책을 읽고, 강의를 하고, 매일 글을 쓰는 게 목표였다. 혼자서는 못할 것 같았다. 35명의 동지가 있다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과 1년을 보냈고, 나는 목표를 달성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간다는 건 처음부터 무리일 수 있었다. 직장을 다니는 내가 열흘 동안 휴가를 내는 게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미리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혹시 아는가, 뜻하지 않게 휴가가 생길 수도 있고, 직장을 그만두었을 수도 있다. 일단은 갈 수 있다는 목표를 세웠고, 목표 덕분에 일 년 동안 지치지 않았다. 아내도 이런 나를 지켜봤다. 흐트러지지 않고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나를 두고 봤다. 결국 해내는 나를 보고 아내도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박수는 얼마든 쳐줄 수 있지만 산티아고는 허락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휴가도 낼 수 없었고, 경비도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 없었다. 나에게 보상이 필요했다. 순례길을 못 가면 올레길이라도 가겠다고 했다. 이왕이면 혼자 만끽하고 싶다고 했다. 제주도만 한 곳이 없었다. 아내는 4박 5일을 허락했다.


5시,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사람들 틈에 서니 떠난다는 게 실감 났다. 옆 사람의 들뜬 대화에서 기대감도 커진다. 땅 위의 모든 것들과 멀어지면서 비로소 혼자된다. 한 시간 뒤 다시 발을 붙이겠지만 떠 있는 그때가 설렘의 최고조를 선사하는 것 같다. 땅에 발을 붙이면서 감성보다 이성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버스정류장을 찾고, 노선을 확인하고, 버스요금을 준비하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몇 번의 여행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찾아다녔다. 카메라로 사진 찍듯 눈앞 풍광만 담아두기 바빴다. 오며 가며 눈에 들어오는 경치는 감상하지 못했다. 차가 다닐 수 없는 길을 걸으며 눈높이로 보이는 풍경을 담는다. 걸어갈 길을 보고,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길이 아닌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발밑을 내려다본다. 누구나 찍을 수 있는 경치가 아닌, 내가 걸으며 보고 느낀 장면을 한 장씩 담았다. 사진이 쌓일수록 발걸음도 느려진다. 가벼웠던 배낭도 걸음을 멈추게 한다. 자주 멈출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의욕은 이상을 좇지만 힘듦은 현실에 데려다 놓는다. 두 개의 감정이 공존한다. 포기하고 편하게 갈까? 편하게 다니려고 온 것 아니잖아? 이전에도 수없이 많은 선택 앞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300권, 읽을 수 있을까? 읽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매일 글을 쓴다고 월급이 오를까? 안 쓰면 무얼 할 수 있지? 지금 포기하면 당장은 편할 수 있을 텐데, 언제까지 이렇게 힘들게 버텨야 하지? 모든 선택 앞에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선택했다. 하고 싶은 걸 선택한 덕분에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목표를 이룬 덕분에 지금 이곳, 제주도를 걷고 있었다. 힘이 든 건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 있다. 힘들다고 매 순간 편한 걸 선택할 수 없다. 편한 걸 선택하면 어제와 같은 오늘로 이어질 뿐이다. 물집이 잡히고 배낭이 돌덩이처럼 느껴질 때 한 발이라도 더 내딛으면 한 발만큼 나아갈 수 있다. 전체로 보면 미미해 보이지만, 그 한 발이 있었기에 완주도 할 수 있다. 지금 순간 내 선택에 따라 앞으로 나아갈 수도, 그 자리에 멈출 수도 있다. 나는 지금까지 앞으로 나아가길 선택했다. 그 선택들 덕분에 다른 직업을 찾았고, 남들보다 탁월해지기 위해 매일매일 반복하며 나를 단련하고 있다.


올레길 7코스를 시작으로 11코스까지 걷기로 했다. 과욕이 참사를 불렀다. 삼일 만에 무릎에 통증이 왔고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남은 하루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다행인 건 버스를 탄 덕분에 마라도의 중국집은 여전히 성업 중임을 눈으로 확인했고, 난생처음 서커스 공연도 관람했다. 여행의 맛은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듯 며칠 동안의 여행도 내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포기할 수 없듯, 여행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일정이 바뀌면 바뀐 대로 다니면 된다. 그 안에서 다시 재미를 발견하고 의미를 찾으면 된다. 뜻하지 않은 일로 고통과 절망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그게 끝은 아닐 것이다. 그 순간을 이겨내면 또 다른 기쁨과 환희가 찾아온다. 삶은 그런 과정의 반복이라 생각한다. 길을 걷다 보면 우산 없이 비를 맞기도 하고, 모든 사물에 그림자가 선명한 날도 있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르는 언덕도 만나고,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느긋하게 걷기도 한다. 그러니 시시각각 변화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상황을 느긋하게 바라볼 필요도 있다. 조급해한다고 모든 일이 잘 되는 건 아니다. 때로는 돌아갈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게 인생을 순리대로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보상으로 무엇을 주는지도 중요하지만 보상을 통해 어떤 경험을 했는지도 중요하다. 보상은 노력한 자신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선물은 받는 순간의 기쁨도 있지만 선물 안에 담긴 의미가 더 중요할 수 있다. 별것 아닌 선물도 주는 사람의 마음이 담기면 큰 의미를 갖는다. 의미로 인해 선물을 받는 경험은 가치를 갖게 된다. 가치 있는 경험이 많아질수록 선순환이 된다.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고, 달성하고, 보상받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포기하지 않는 내가 되어간다. 지금 자신이 세운 목표에 닿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면 적절한 보상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 봤으면 한다. 최선을 다하는 자신에게 줄 수 있는 보상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행동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생각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보상을 준다면 분명 이전보다 더 의욕 넘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지나친 보상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음을 주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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