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면 게으름을 낳고,
미리하면 미래가 바뀐다

by 김형준


최재천 교수가 하버드대학교에서 사감으로 근무했을 때 일이다. 하루는 지도 학생 기숙사에서 맥주를 마실 기회가 있었다. 룸메이트 가운데 한 명이 늦게 돌아왔다. 다른 친구들이 한 잔 하자고 권했지만 늦게 온 친구는 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나갔다. 뒤따라간 최재천 교수는 기다린 친구가 뭐가 되냐고 말했지만 과제가 먼저라며 단호했단다. 그래서 언제까지 과제를 제출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5일 후라고 한다. 최재천 교수는 그 말에 어이없었지만 그냥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이 최재천 교수에겐 시간을 아껴 쓰는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고 전한다.


많은 사람이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싶어 한다. 플래너를 쓰고, 분 단위로 알람을 활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록하고 확인하면서 활용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다.


시간을 낭비하며 살았다. 직장만 다니면 하루를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다. 퇴근 후 시간은 나를 위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옳다고 믿었다. 늦은 밤까지 TV를 보고, 술자리를 갖고, 극장을 가기도 했다. 직장에서도 업무를 효과적으로 하지 못했다. 일은 밀리기 일 수였다. 시간이 정해진 업무는 겨우 마감이 되어서야 끝냈다. 그마저도 실수나 수정할 내용이 생기면 시간이 늦어지기도 했다. 늘 바쁘게 움직였지만 효율적이진 못했다. 성과를 내기보다 땜질식 업무처리가 대부분이었다.


올해 초 공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0명의 작가가 하나의 주제로 글을 썼다. 출간 일정에 맞추기 위해 5일에 한 꼭지 씩 쓰기로 했다. 한 명이라도 제출일을 지키지 못하면 나머지 작가들이 피해를 본다. 그 한 명이 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바짝 긴장하게 되었다. 글은 매일 썼지만 마감이 정해진 글을 쓰는 건 또 다른 무게가 있었다. 초고니까 부담 없이 쓰라고 하지만 부담을 안 가질 수 없었다. 매주 한 편씩 제출하는 일정이었다. 결국에 제 날짜에 맞추기는 했지만 피를 말리는 과정이었다. 무엇보다 다른 작가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게 힘들었다. 업무 중 틈틈이, 잠들기 전 조금씩 쓴 덕분에 기한을 맞출 수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만 쓸려고 했으면 아마 못 맞출 수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미리 쓰려고 했던 노력이 시간 내 쓸 수 있게 했던 것 같다.


최재천 교수는 원고 의뢰가 들어오면 제출 1주일 전까지 마무리 짓는다고 한다. 앞서 하버드 사감 시절 경험 덕분에 주어진 일을 당겨서 하는 습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미리 작성한 글은 제출일까지 다시 몇 번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고, 그 덕에 완성도 높은 글을 쓸 수 있었다고 전한다.

"도대체 그 많은 일을 하면서 어떻게 느긋할 수 있느냐고요. 제 답은 하나죠. 마감 1주일 전에 미리 끝냅니다. 마음에 엄청난 평안을 줘요. 결과물의 질을 높일 수도 있고요."

《최재천의 공부》중 - 최재천, 안희경


시간의 가치를 높이는 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렸다. 여러 역할을 해내려면 몸도 여럿, 시간도 많았으면 한다. 안타깝지만 시간도 몸도 한정되어 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이다. 사람이 다 다르듯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각자에게 맞는 방법이 있기 마련이다. 최재천 교수처럼 며칠을 당겨 마무리 짓는 사람, 마감 시간에 맞춰 끝내는 게 습관인 사람, 이도 저도 아닌 사람. 나도 공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단 몇 시간이라도 일찍 끝내니 마음의 여유는 가질 수 있었다. 몇 시간의 여유 덕분에 몇 글자라도 다시 고칠 수도 있었다.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은 습관과도 연결된다. 자신에게 잘 맞는 방법이 있다면 습관이 될 만큼 노력하는 과정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쉽지는 않을 테다. 그래도 시간에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다면 한 번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미루는 습관은 게으름을 낳지만, 미리 하는 습관은 미래를 바꿀 수도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경청이 경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