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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18. 2022

알수록 어려운 우리말,
쓸수록 재미있는 우리말


다음 중 올바른 표현은 무엇일까요? 

대통령 당선자

대통령 당선인

우리 헌법 제67조 2항과 68조 2항에는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 사람을 '당선자'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출처:언어의 높이뛰기 - 신지영)

그럼 '당선인'이라는 표현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17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명박 대통령 때부터라고 합니다. '당선자' 신분이 된 이명박 대통령 측 인수위에서 언론에 당선자 대신 '당선인'으로 표현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근거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법과 선관위에서 당선인증을 발부받는다는 점을 들어서입니다. 이는 표면적인 이유였습니다. 실제로는 당선자에 붙는 '자'가 한문으로 '者'(놈 자, 사람 자) 사용하는 게 못마땅했다고 합니다. 불경스럽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에서는 헌법 조항을 들어 당선자를 사용할 것을 언론에 요청했지만 여러분이 짐작하는 이유로 몸을 사린 그들 덕분(?)에 현재까지 당선인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신지영 박사는 당선자를 당선인으로 사용하려면 후보자를 후보인으로 바꾸고, 유권자를 유권인으로 바꾸는 게 합당하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후보자와 유권자에 붙는 '者'도 같은 '놈 자'를 씁니다. 후보자일 때는 불경스럽다는 자를 써도 괜찮고 당선자 되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덧붙여 문제가 된 '놈'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훈민정음 서문에는 '제 뜻을 시러 펴지 못할 놈이 하니라'에서 '놈'이 등장합니다. 이때 뜻은 평칭으로써 비하의 의미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일반인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그 당시는 놈이라는 표현이 지금의 '사람'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그때 사용한 표현이 지금까지 이어져왔고 별 다른 해석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또 과학자, 교육자, 언어학자 등 전문적 지식을 가진 이들을 호칭하기도 합니다.   


저처럼 일반인에게 당선자든 당선인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장 먹고사는 게 먼저이니 말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단어 하나에도 자기들만의 논리로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의 행태에 실소가 나왔습니다. 또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이들도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신지영 박사는 언론의 태도에 대해서 일침 합니다. 


"고칠 이유가 전혀 없는 당선자를 당선인으로 발 빠르게 고쳐간 언론의 태도는 매우 민첩하고 실사 불란 했다." 《언어의 높이뛰기》 중 - 신지영


우리 일상에 불합리한 표현을 바로잡는 데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라 합니다. 언론은 문제를 제기하고 의견을 수렴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 사회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역할을 합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언론도 일종의 권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립성을 잃은 언론의 글은 생각의 편향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세대 간, 계층 간 대립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도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납니다. 분열을 조장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쓰다 보니 너무 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시선을 좁혀보면, 저는 이 책을 읽고 우리말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였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안에는 시대와 사회상이 담겨 있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불합리한 표현도 있었습니다.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사용하는 단어도 있었습니다. 내가 쓰는 글 한편에 수많은 단어가 담깁니다. 그 뜻이 명확한 단어도, 흐리멍덩하게 아는 단어도, 잘못 알고 있는 단어도 있을 겁니다. 내가 쓰는 글을 통해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겠다는 사명감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럴만한 깜냥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말에 조금 더 관심 가질 필요를 느꼈습니다. 단어에 담긴 의미를 의식 하고 사용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올바른 우리말 사용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분이 많습니다. 이 사회의 변화가 노력에 비해 더딜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그분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말에 대해 한 번이라도 더 고민하고 관심을 갖는다면 더디더라도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을 겁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저에게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를 마음 한 곳에 담아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장 열의를 불태워 바른 우리말을 사용하겠다는 말은 못 하겠지만 적어도 남은 평생 글을 쓰는 동안 더 애착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글이 얼마나 많이 읽힐지는 모르겠지만, 글이 닿는 이들에겐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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