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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19. 2022

나를 기록하면
내가 누구인지 보인다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과거를 쓰는 겁니다. 남들은 관심도 없을 과거를 굳이 꺼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괜히 자신의 치부만 드러내는 게 아닌지 걱정합니다. 힘들게 써봐야 누가 관심 갖고 보겠냐며 주저하게 됩니다. 맞습니다. 고민되고 걱정되고 주저하게 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왜 자신의 과거를 꺼내봐야 하는가에 있습니다.


15년 동안 9번 직장을 옮겼습니다. 두 달을 못 버틴 직장, 6개월 만에 망한 회사, 상사와 싸우고 도망치듯 뛰쳐나오기도 하고, 월급이 안 나와 이직을 결심하기도 했습니다. 그 시간을 돌아보면 실패한 인생 같았습니다. 안정된 직장을 갖고 싶지만 그럴만한 역량을 갖추는 데는 게을렀습니다. 입만 벌리고 있으면 누군가 떡을 넣어줄 거란 착각에 살았습니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나보다 남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내가 잘못한 건 없고 상대방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화살을 밖으로 향하면 적어도 내가 다칠 일은 없을 테니 말입니다. 어쭙잖은 핑계로 나를 합리화하고 술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폭음, 과음, 잦은 술자리로 점점 술에 의지했습니다. 중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조금만 기분 상하는 일이 있어도 술부터 찾았으니 말입니다. 적게라도 마셔야 적어도 그 순간은 기분이 나아졌습니다. 술이 깨면 여전히 똑같은 현실인데도 말입니다. 술로 푸는 게 모자랄 때면 힘없는 아이들에게 화살이 향했습니다. 별 일 아닌데도 화를 내고 화가 풀릴 때까지 비난의 말을 퍼부었습니다. 아이들은 이유도 모른 체 주눅이 들어갔습니다. 화풀이 대상으로 어머니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사춘기 이후 단 한 번도 살갑게 대화 나누지 않았습니다. 대화는 늘 삐딱선을 탔습니다. 어머니의 말에는 무조건 반대부터 했던 것 같습니다. 격렬한 대화가 잦아질수록 몸도 마음도 멀어져 갔습니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과거의 일들입니다. 4년 넘게 매일 글을 쓰면서 과거의 내 모습을 하나씩 썼습니다. 9번이나 직장을 옮긴 게 자랑할 일도 아닌다. 남 탓을 했던 제 자신이 모자라 보였습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에 의지했다는 게 창피했습니다. 아이들에게 화만 낸 자신에게 더 화가 났습니다.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는 제 자신이 못나보였습니다. 이런 과거의 저를 쓰면서 매 순간 망설여졌습니다. 이런 글이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습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읽으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도 됐습니다. 또 이렇게 쓴다고 뭐가 달라질 수 있을지 의문도 들었습니다. 


"종종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과 일을 향상할 건설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다. 하지만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자신의 과거를 따라가다 보면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나와 마주서는 용기》 - 로버트 스티븐 캐플런 


딱 한 번 용기를 냈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그 시작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제 자신에 대해 구체적으로 쓸 수 있었습니다. 부족하고 실패한 경험도 있었지만 반대의 경험도 있었습니다. 쓰지 않았으면 떠올리지 않았을 일들입니다. 잘했던 일, 성공 경험도 분명 있었습니다. 잘하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노력했던 제 모습도 있었습니다. 못나고 부족한 부분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었습니다. 지난 과거를 따라가다 보니 만나게 된 겁니다. 글을 쓰다 보니 마주하게 된 겁니다. 


몸이 아플 때 의사를 찾습니다. 의사는 병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입니다. 의사가 아픈 곳에 대해 잘 알 수는 있어도 나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자기 자신입니다. 누구나 더 나은 미래를 꿈꿉니다. 미래는 현재에서 시작됩니다. 현재를 잘 사는 게 바라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출발점이라고 합니다. 현재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과거 자신의 모습을 낱낱이 기록해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기록은 글쓰기입니다. 저처럼 드러내며 쓸 수도 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중요한 건 쓰느냐 안 쓰느냐입니다. 쓰면 쓸수록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새 아파트가 완공되고 입주가 시작되기 전 하자 점검을 합니다. 잘못 시공된 부분을 하나씩 꼼꼼하게 점검하며 더 나은 집이 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구체적으로 자세히 볼 수록 더 나은 공간이 됩니다. 자신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내가 어땠는지 구체적이고 자세히 볼 수록 더 나은 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분명 아프고 힘든 과정입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나은 자신을 바란다면 한 번은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과거의 내가 했던 실수를 똑같이 따라 하지 않을 수 있다면 분명 내일은 더 나은 자신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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