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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21. 2022

쉽게 변하지 않아야 사람이지


쉽게 변하면 사람이 아니다. 타고난 기질이라는 게 있다. 기질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가 보다. 아무리 수백 편 글을 써도 여전히 말하는 게 서툰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사람이 쉽게 변하면 밥 굶을 사람 많을 것 같다. 그들을 위해서 적어도 나는 천천히 변해야겠다. 


평일 휴가를 냈다. 아내도 휴가를 냈다. 단 둘이 데이트한 기억도 기억해내야 기억이 날 정도 오래된 것 같다. 어쩌다 주말, 장보기를 겸한 둘 만의 시간이 전부였다. 이날은 오롯이 하루를 함께 보내자고 작정했다. 겉으로는 데이트였지만 아내에게 일이 있었다. 아내는 올해 신입생이 되고 학교를 한 번도 안 갔다. 수업은 모두 비대면이었다. 학과 사무실에서 만들어놓은 학생증을 찾아가라고 벌써부터 연락이 와 있었다. 1학기가 끝나서야 학생증을 찾으러 간다. 


연남동에서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검색에 들어갔다. 몇 곳을 알아뒀다. 분위기, 맛, 가격 등 '핫플'인 곳으로 찾았다. 오픈 시간, 메뉴, 주차, 위치 등 꼼꼼하게 알아뒀다. 준비가 철저해야 예상치 못한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은 출발 전부터 이어졌다. 장마도 아닌데 장맛비가 오고 있었다. 우산을 받쳐 들어도 바지 밑단이 젖을 정도였다. 버스 대신 자가용을 탔다. 출근 시간이 지난 도로는 거침없이 아니지만 덜 답답하게 달릴 수 있었다. 연남동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11시였다. 우산을 꺼내 들고 미리 알아둔 식당을 찾아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에 술 마시러 몇 번 왔을 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골목에 사람이 없다는 게 어색했다. 연남동의 저녁은 우산이 없어도 사람에 치여 걷기 불편한 곳이었다. 우산을 들어도 여유롭게 걷을 수 있었다. 이 말은 문을 연 식당이 없다는 반증인 걸 미처 몰랐다. 미리 알아둔 식당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지만 어느 곳도 문을 열지 않았다. 낭패다. 


비도 오고 식당도 문을 열지 않고, 아내의 짜증이 슬금슬금 올라오는 게 보였다. 아내는 번잡한 걸 싫어한다. 지금 사는 일산을 좋아하는 것도 이런 이유와 닿아 있다. 어디를 가도 여유롭게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의 짜증을 잠재워줄 게 필요했다. '꽈페' 꽈배기에다 무슨 짓을 해놓은 거니? 십여 종의 형형색색 꽈배기가 눈을 즐겁게 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당이 올라오는 느낌이다. 아내도 나도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망설이지 않고 가게로 들어갔다. '아이들 좋아하겠다' 우리보다 아이들이 좋아할 걸로 골랐다. 8개들이 한 박스를 손에 들고 나왔다. 브런치는 실패했지만 꽈배기로 만회했다. 


근사한 브런치 대신 우렁쌈밥으로 대신했다. 칼칼한 된장국, 알이 굵은 우렁과 된장, 혀끝에 감도는 매운맛이 덜 자극적인 고추장 불고기, 싱싱해 보이는 쌈채소, 기술의 힘으로 완성된 스텐 솥밥까지. 축축한 기분을 말려주기 충분했다. 마주 보고 밥을 먹은 기억도 기억해야 기억이 날 정도였다. 다 먹고 나니 아내의 기분도 뽀송해진 것 같다. 차를 몰아 대학교로 향했다.


20대 초반 대학을 졸업하고 20여 년이 더 지나 학교를 찾았다. 아내는 변한 모습에 적응이 안 되나 보다. 갈피를 못 잡고 여기저기 둘러보기 바빴다. 둘러보며 옛 생각이 나는지 기분이 좋아지는가 보다. 말이 많아졌다. 여기는 어디였고, 여기서 무얼 했고, 어디서 수업을 받게 될지, 얼마나 변했는지 등 쉼 없이 재잘거렸다. 20살의 모습이 저랬을까 싶었다. 가만히 두고 봤다. 말수가 적은 것도 있지만 딱히 끼어들 말이 없기도 했다. 볼 일을 다 보고 다시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연남동으로 가는 차 안, 밥을 먹고 학교로 이동하는 차 안, 학교에서 볼 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차 안, 대화를 주도한 건 아내였다.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 수업 중 들었던 이야기, 아이들 문제 등 말을 이어갔다. 나는 맞장구만 쳤다. 하고 싶은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듣고 있는 게 편했다. 브런치 계획이 틀어지자 더 말이 줄었다. 당황하면 말수가 준다. 아내도 이런 나를 잘 안다. 쌈밥을 먹으면서도 대화 다운 대화를 끄집어내지 못했다.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게 다였다. 아내는 몇 시간을 같이 다니며 답답했을 법도 한데 티 내지 않았다. 아마 말 좀 하라고 한 마디 했으면 더 말을 못 했을 수도 있다. 말주변이 없다고 책 한 권 분량을 썼지만 여전히 말주변이 없다. 그렇지, 사람이 쉽게 변하면 사람이 아니지. 나에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적어도 나는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는 알아가도 있다. 알면 변하면 된다. 변화가 한순간에 일어나지는 않을 테다. 단점을 한 순간에 고치는 건 콩나물에 물 한 번주고 다음날 뽑아먹겠다는 것과 같다. 어쩌면 단점은 고쳐지 않을 수 있다. 대신 장점을 찾고 발전시키는 게 더 현명할 수도 있다. 장점으로 단점을 보완하는 것. 그래서 내가 글쓰기에 열심히인 것 같다. 이렇게 글이라도 써서 아내와 소통하려고 하니 말이다. 문제는 아내가 브런치를 안 본다는 거다. 나중에 책으로 엮으면 그때는 보겠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있다. 시간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해결은 스스로 해야 한다. 문제를 알고 고치려는 노력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 말수가 적은 나도 말을 하려는 노력이 이를 해결해준다. 말로 못하는 말, 글이라도 열심히 쓰다 보면 말주변이 좋아질 수도 있을 테다. 그러니 꾸준히 말로 못했던 걸 글로 남긴다. 말주변이 좋아지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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