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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22. 2022

주고받기 애매한 선물, 책

2022.06.22 07:42



선물은 언제 받아도 기분이 좋습니다. 원하는 걸 받았을 땐 더더욱 그렇습니다. 나이 들수록 갖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물어봐 주는 게 고맙습니다. 나를 위해 샀다며 원치 않는 걸 받으면 난감한 상황만 생깁니다. 물릴 수도 없고 쓰기도 애매합니다. 결국 서랍장 어딘가 처박혀 있다가 이사나 대청소하는 날 유명을 달리하게 되지요. 이런 식의 눈치 없는 선물이 되는 것 중 책 만한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평일 7시 반, 첫 손님으로 카페 문을 엽니다. 늘 같은 인사를 나누고 정해놓은 자리에서 노트북을 켭니다. 한 시간 남짓 글을 썼습니다. 1년 반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카페 사장님과 안면도 트고 드물지만 가벼운 농담도 주고받습니다. 한 잔을 주문하면 쿠폰 도장을 하나 받습니다. 그렇게 쌓이 쿠폰이 네댓 장입니다. 사장님은 저를 직장인 정도로만 짐작할 겁니다. 글을 쓴다고 자랑할 건 아니지만 언제든 물으면 답을 할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한 번도 안 묻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드러내리고 했습니다. 자랑질은 아닙니다. 매일 카페를 찾아 부지런히 쓴 글이 모여 책이 한 권 나왔고, 그 책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장님이 일찍 문을 열어 준 덕분에 이렇게 책을 낼 수 있었다고 말을 건네면서요. 가방에 책을 넣고 며칠을 망설였습니다. 주는 게 맞을까? 괜히 주는 건 아닐까? 일주일을 망설이다 어느 날 책을 건넸습니다. 별다른 설명 없이 공저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린 책이라 말하고 내밀었습니다. 눈은 웃고 있었지만 마스크 너머의 표정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원치 않는 선물을 받은 건 아닌지 걱정했습니다. 


책 선물을 건넨 지 한 달 정도 지난 것 같습니다. 짐작컨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 사장님은 책을 싫어하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물론 자영업을 하다 보니 시간에 쫓길 수는 있습니다. 책 선물을 받고 열흘쯤 뒤 아침 인사를 건네며 책을 아직 읽지 못했다고 하십니다. 괜히 부끄러워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만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 아무 말 없습니다. 평가를 바라고 건넨 게 아닙니다. 읽어주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쩌면 읽었을 수도 있습니다. 차마 뭐라 말을 못 꺼낼 수도 있을 겁니다. 반대로 제가 괜한 선물을 해서 마음에 짐만 준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나를 볼 때면 책 선물 받은 게 사레들린 마냥 간질거릴 겁니다. 


저도 가끔 책 선물을 받습니다. 상대방이 읽어보고 내용이 정말 좋아서 선물하고 싶었다면 건넵니다. 처음 본 제목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감사하게 받습니다. 마음이 고맙습니다. 하지만 정작 읽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립니다. 원하는 책, 직접 산 책은 그 자리에서 읽는 게 대부분입니다. 선물 받은 책은 순서가 밀립니다. 신한 경우 까먹고 있다가 읽을 게 없을 때야 꺼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도 책 선물을 받으면 남들과 다르지 않기에 책 선물하는 게 어떤 건지 짐작이 갑니다. 특히 책을 안 읽는 분은 버리지도 못해 책장 한 군데 처박혀 있다가 이사나 대청소날 유명을 달리하게 될 겁니다.


선물로써 책이 이런 대접을 받는 건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본인이 원하는 책이 아닐 수도 있고, 평소 책을 잘 읽어서 일 수 있고, 관심분야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는 독서량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독서가 익숙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책을 선물 받아도 읽지 않습니다. 책이 익숙하고 독서가 습관이면 언제 읽어도 읽게 되고 책 자체가 남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책을 선물 받는 건 윗사람에게서, 책을 선물하려면 아끼는 사람에게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관계에서만 책 선물이 의미를 갖는다고 이해됩니다. 

또 하나 이유는 좋은 책이 적어서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좋은 책이 베스트셀러는 아닙니다. 사람들이 베스트셀러만 찾지도 않고요. 쉽게 접할 수 있는 책 중에도 가치 있고 깊이 있는 책이 많다면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질 겁니다. 이는 좋은 책을 쓰는 작가가 많아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개인 브랜딩을 위해 팔아먹기 식 책은 독자에게 거부감만 줄 겁니다. 삶이 곧 책이고, 책이 곧 삶인 작가의 책은 언제 읽어도 의미 있습니다. 솔직히 그런 책을 찾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책은 많이 쏟아져 나오지만 나에게 좋은 책은 얼마나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는 글 쓰는 이들에게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선물 받은 책일 수도 있고, 직접 고른 책일 수도 있습니다. 과정이 어떠하든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건넨 책 한 권이 가치를 인정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가치는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에게 의미를 남길 때 빛을 발할 것입니다. 또 책을 주고받는 게 부담이기보다, 서로를 진정으로 위하는 행위로써 이해받길 바랍니다. 저도 제 책이 나오면 누구든 원하는 만큼 선물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책의 가치를 알고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2022.06.2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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