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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23. 2022

일상은 반복되지만
다른 오늘을 사는 이유

2022.06.23  07:45



로봇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똑같은 하루를 살았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같은 시간 눈을 뜬다. 몸에 기억된 대로 씻고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사계절이 모호해진 거리 풍경을 보며 같은 길을 수년 째 오가고 있다. 너저분한 책상에 앉아 정리되지 않은 컴퓨터 바탕화면과 마주한다. 인터넷을 실행시키고 밤 사이 새로 올라온 뉴스를 검색한다. 19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빈자리가 채워지면 못 이기는 척 업무를 시작한다. 오늘이라고 새로운 일이 주어진 건 아니다. 퇴근하며 닫았던 파일을 다시 연다. 정해진 칸에 눈에 보이는 숫자를 찾아 넣는다. 숫자가 맞으면 다음 단계, 안 맞으면 처음부터 다시. 게임이라면 아이템이라도 얻겠지만, 여기서는 짜증만 남는다. 근근이 오전을 버텨내고 빈 배를 채우기 위해 고칼로리 음식을 찾아 나선다. 순댓국, 자장면, 돈가스, 비빔밥 오늘은 김치찌개다. 하루 권고량이 넘는 나트륨과 당을 섭취하니 에너지는 솟아나지만, 눈꺼풀은 가라앉는다. 업무 중간중간 눈치 보며 쪽잠을 잔다. 짧은 시간 숙면을 취해서인지 몸이 개운하다. 다시 업무에 집중해보지만 손에는 장바구니가 들려있다. 보이는 것마다 사고 싶은 충동이 든다. 욕구불만 아니면 과소비병. 얼레벌레 오후를 보내고 퇴근하다. 집에 가도 달라지는 건 없다. 눈은 TV에 고정하고 손으로는 간식을 먹는다. 저녁밥을 먹고도. 대화는 없다. 살림은 아내가 한다. 아이들에겐 자라고 윽박지른다. 주변이 조용해지면 더 집중해 TV를 본다. 언제 잠들었지 모를 정도로.


그때의 하루는 반복이 전부였다. 월급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 같은 일상을 살았다. 최선의 의미는 내 역할을 해내기 위해 열심히 산 게 아니었다. 주어진 일, 해야 할 일만 해내기 위해 살았다. 월급을 위해 그렇게 해야 했다. 덕분에 두 아이를 키웠다. 월급은 끝이 정해져 있다. 알면서도 끝을 준비하지 않았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지 몰랐다. 막연히 때가 되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건 없다. 그걸 기대하는 건 날로 먹겠다는 의미다.  능력이 안 되니 날로라도 먹고 싶었다. 세상은 호락하지 않았다.


여전히 로봇처럼 하루를 시작한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이불 밖으로 나온다. 몸이 기억하는 대로 씻고 옷을 입고 난 뒤 집을 나서기 전 책상에 앉는다. 10분 동안 일기를 쓴다. 앞뒤로 10분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 집을 나서기까지 20분 정도 내 시간을 갖는다. 사계절이 모호한 거리를 보며 같은 길을 달린다. 차 안에는 어제와 다른 오디오북이 들린다. 몰랐던 정보를 배운다. 다른 생각을 해본다. 그 사이 잘 정리된 내 자리에 앉아있다. 화면이 켜지고 어제 쓰던 원고를 이어 쓴다. 매일 비슷한 분량을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지우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근근이 채운다. 다른 직원이 출근하기 전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긴다. 남은 시간 방해받지 않기 위한 선택이다. 그렇게 아침 2시간을 좋아하는 일을 위해 투자한다. 업무시간이 정신없이 돌아가지는 않는다. 틈틈이 딴짓할 여유가 생긴다. 점심은 혼자 먹는다.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책을 듣는다. 음악을 듣기도 한다. 오후 시간도 비슷하게 흘러간다. 일주일 두세 번은 운동을 가려고 한다. 억지로라도 운동을 해야 한다.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 주중 이틀은 강의를 듣는다. 1년 6개월째다. 하고 싶은 걸 더 잘하기 위해 배운다. 


지금도 같은 하루를 반복하고 있다. 월급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건 마찬가지다. 내 역할을 해내야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월급을 받는다. 한 달을 버텨내는 이유가 월급인 건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을 채우는 일상에는 변화가 생겼다. 해야 할 일만 하며 한 달을 버텼다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해내며 똑같은 한 달을 버텨내고 있다. 월급을 받으면서 직장생활이 끝났을 때를 준비하고 있다. 언젠가 끊길 월급 대신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 준비를 하고 있다. 어떻게든 되겠지를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노력하며 내 살 길을 만들어 간다. 누군가 내 입에 떡을 넣어줄 거란 기대 대신 내가 먹고 싶은 떡을 만들고 찾아내고 있다. 노력한 만큼 얻는 게 당연하고, 남의 것을 욕심내서도 안된다. 원하고 갖고 싶은 게 있다면 노력하면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노력의 크기에 따라 성공의 크기도 무한대라고 믿는다. 세상은 호락하지 않지만 꾸준히 노력하는 이에게는 기회가 온다고 속삭인다. 달콤한 속삭임이다.


 매일 같은 하루를 반복하지만 이렇게 글을 쓰면서 다른 하루를 살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고, 책을 읽었기에 다른 글을 쓸 수 있다. 반복되는 일상에 의미를 더하는 건 어떤 행동으로 채우느냐이다. 월급만 받기 위해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이 있고, 월급도 받고 하고 싶은 일도 해내기 위해 다른 걸 채우는 사람도 있다. 무엇으로 어떻게 채울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나는 읽고 쓰는 걸 통해 똑같은 일상을 다르게 채우고 있다. 일상은 반복되지만 다른 오늘을 살 수 있는 이유이다.   


2022.06.2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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