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
2022. 07. 07. 07:44
"가장 고백하기 힘든 사연이 그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의미를 가진다." 지금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것, 나를 고통에 빠트리고 절망하게 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내 삶을 풀어가는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작가는 '가장 아픈 것'이 '가장 소중한 의미'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스티븐 킹-
《자기 돌봄》- 타라 브랙
아픔, 상처, 실패, 절망 이런 단어와 한 쌍이 '숨김'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는 개인의 상처나 실패에 관대하지 못합니다. 개개인도 사회를 의식해 드러내길 꺼려합니다. 숨기고 덮어서 결국 곪아 터지기도 합니다.
책만 읽을 땐 타인의 상처를 관망 했습니다. 그들의 삶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돌아볼 수록 아픔, 상처, 고통, 실패, 절망이라는 단어와 마주했습니다. 마주해도 보듬어 줄 용기를 못 냈습니다. 방법을 몰랐습니다. 글을 쓰면서 방법을 알아갔습니다.
1년 반 만에 개인회생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원래는 5년 동안 변제금을 법원에 내야 했습니다. 월급의 절반이었습니다. 남은 절반으로 어떻게든 살 수 있을거라 여겼습니다. 나도 아내도 처음 겪는 일이라 어떻게든 될 줄 알았습니다. 첫 달 부터 손에 쥔 월급으로는 생활비를 감당해내지 못했습니다. 매달 돈을 끌어와야 겨우 매꿀 수 있었습니다. 아내의 보험을 하나씩 해약했습니다. 다음 달에는 아이들의 보험도 해약했습니다. 장롱에 자리만 차지하던 결혼 예물도 팔았습니다. 팔고 손에 쥔 몇 십 만원은 아이들 한 달 학원비로 사라졌습니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게 차라리 나았습니다. 한 달을 벌어도 한 달을 버티지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1년을 근근이 버텼지만 이대로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방법은 하나 뿐이었습니다. 남은 변제금을 일시에 상환하고 온전히 월급을 받는 거였습니다. 결혼하며 장만한 집을 파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내와 상의 했지만 아내는 결정을 망설였습니다. 신혼집은 아내에겐 남다른 의미가 있었습니다. 큰오빠의 젊음을 바쳐 장만한 집이었습니다.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아무말 못했습니다. 결정에 따를 뿐이었습니다. 아내는 집을 팔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1년 6개월 만에 개인회생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회생기간 1년 반, 직장을 다니며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무책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지 않았냐고 되물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야 하는 게 맞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만약 같은 기간 돈을 벌었다면 생활은 조금 나아졌을 수 있습니다. 그게 가장의 역할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은 건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인 저는 지금만 보고 살 수 없습니다. 가족의 미래를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얻은 결론이 새 직업, 작가이자 강연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20년 가까이 건설업 일을 하다 작가, 강연가라는 생소한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아무런 지식도 능력도 재능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누구보다 더 처절하게 매달려야 했습니다. 1년 반을 건너 뛴다면 다시 이전의 나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이해를 구하고 매일 죽기 살기로 책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잠을 줄이고, 시간을 쪼개서 매일 주어진 시간동안 해야 할 일을 해냈습니다. 그렇게 4년 반을 버텨냈습니다. 그 사이 개인회생도 마무리 지었습니다. 한 우물만 판 덕분에 몇 권의 책을 냈고, 적지만 부수입도 내고 있습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었습니다. 멀게만 보였던 미래도 4년 반을 버틴 덕분에 조금씩 손에 잡히고 있습니다. 그때 만약 아르바이트로 그 시간을 보냈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겁니다. 생각과는 다른 삶일 겁니다.
이 이야기를 이번 책에 실었습니다. 책에 쓰기까지 수없이 망설였습니다. 손가락질 받을 까 걱정도 앞섰습니다. 무책임하다는 비난도 각오했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낸 건 나 같은 상황에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결국 버텨냈고, 작은 성과를 하나씩 만들어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절망에 빠진 순간, 포기하지 않고 한 발 내 디뎠기에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냈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내 인생에 아팠던 순간을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는 과정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당당해지려고 합니다. 손가락질을 하든 비난을 하든 그건 그 사람들 몫입니다. 받아들일지 말지는 내 선택이고요. 저는 더 큰 가치를 바라보려고 합니다. 나의 아픔과 성장이 또 다른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다는 데 집중할 것 입니다. 그게 제가 겪은 시련를 더 가치있게 만들어 줄테니 말입니다.
2022. 07. 07. 0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