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이 싫다. 백수도 싫다.
그렇다면?

가슴속 사표를 움켜쥐고 회식의 두려움을 이겨낸다.

by 김형준

글쓰기가 좋은 사람도 매일 글을 쓰는 건 쉽지 않다. 어떤 날은 글빨이 받아 짧은 시간 안에 원하는 분량을 쓰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무리 쥐어짜도 단 몇 줄밖에 못쓰는 날이 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장, 단이, 호불호가 있기 마련이다. 그나마 좋아서 하는 건 다음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문제는 좋아하지 않는 걸 억지로 해야 하는데서 고민이 생기고 갈등이 야기된다.


나는 직장 내 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간혹 직장 내 회식문화에 대한 기사를 보면, 술자리를 지양하고 개인의 취향과 의사를 존중하는 형태의 색다른 회식을 지향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내용이 있다. 그렇게 소개되는 회사의 조직 문화가 어떨지 모르지만 회식자리만큼은 부럽다.

건설회사 18년 차. 타인이 바라보는 건설회사 회식 문화는 술로 도배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 나를 소개할 때 건설회사 다닌다고 하면 첫마디가 '술 많이 드시겠네요'라고 한다. 열에 아홉은 인사처럼 건넨다. 건설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술을 먹고 죽자는 식으로 덤비는 문화는 예전에 비해 많이 얌전해지고 있긴 하다. 그래도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자리는 왜 내가 거기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대부분이다.


회식의 의미는 같은 조직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식사 등을 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모여서 함께 밥을 먹는다 하여 식구라 한다. 같은 조직에 있는 사람들을 듣기 좋은 표현으로 식구라고도 한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사장의 입장에서 직원의 결속과 애사심을 요구하기 위한 졸렬한 표현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함께 밥을 먹는 사이는 그만큼 각별한 사이일 수 있다. 밥을 먹는다는 건 상대에 대한 경계를 내려놓고 최대한 편안한 마음으로 음식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행위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회식이 불편한 이유는 평소의 불편한 감정이 자리만 바뀔 뿐 계속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문제로 부딪히게 된다. 잘잘못을 따지기도 하고, 문제에 대한 해결을 고민하며 의견 대립이 있을 수도 있고, 일이 아닌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된 불편한 일도 생길 수 있다. 일을 위해 일로 만난 사이에서 개인적 감정이 끼어드는 순간 더 이상 객관성을 잃게 된다. 물론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일하다 보면 사적인 감정, 사적인 얘기로 개인적인 관계의 비중이 더 커지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공과사를 명확히 구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적인 관계의 비중이 커지며 서로에게 불편한 자리로 변해갈 수 있는 곳이 직장이라 생각한다. 평소 불편했던 감정이 쌓이다 터지는 곳이 회식자리가 된다. 술기운을 빌려 평소 담아 두었던 한 마디가 나오면 더 이상 좋은 감정을 유지하기 힘들어지게 된다. 자주 있지 않겠지만 이렇게 한 번씩 일을 치게 되면 서로가 불편해질 것이고, 심한 경우 이직을 결심하기도 한다.


현명한 사람은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한다. 당연한 말이다.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 같은 공간에서 얼굴 보고 지내는 게 직장이다. 어쩌다 관계가 불편해지면 직장생활도 힘들어지게 된다. 그래서 싫어도 참아야 하고, 아니 꼬아도 버텨야 하고, 하기 싫은 것도 좋은 척해야 하는 게 현명한 처세라 말하는 것 같다.

처세에 능한 사람이 회식도 잘한다고 말할 수는 있다. 회식도 일의 연장이라 생각하면 그렇다. 나도 그런 처세에 능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고민 안 해도 될 거다. 하지만 회식만 잡히면 고민이다. 마음은 가고 싶지 않지만 몸은 그 자리를 거부할 수 없다. 처세에 능하고, 정치를 할 줄 알면 그 자리 또한 기회의 장이 된다. 난 처세도 못하고 정치도 싫다. 그런 것 없이도 일만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그런 건 누가 만들어 내는지 모르겠다. 짐작 컨대 줄 서기 좋아하는 사람, 편 가르기 좋아하는 사람, 좋든 싫든 자신에게 충성하기 원하는 우두머리쯤이 아닐까 생각 든다. 그들의 취향대로 욕심대로 흘러 가는 게 대부분의 조직문화이지 않나 싶다. 힘없고, 정치 싫어하는 이들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가다 어느 순간이 되면 덤덤이 그곳을 떠나게 되리라. 남은 이들만 악착같이 살아 내기 위해 또 다른 줄을 세우고, 편을 가르는 일로 열심히 일 것이다.


이번 주 회식이다. 정말 가기 싫다. 싫다고 안 갈 수 없다. 이틀 동안 내 다리가 부러지지 않는 이상 그날 나는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바라는 건 날 건들지 않았으면 한다. 술기운에, 별생각 없이 가만히 있는 날 건드린다면 나도 내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솔직히 언제든 퇴사할 마음을 품고 있기에 회식자리에 끌려는 가지만 내 의지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더 이상 두려울 게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이왕이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가게 되는 그 순간까지 좋은 모습을 남기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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