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순위경기가 아닙니다.

어떠한 선택에도 삶은 지속되고, 선택에 후회를 남기지 말자.

by 김형준

아내와 족발에 소주 한 잔하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아내가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시 돌아 가보고 싶은 순간이 있어? 망설임 없이 답을 이어갔습니다.

“2학년으로 복학하고 아르바이트 하며 첫 학기를 시작했어. 그때는 졸업을 제 때 하는 게 목적이었고, 그러기 위해선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학비를 마련해야 했었지.”

“그랬는데?”

“2학기 시작 후 얼마 뒤 아는 형이 사업을 하자고 제안 받았어.”

“그랬었지.”

“고민했어. 이대로 졸업 하고 제대로 된 직장을 찾아 가는 게 맞을지? 아니면 기회라 생각하고 도전해 보는 게 맞을지. 어떤 선택을 했는지 당신도 알지.”

“그렇게 학교 보단 일을 선택했고. 4년 반을 열심히 살았지만 결과는 야반도주로 마무리 했지.”

“그 분 소식은 아직 없는 거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저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첫 번째 변곡점이라 생각합니다. 그때의 선택으로 지금까지의 삶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만약 사업이 아닌 학업을 선택했다고 짐작해보면 졸업 후 나름 괜찮은 직장에서 중간관리자 쯤 되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업을 선택했고 실패로 끝났습니다. 실패 후 남겨진 빚을 갚기 위해 한가하게 미래를 생각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다음 달 카드 값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직장을 구해야 했습니다. 운이 닿아 열흘 뒤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더 큰 세상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때 시작한 일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때가 서른 살이었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대리, 과장이 될 때 저는 반 신입이었습니다. 취직한 회사 업무에는 경력이 없었습니다. 낙하산이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다행이 우호적인 분들이라 큰 불편 없이 하나씩 배워갈 수 있었습니다. 한참 뒤쳐진 상태에서 시작했기에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마저 제 자리를 찾지 못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었습니다. 학업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학비가 모일 때 마다 한 학기씩 다녔습니다. 그렇게 다녔던 학교를 입학 후 15년 만에 졸업했습니다. 이마저도 아내의 도움과 앞만 보고 달리지 않았다면 불가능 했을 겁니다. 벼랑이라고 생각했던 순간 새롭게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앞에 놓인 수많은 장애물을 헤지며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그런 노력이 결혼으로 이어졌고, 아이를 갖게 되었고, 내 집을 장만하고, 졸업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photo-1488903809927-48c9b4e43700.jpg?type=w1 © veklabs, 출처 Unsplash



마흔과 두 아이 그리고 노후.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서른 이후 숨 가쁘게 달려왔지만 지금 내 손에 무엇이 남아있는지 들여다봤습니다. 제 주변에 마라톤 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의 훈련을 보면 지구력을 위한 체력 훈련, 시간 안에 들어오기 위한 속도 훈련에 집중하는 걸 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마라톤은 그저 열심히 끈기 있게 달릴 수 있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분을 통해 알게 된 건 속도였습니다. 전 구간을 뛸 때 평균 속도에 따라 목표하는 시간 안에 완주가 가능해 진다고 합니다. 평균 속도는 전 구간 중 빠른 속도를 요구하는 구간, 일정한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구간을 적절히 안배해서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이런 속도의 안배가 필요할 겁니다. 원하는 모습의 인생을 만들기 위해 빨리 뛰어야 할 시기가 있고, 체력 안배를 통해 일정한 속도로 뛰어야 할 시기가 있을 겁니다. 마흔이 되기 전까지 앞만 보고 최선을 다해 뛰는 시기였다면, 마흔 이후부터는 속도 보단 완급을 조절할 지혜가 필요해 보입니다.


사냥감을 노리는 사자 한 마리가 있습니다. 그 주변에 사슴이 무리지어 있습니다. 사자는 무리를 공격하지 못합니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사자는 천천히 행동을 옮기려 합니다. 사슴도 사자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옵니다. 무리의 사슴들은 뛰기 시작합니다. 사자도 뛰기 시작합니다. 사자가 노리는 표적은 떨어져 있는 한 마리입니다. 그 사슴을 향해 전력을 다해 뜁니다. 뛰는 중간 또 다른 사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오지만 사자는 이미 목표로 정한 사슴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리곤 사냥에 성공합니다. 목표를 정해 앞만 보고 가는 사자에게 달리는 중간 눈에 들어온 다른 사슴은 고려의 대상이 안 됩니다. 이미 목표가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선택을 할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사자는 표적이 된 사슴에 집중했고 그 선택이 사냥의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자에게 속도는 사냥감을 잡기 위한 수단이었고, 무리와 떨어진 한 마리의 사슴을 선택한 건 방향이었습니다. 사자의 사냥을 봤을 때 속도가 중요했을 까요, 아니면 따로 떨어진 한 마리를 선택했던 방향이 중요했을 까요?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로 떨어진 한 마리를 선택해도 따라 잡을 수 있는 속도가 없다면 허탕 치게 됩니다. 사슴의 무리로 무작정 달려들었다면 일 대 다의 싸움이 되어 아마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결정되고, 그 결정에 따라 지금의 내 모습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매 순간 결정을 내린 우리는 그 결정에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앞만 보며 최선을 다합니다. 때론 너무 몰입한 나머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잊을 때가 있습니다. 속도만 생각하다 방향을 잃는 것과 같을 겁니다. 또 반대로 최선을 다하지 못한 삶은 후회를 남기게 되고 후회가 반복되며 자신의 선택이 잘못 되었다고 스스로를 탓하게 됩니다. 우리는 결과를 알고 선택할 수 없습니다. 선택에는 결과에 대한 불안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불안하다고 선택을 미루면 삶은 전진할 수 없습니다. 불안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이 바로 선택에 집중하는 겁니다.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집중하면 불안은 자연스레 이겨내게 됩니다. 목표에 닿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행동이 곧 속도가 됩니다. 사자가 사슴을 잡아야 먹잇감을 해결할 수 있듯 목표가 정해지면 최선을 다해 달려야 하는 건 당연한 순서입니다.


photo-1490698900541-76d9b74bdcac.jpg?type=w1 © timgraf99, 출처 Unsplash


직장생활의 주기를 보면 신입생 때는 앞만 보고 달려야 합니다. 경쟁이 시작되는 겁니다.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자신의 입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또 한 번 치열한 싸움이 시작됩니다. 결혼과 출산을 통해 새로운 가정이 만들어 집니다. 자신만 생각해 오던 삶에서 가족을 챙겨야 하는 더 혹독한 현실에 놓이게 됩니다. 이때부터가 생존을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하는 시기입니다. 만약 여기서 뒤처지게 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의 생계를 위협받게 됩니다. 냉혹한 현실 속에서 앞만 보고 달릴 뿐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그렇게 달리다 어느 순간이 오면 아이들은 하나 둘 자기 자리를 찾아 떠납니다. 더 이상 사냥할 체력도 빠른 발도 무뎌져 있습니다. 그 때 남은 거라고 오랜 경험과 유연한 사고뿐입니다. 이는 젊어서는 가질 수 없는 빛나는 그 무엇이 되어 있습니다. 훈장과도 같은 것입니다.


노년의 삶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치열한 삶을 살아낸 우리에게 훈장처럼 남겨진 삶을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지혜는 또 다른 시작의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풍부한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다가 올 삶의 또 다른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빠른 발과 튼튼한 체력은 없지만, 사냥감이 주로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사냥할 수 있는지, 또 반드시 자신보다 빠른 발을 가진 먹잇감만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어 있을 겁니다. 치열한 삶을 살아낸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특별한 경험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이를 활용하는 건 선택의 몫입니다. 등 떠밀리듯 경험도 없는 일에 남은 생을 맡겨서는 안 됩니다. 정말로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생소한 일을 시작해야 한다면 앞서 시작한 이들보다 두 배, 세 배 더 준비한 이후 뛰어 들어야 합니다. 철저한 준비만이 자신을 지켜주는 보호막이 되어 줄 것입니다.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삶은 이어지게 됩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른 적절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속도를 낼 것인지, 방향을 선택할 것인지. 중요한 건 어떤 선택이든 결과에만 몰입해 과정을 돌아보지 않거나 주변을 둘러보지 않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금이 최고의 순간은 아닙니다. 더 좋은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지금에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이면 충분할 겁니다.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보고, 혼자 앞서가기보다 함께 발 맞춰 걸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할 겁니다. 삶은 목적지에 먼저 도착해야 하는 순위경기가 아닙니다. 삶은 목적지를 향해 같은 속도로 서로 돕고 의지하며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어떤 것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살고 있는지 돌아볼 때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