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에 집중하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며 칠 전 케이블 영화 채널에서 짐캐리 주연의 ‘트루먼 쇼’ 마지막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티브이 쇼 주인공이었음 깨달은 뒤 배를 타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었습니다. 트루먼은 진실을 알게 된 이상 그 곳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방송국에선 이를 막기 위해 폭풍우를 일으켜 그를 단념시키려 합니다. 방송국의 방해를 예상 했다는 듯 다시 일어나 키를 잡고 항해를 이어갑니다. 배는 이내 세트 벽에 부딪히며 멈춰 섭니다. 이 때 담당 피디의 회유가 시작됩니다. 너의 선택은 잘못 되었다. 이 문을 나서면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된다. 두렵지 않느냐? 너는 이곳을 벗어나서 살 수 없다. 하지만 트루먼은 가볍게 웃으며 세트 한 곳의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의 발을 내딛게 됩니다.
진실은 그에게 선택하라 합니다. 진실에 눈 감고 머무를 것인지, 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세상 속으로 들어갈 것인지. 트루먼은 진실을 받아들입니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거짓된 삶을 포기합니다. 편안했던 일상을 포기하고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선택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도 결과를 알 수 없는 불안한 선택의 연속 입니다. 결과를 알 수 있는 선택은 없습니다. 결과를 알 수 없기에 선택의 순간이 두려울 겁니다. 두려움이 선택을 주저하게 만들고, 판단을 흐리게 만들며, 선택에 확신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모든 선택이 완벽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선택에 후회를 덜 남기고 오류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 합니다.
하나를 선택했다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합니다. 둘 다 얻기 위한 선택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일을 선택하면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해야 하고, 더 많은 재산을 얻고 싶다면 건강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사랑을 얻기 위해 가족을 버리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교세라’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낸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일생에 가족의 자리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에게 가족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회사 규모가 커지며 책임져야 할 직원이 많아질수록 가족에 소홀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두 아이의 성장과정을 곁에서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이 후회로 남는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늘어나는 직원을 가족으로 생각했고, 이들에게 집중하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두 아이와 아내는 우선순위가 될 수 없었습니다. 직원들을 가족으로 생각하겠다는 신념이 지금의 ‘교세라’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웠으며 그 만의 독특한 경영철학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겁니다.
요즘을 사는 우리는 원하는 삶을 위해 선택은 필수입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워라밸’을 외치지만 아직은 먼 나라 이야기 같습니다. ‘워라밸’ 또한 선택을 강요합니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춰 줄 테니 경제적 안정을 포기해야 한다. 야근 없애 줄 테니 수당 안준다. 주말 근무 안하게 해 줄 테니 수당 안준다. 일한 만큼 받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일도 안하고 수당을 받겠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현실은 OECD 평균 연봉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는 직장인에게 야근, 주말 수당은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마저도 초과 근무한 만큼 받는다면 다행이지만 더 많은 직장인이 야근, 주말 수당은 꿈도 못 꾸는 것이 현실입니다.
삶을 길게 봤을 때 분명 현명한 선택은 필요합니다. 일을 줄여 건강을 되찾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비단 건강 문제 뿐 아니라 삶에서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한 선택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걷기 열풍을 일으킨 배우 하정우는 출퇴근 시 별일 없으면 걷는다고 합니다. 차로 이동하면 편하고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걷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건강을 유지하겠다는 목적과 의미를 두었기에 일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불편을 감수 하더라도 정해놓은 원칙을 지키겠다는 신념을 선택했습니다. 걷는 행위에 원칙과 신념을 부여함으로써 지치지 않을 수 있었고, 의미를 찾을 수 있었고, 건강도 유지할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의 선택도 이러해야 할 겁니다.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다른 하나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트루먼이 가상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미지의 현실을 선택했듯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합니다. 트루먼은 미지의 현실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진정한 세상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선택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가상의 안락한 삶에 미련이 남는 다면 선택에 집중 할 수 없었을 겁니다.
마흔 이후의 삶에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마치 트루먼이 살아왔던 가상현실에 벗어나 자신이 진정으로 살고 싶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선택과 같을 겁니다. 마흔 이전의 삶은 사회에서 자리 잡고, 가정을 이루는 시기였을 겁니다. 좋아하고 원하는 일 보다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써 일이였을 겁니다. 직장의 굴레 속에 언제까지 머무를 수 없을 겁니다. 굴레를 벗어나야 하는 순간이 올 겁니다.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하는 순간이 올 겁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어떤 것을 버려야 할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버리는 것에는 미련을 두지 말고, 선택한 것에 확신과 신념을 더해야 할 겁니다. 선택은 불확실하기에 둘 다 미련이 남을 수 있습니다. 가보지 않을 길에 대한 미련 대신 선택한 길에 대한 확신을 갖고 집중한다면 선택에 따른 불확실성을 최소화 시킬 수 있을 겁니다.
‘성공적인 의사결정이란 단지 옳은 결정을 내릴 확률이 크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실수를 보완해나가는 것은 옳은 결정을 내릴 확률을 높이는 과정으로 보면 된다.’
『하버드 행동심리학 강의』 중 웨이슈잉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