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려 사는데 필요한 한 가지 #1. 술자리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시험을 봤던 세대다. 실업계는 고입 시험 점수로 원하는 학교에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진학 시험은 지금의 수능 시험처럼 정해진 날 일제히 봤다. 이날을 위해 날짜를 카운트해 간다. 수능 100일처럼 고입 100일도 하나의 행사였다. 작은형은 내가 지원할 고등학교를 먼저 다니고 있었다. 나보다 실업계고의 생태를 먼저 경험하고 있었다. 신 문물을 먼저 접하고 있던 작은형 손에 이끌려 100일 주를 마시게 되었다.
한양대 근처에 살던 우리는 100일 앞둔 그날 밤 소주 병이 담긴 봉투를 들고 불이 꺼진 대학 운동장을 찾았다. 달빛이 은은하던 날이라 주변이 어둠 진 않았다.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준비한 소주와 과자를 세팅했다. 의식처럼 준비된 주류를 마주하기 전부터 가슴은 뛰고 있었다. 형에겐 자연스러운 일상이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술잔이 오길 기다렸다. 첫 잔이 내 손에 쥐어졌다. 형은 술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먹고 죽는 거 아니니 겁먹지 말고 입에 대봐"
"정말이지"
"괜찮아 마셔봐"
16살 어느 밤 그렇게 술과 조우했다.
시험 준비로 불안하던 나를 그 순간만큼은 잠시 잊게 해준 건 술이라기 보다 하나의 의식 같았던 그날 밤, 그 운동장에서 형과 함께 하고 있던 분위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날의 술 덕분이라 하긴 그렇지만 다행히 원하는 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한 반이었다. 졸업 당시 53명이 3년을 함께 했다. 수업이 끝나면 가끔 아주 가끔 호프집에서 맥주 한 잔 정도 마시는 일탈은 했었다. 당시는 미성년 출입 제한을 법으로 제한하기 전이었다. 그 덕에 고등학교 3년, 나름의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며 술자리의 농도는 짙어졌다. 지금도 가장 편한 술자리는 동창들과 함께 하는 자리다. 추억을 공유하고 있기에 이야기 주제도 다양하고 동종업계에 일하다 보니 서로의 고충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일 것이다.
사회생활에서 술자리는 빠질 수 없는 옵션이다. 직장, 거래처, 동호회 등 만나는 사람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술자를 필수가 되었다. 이중 즐거운 자리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자리도 있다. 어떤 사람과 함께 하느냐에 따라 자리의 분위가 좌우될 것이다. 직장 안에서도 동료나 후배와 함께 하는 자리는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는 자리다. 의무적 회식은 마냥 즐거울 수 없는 자리이다. 술이 술이 아니라 독이라도 된 듯 갑갑하고 불편하다. 그렇다고 피할 수 없는 현실에 꾸역꾸역 건배 제의를 받아들인다. 백화점 매장에 시계가 없듯 술 집에도 시계가 없다. 즐거운 자리는 집에 가기 싫어 시간을 확인하고, 즐겁지 않은 자리는 집에 가고 싶어 시간 확인을 한다.
많은 직장인은 퇴근 후 자발적 술자리를 만든다. 그날의 스트레스를 술자리로 푸는 게 보통이다. 술자리는 술이 목적이 아니다. 술은 대화를 거들 뿐이다. 잔을 따르며 안부를 묻고, 따른 잔을 마시며 안부에 답하고, 또 한 잔을 따르며 푸념을 늘어놓고, 따른 잔을 마시며 위안을 건넨다. 스럽게 한 잔 한 잔 돌다 보면 펌프가 물을 길어 올리듯 마음속 깊은 이야기까지 끌어올리게 된다. 직장에서 겪고 있는 문제, 육아의 어려움, 부부간 문제, 미래에 대한 불안, 경제적 어려움 등 상대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내가 갖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공감이 간다.
마음 터놓을 상대가 있다는 건 삶에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 그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는 내가 가진 고민을 그 순간은 잊게 하고, 위로받고, 용기를 얻게 된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친구가 필요하고 가족을 꾸리고 직장을 다니며 새로운 사람을 끊임없이 만나게 된다.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사람이 필요하고, 사람에게 상처받기도 하고, 사람에게 위로받기도 하는 게 사람이다. 내가 사는데 꼭 필요한 것이 사람이듯, 사람과 사람 사이엔 대화가 필요하고, 대화를 통해 서로가 겪고 있는 문제와 어려움을 풀어갈 수 있다. 이런 대화의 장이 우리에겐 술자리일 것이다.
재료가 좋은 술은 때론 약이 되기도 한다. 약이 되는 술이 좋은 건 몸을 치료하는 치료제 이전에 서로의 마음을 다독이며 위로하는 마음의 치료제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