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싫으면 상대도 싫고,
내가 하면 상대도 하게 된다

by 김형준

2022. 07. 22. 07:45



공포영화를 보면 다 같이 겁먹은 상황에서 자신은 뒤로 빠지고 상대를 앞세우는 역할이 제일 먼저 죽습니다. 내가 하기 싫은 걸 남에게 시키는 사람의 최후를 잘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곤란한 일이 생기면 부하직원을 앞세우거나 책임을 피하는 상사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들은 오늘만 사는 부류입니다. 이들이 길고 오래가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장수하는 이들의 특징 중 꾸준히 몸을 움직인다는 게 빠지지 않습니다. 운동이든 소일거리든 매일 일정한 활동을 합니다. 이 말은 남이 차려주는 밥상이 아닌 스스로 움직여 밥상을 차려 먹는다는 의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직장이든 인생에서든 오래 사는 이들의 비결은 스스로 몸을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맞벌이 10년 차입니다. 결혼 초기는 장모님이 살림과 아이를 봐주셔서 편하게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큰딸이 초등학교 들어갈 즈음 장모님은 시골로 내려가셨습니다. 이때부터 제대로 맞벌이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직장생활 힘들지 않은 사람 없습니다. 집에 오면 누구나 편히 쉬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유지하려면 최소한의 살림을 해야 합니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까지. 매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밥을 먹기 위해 차리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반복입니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지만 널고 개고 정리는 사람 손으로 합니다. 청소도 청소기가 있지만 결국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저는 살림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시키는 것만 했습니다. 그때는 매사가 부정적이었습니다. 가족조차 범접할 수 없도록 넘치는 화로 방어망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내도 도와달라는 말을 못 꺼냈습니다. 저도 살림을 할 마음도 없었고요. 그러다 자기 계발을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게 사람이라지만 변할 수 있는 것도 사람입니다. 극적으로 변했다기보다 조금씩 천천히 진행 중입니다. 시간의 가치와 내가 싫은 건 상대방도 싫다는 걸 깨닫고부터 살림도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계발을 위해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게 시간입니다. 집에 있는 시간을 밀도 있게 사용하려면 주변의 방해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방해라기보다는 해야 할 일을 다 마친 상태입니다. 아내는 설거지를 하는데 책을 읽고 있으면 아내는 속이 터질 겁니다. 아내는 청소를 하는데 강의를 듣고 있으면 천불이 날 겁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원하는 게 있다면 상대도 갖고 싶어 합니다. 내가 자기 계발 시간을 갖고 싶다면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태도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혼자 1시간 걸릴 일, 둘이 나누면 30분이면 끝납니다. 각자 정한 역할을 하면 살림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간은 각자 알아서 사용합니다.


초등학생, 중학생 두 딸도 집에서는 편히 쉬고 싶어 합니다. 공부는 학교에서 학원에서 다 했으니 집에서는 손을 놓습니다. 하릴없이 뒹구는 모습을 자주 목격합니다. 그렇다고 살림을 시키기에는 아직 무리인 것 같습니다. 대신 엄마 아빠를 돕게 합니다. 돕는 게 특별한 건 아닙니다. 각자 할 수 있는 걸 하는 겁니다. 접어놓은 옷을 각자 정리하고, 빨래할 옷은 빨래 바구니에 담고, 먹고 난 그릇은 싱크대에 담는 정도입니다. 최소한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알아서 할 때보다 그렇지 않은 때가 더 많다는 게 함정이긴 합니다. 그래도 조금씩 살림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족 구성원이면 각자의 역할을 지워주고 알아서 할 수 있게 만드는 겁니다. 이런 생활 습관을 갖게 되면 결혼해서도 아내와 남편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알아서 해주는 남자를 만난다면 더 좋겠지만요.


사춘기를 지나는 큰딸은 자기 방에 들어가면서 더럽다고 말합니다. 누가 봐도 더럽습니다. 가끔 아내와 제가 치워주기는 합니다. 또 스스로 치우기도 합니다. 다만 깨끗하기보다 더러운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는 점입니다. 어쩌다 청소가 아닌 매일 정리가 깨끗한 방을 유지하는 쉬운 방법일 겁니다. 더러운 방을 치우기 싫을 때 엄마 아빠도 마찬가지였겠구나 생각할 때가 올 겁니다. 그런 마음이 들 때 살림에도 적극적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가족 구성원이 제 역할을 알아서 할 때 각자에게 필요한 시간도 자연히 만들어질 겁니다. 그렇게 자율과 규율이 있는 일상을 살 때 만족도 또한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가족의 행복은 누구 한 사람의 희생으로는 얻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2022. 07. 2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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