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7. 29. 07:39
큰딸은 사춘기 접어들기 전부터 수학 학원을 다녔습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수학을 포기했지만 다행히 큰딸은 관심 있어했습니다. 학원 교재는 학교보다 난이도가 높았습니다. 혼자 끙끙거리며 풀다가 정 안되면 저를 찾았습니다. '아빠'를 부를 때면 긴장부터 됐습니다. '내가 모르는 거면 어떡하지?' 태연한 척 아이 옆에서 서서 문제를 읽어 내려갑니다. 한 번에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입을 굳게 닫고 의지를 다지면 다시 한번 읽어 내립니다. '모든 답은 문제에 있다'라고 되뇌면서요. 조금씩 이해가 되면서 아이에게 설명해줍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제가 이해한 부분을 설명해주면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었는지 무릎을 칩니다. 제 설명을 듣고 다시 풀어보면서 정답을 찾아냅니다. 여전히 학원을 다니면서 수학에 진심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때의 경험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질문은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책이나 강의는 일방통행입니다. 작가나 강의자가 전달하는 내용을 받아들이며 몰랐던 부분을 배우게 됩니다. 배운 걸 내 것으로 만들려면 다시 반복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반복을 통해 장기 기억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장기 기억으로 남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쓰기를 처음 배울 때였습니다. 글쓰기와 관련된 여러 책을 읽었습니다. 강의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찾아갔습니다. 강원국 작가는 《강원국의 글쓰기》가 출간된 후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전해 듣기로 하루에도 3~4개의 강연으로 강행군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3주 코스 정규 과정을 개설한다고 들었고 망설임 없이 등록했습니다. 작가의 글쓰기 철학부터 꾸준히 쓰는 방법까지 두루 배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3주 동안 진심을 다해 수강했습니다. 마지막 수업, 질문을 받는 시간이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질문을 했습니다. 저도 질문이 있었습니다. "저 같은 직장인은 첫 책으로 어떤 장르를 쓰면 좋을까요?" 깊이 있는 질문은 아니었지만 강원국 작가에게 듣는 답은 의미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직장인이라면 경험을 살린 자기 계발 분야가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쓰는 게 조금은 수월할 수 있고, 전문성도 더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때의 질문과 답변을 4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강의 시간에 들었던 내용은 대부분 잊었지만 마지막 시간 던진 질문은 아직 기억합니다. 아마도 관심 있는 분야였고, 질문을 했다는 게 오래 기억에 남은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글을 쓰기 위해 다양한 질문을 던집니다. 글감이 없을 땐 질문만큼 좋은 것도 없습니다. 4년 넘게 매일 글을 쓰면서 책이 던지는 질문과 스스로 던지는 질문에 답을 해왔습니다. 질문을 던지며 과거의 내 모습을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답을 찾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도 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고민, 나 자신에 대한 의문, 내가 가진 가능성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한 덕분에 새 직업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여러 질문과 답을 이어온 덕분에 노후의 불안을 조금씩 이겨내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은퇴 이후가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결국 질문을 통해 오늘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학 문제는 풀이까지 맞아야 정답으로 인정됩니다. 당연합니다. 과정이 틀리면 답도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올바른 답을 찾는 시작은 질문에 있습니다. 문제안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질문부터 던지는 게 시작입니다. 질문을 통해 문제가 의도하는 답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 당대 수학자가 많은 이유는 철학을 공부하기 때문입니다. 철학은 질문으로 시작해 답을 찾는 학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 철학적 탐구 과정이 수학과도 연결되고, 철학적 사고의 깊이만큼 수학의 발전도 함께 했다고 합니다.
수학에 여전히 진심이 사춘기 딸에게 프랑스와 철학에 대해 얇게 알려줬습니다. 그 안의 의미를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수학 문제 풀기도 벅찬데 철학까지 공부해야 한다면 아마 두 손 들 수도 있습니다. 일단은 수학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는 걸로 만족합니다. 앞으로 입시는 물론 사회에서도 수학은 꼭 필요한 도구가 될 겁니다. 수학을 포기하고 살아온 제가 지금 가장 후회되는 것 중 하나가 일찍 포기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면 적어도 일찍 포기하지는 않았을 텐데요. 수학에 진심이라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수학은 전공을 떠나 여러 학문에 두루 활용된다는 걸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 가지, 답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정을 더 중요시했으면 합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답은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2. 07. 29. 0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