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해

by 김형준

2022. 08. 12. 07:43



뜸을 들인 밥이 맛있습니다. 숙성된 김치가 제 맛을 냅니다. 시간을 품은 술이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설익은 밥은 안 먹는 게 낫습니다. 고등어조림을 급하게 만들면 무에 양념이 베이지 않습니다. 숙성을 거치지 않은 막걸리는 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서두르면 깊은 맛이 나지 않고, 성급하면 일을 그르치듯 모든 일에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잃어버린 3년'을 견뎌내고 모처럼 외식을 했습니다. 큰형님의 초대로 이름 난 오리요리 전문점을 찾았습니다. 유명세만큼이나 대기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30분은 예상해야 된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이름을 올렸습니다. 음식이 맛있다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주말 오후라 테이블이 교체되는 속도도 빠른가 봅니다. 예상보다 일찍 자리를 잡았습니다. 인원이 많아 두 테이블로 나누어 앉았습니다. 주문은 큰형님이 알아서 해주었습니다. 초대 한 사람이 계산도 하니 당연히 주문도 형님이 했습니다. 자리를 잡은 주변으로 빈 테이블 없이 채워졌습니다. 직원들은 익숙한 듯 순서대로 테이블 세팅을 했습니다. 형님 테이블을 먼저 준비해주고 다음으로 우리 테이블로 올 줄 알았습니다. 직원이 착각을 한 것 같습니다. 우리보다 늦게 온 옆 테이블에 먼저 세팅을 해줍니다. 가만히 두고 봤습니다. 기분 좋게 모인 자리니 굳이 싫은 티를 낼 필요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속에서 왠지 모를 불편한 감정이 올라옵니다. 2~3분 사이 우리 테이블도 차려 줍니다.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결국 아내에게 들릴 듯한 목소리로 "우리 테이블이 먼저인데, 실수하는 구만." 안 해도 될 말은 해버렸습니다. 길어야 3분인데, 그걸 참지 못하고 한 소리 뱉었습니다.


그 말을 직원이 들었다면 기분이 어땠을까요? 하루 종일 같은 일을 반복하며 수많은 손님을 상대하는 직원 입장에선 대수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굳이 따지고 들지 않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입니다. 간혹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면 핏대를 세우는 사람을 만나기도 할 겁니다. 저처럼 우리끼리 주고받고 마는 손님이 있다면 기어이 일을 키워 직원도 자신도 불편한 감정을 갖게 하는 손님도 있을 겁니다. 음식을 차리기도 전부터 감정을 상할 필요 있을까요? 순서가 뒤바뀐 건 분명 불쾌할 수 있습니다. 손님은 기다린 시간만큼 제대로 대접받을 권리도 있습니다. 다만 기다림이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거나 직원의 명백한 실수로 인한 것이라면 말을 하는 게 맞습니다. 제 경우처럼 몇 분만 기다려서 별 일없이 지나갈 수 있다면 참는 지혜도 필요할 것입니다.


음식점을 찾는 이유는 맛있는 걸 먹이 위함입니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동안 기다림을 감수하고 식당을 찾습니다. 기다림 끝에 음식을 맛보면 그 시간이 아깝지 않습니다. 기다림의 지루함도 기꺼이 감수하는 건 음식이 입에 들어가는 그 순간 때문입니다. 방송을 탄 파주의 모 도넛 매장에서 2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줄지 않는 사람을 틈을 기꺼이 서 있었던 건 큰딸이 먹고 싶다는 이유뿐이었습니다. 설령 내가 먹고 싶었어도 그 시간 동안 기다렸을 겁니다. 입에 들어가는 그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서 말이죠.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며 기다림의 피로는 잊었습니다. 맛있게 먹어주는 아이들 덕분에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결과를 통해 과정을 보상받았습니다.


부당한 대접을 받았다고 순간적인 감정에 화를 내기보다 음식점을 찾은 이유를 먼저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기다리는 과정도 기꺼이 즐기면 그것 또한 맛있는 음식만큼이나 가치 있는 시간일 겁니다. 기다림은 과정의 일부입니다. 과정이 빛날 수 있는 건 결과가 좋을 때입니다. 좋은 결과를 만드는 건 결국 태도의 문제입니다. 어떤 태도가 더 나은 결과를 만들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전히 결과로 평가받는 사회입니다. 성적이 그 사람을 말해줍니다. 과정은 쉽게 무시받습니다. 그래도 사춘기 큰딸이 이거 하나만 알았으면 합니다. 과정 속에 기다림이 있고, 기다림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달콤한 열매를 얻게 된다는 것을요. 성급함은 덜 익고 떫은맛만 맛보게 하지만, 기다림은 과즙이 풍부하고 과일 본연의 맛을 맛보게 해 줄 것입니다.



2022. 08. 1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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