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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Aug 15. 2022

글쓰기, 내가 틀릴 수 있다

2022. 08. 15.  06:53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글을 글처럼 쓰는 날이 있습니다. 상투적인 표현과 모호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생각만 많고 정리가 안 됩니다. 이말 저말 두서없이 쏟아냅니다. 앞뒤도 안 맞고 말하고 싶은 내용도 흐릿해집니다. 잘 쓰고 싶어 마음만 앞선 날입니다. 이럴 때 처방은 하나입니다. 처음부터 다시 써라!


6시 53분, 평소보다 40분 일찍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9시까지 충분히 끝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메모를 적으면서 쓸 내용을 정리합니다. 주제와 내용에 윤곽이 잡히면서 도입 글도 떠올립니다. 도입 글을 쓰고 나서 본문에 쓸 사례와 경험을 떠올려봅니다. 좀처럼 잡히는 게 없습니다. 한동안 창밖만 바라봅니다. 머릿속은 떠오르는 이미지를 쉼 없이 넘기며 적합한 장면을 찾고 있습니다. 마땅히 떠오르는 것 없이 시간만 흐릅니다. 조금씩 초조해집니다. 일단 뭐라도 쓰자 싶어 생각나는 대로 씁니다. 정리 안 된 생각을 쓰자니 술에 휘에 입이 꼬이듯 생각이 오락가락합니다. 쓰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한숨만 나옵니다. 여유롭게 시작했지만 여유는커녕 이러다가는 제시간에 못 끝낼 것 같은 불안감이 듭니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분량을 어느 정도 채우도 다시 읽어보니 이건 어깨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도저히 읽기 민망할 정도로 글 같은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9시가 다 되었습니다. 그대로 멈췄습니다. 저장하고 로그아웃, 노트북을 끄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운전대를 잡고 생각해 봤습니다. 자책하기보다 그럴 수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매일 정해놓은 시간을 지키는 건 내 나름의 약속이었습니다. 약속은 지키려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약속 이전에 나 자신을 먼저 챙기는 게 필요합니다. 글이 생각대로 써지지 않을 때도 있을 테고, 안 써진다고 자책을 하면서까지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글쓰기입니다. 글쓰기를 직업을 정했지만 직업으로써만 대하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이니 스스로 즐길 수 있게 마음의 여유를 갖기로 했습니다. 그런 마음 없이 일이 되어버리면 얼마 못가 지칠 것 같았습니다. 언뜻 자기 합리화로 비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자기 합리화입니다. 그러면 어떤가요?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합리화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매일 9시까지 한 편의 글을 완성하겠다는 건 내가 나에게 한 약속일뿐입니다. 지키지 못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잘잘못의 잣대를 들이대기 전에 이유부터 듣는 게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자신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오늘 정한 주제는 '내가 틀릴 수 있다'였습니다. 다툼이나 주장을 펴기 전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면 상대와 불필요한 논쟁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주제가 조금은 심오했습니다. 잘만 쓰면 있어(?) 보일 것 같았습니다. 그럴듯하게 한 편을 완성하면 어깨가 한 뼘 정도는 올라갈 것 같았습니다. 착각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글을 쓰기 전부터 착각에 빠지니 글이 산으로 갈 수밖에요. 그러니 몇 번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고, 내용도 주제도 길이 안 든 망아지 마냥 이리저리 날뛰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건 이럴 때 사용하는 건가 봅니다. 잘 쓸 수 있다고 자만하니 결국 때를 놓쳤고 너덜 해진 화면만 남았습니다. 오만, 제가 틀렸습니다. 글을 쓸 때는 항상 두 발을 바닥에 붙이고 난 뒤 시작하라고 이은대 작가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두 발을 바닥에 붙인다는 의미는 들떠 있는 마음과 떠다니는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글 좀 쓸 줄 안다고 건방 떨지 말라 했습니다. 아마도 '건방'이 마음 한편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보기 좋게 깨졌던 것 같습니다.


영화 <한산>을 보러 온 가족이 나섰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가 살짝 걱정됐습니다. 극장을 몇 번 갔었는데 영화관 소리에 익숙지 않아 중간에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호기롭게 따라나서길래 기대를 했습니다. 첫 화면부터 눈을 가리고 귀를 막습니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울고 있습니다. 재빨리 팝콘과 음료수를 챙겨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내와 큰딸을 남겨두고요. 집에 돌아와 스마트폰을 쥐어주고 저는 다시 화면을 켰습니다. 그렇게 다시 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쓰면서 생각해봤습니다. 둘째가 화면과 소리에 겁을 먹은 건 익숙지 않아서 인 것 같습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큰 소리가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익숙해지려면 오늘 같은 과정을 몇 번 거쳐야 할 겁니다. 무섭다고 피하기만 하면 조금도 나아지 않습니다. 영화비가 조금 아깝긴 했지만 그래도 좋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둘째에게도 그럴 수 있다고 안심시켰고 다시 시도할 수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둘째가 겁을 내는 건 틀린 게 아닙니다. 단지 익숙지 않아서 다를 뿐입니다. 다름을 틀리다고 하면 아이는 다시 영화를 볼 용기를 안 낼 수도 있습니다. 다름을 인정해주고 가만히 두고 보면 머지않아 자연히 보게 될 때가 있을 겁니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도 있습니다. 미친 듯이 휘갈겨 써내는 날도 있습니다. 잘 써진다고 우쭐해할 필요도, 안 써진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그런 날도 있다고 인정하면 그만입니다. 영화관이 아직 익숙지 않은 둘째처럼 글쓰기도 아직 익숙지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아마 평생 가도 글쓰기는 익숙지 않을 겁니다. 오늘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글쓰기, 어렵습니다. 힘듭니다. 괴롭습니다. 그래도 포기 안 합니다. 포기하려고 시작한 게 아닙니다. 끝까지 가보려고 시작했습니다. 끝을 만날 수 없다는 게 어쩌면 글쓰기의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퍼득 생각났습니다. 오늘처럼 좌절도 하고, 어떤 날은 희열도 맛보고, 또 어떤 날은 한껏 분위기에도 취하면서 그렇게 써 나가는 게 '글쓰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처음 정했던 주제는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 글이 400번째 글입니다. 나름 기념할 수 있는 글이 된 것 같습니다. 의도치 않게요. 401번째 글은 다시 사춘기와 사십춘기의 공생 일기를 이어서 써보려 합니다. 



2022. 08. 1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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