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8. 22. 10:53
탈무드에는 '술 마시는 시간을 낭비하는 시간이라 생각하지 말라. 그 시간에 당신의 마음은 쉬고 있으니까'라고 술을 긍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맞습니다. 술을 마시는 동안 마음도 쉬고 사람 사이도 돈독해지고 없던 정도 생기니 말입니다. 하지만 뭐든 지나치면 그르친다는 말처럼, 특히 술이 과하면 마음도 몸도 관계도 해치고 맙니다. 술은 나 자신은 물론 일에서 대인 관계에서 미치는 영향은 다양합니다. 내가 술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술도 나에게 득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2008년 11월, 결혼을 했습니다. 이듬해 봄, 아내는 첫 아이를 임신했습니다. 그해 여름 장인어른 묘를 이장하기로 했습니다. 처가를 중심으로 친척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이장은 동네 행사나 다름없었습니다. 평생을 터전으로 산 곳이니 알만한 사람은 모두 함께 했습니다. 저에게는 어려운 자리였습니다. 이제 갓 결혼한 새 신랑이 처가 식구들 사이에서 그것도 '이장'이라는 행사를 치러내야 했습니다. 8월의 더위를 느낄 겨를도 없이 구둣발로 야산을 훑고 다녔습니다. 저에게 특별한 걸 기대하지도 제가 무언가를 할 수 있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머릿수 하나 채우는 것뿐이었지만 긴장은 놓을 수 없었습니다. 오전부터 내린 비를 맞으며 이어진 이장은 점심이 한참 지나서야 마무리되었습니다. 옷도 신발도 이미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어른들은 아랑곳 않고 정리가 된 그 자리에서 제사를 위해 준비한 음식과 술로 고단한 몸을 달랬습니다. 아침과 점심을 먹지 못한 저는 밥이 들어가기도 전에 어르신들이 건네는 소주를 받아 단숨에 들이켰습니다. 새신랑이니 반가운 마음에 너도나도 한 잔씩 다라 주셨습니다. 바짝 긴장해서 인지 받는 술잔을 다 셌습니다. 어림잡아 소주 두 병은 마신 것 같았습니다. 평소 같으면 이미 취했을 텐데 자리가 자리인지라 멀쩡히 처갓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진흙이 묻은 옷과 신발 대신 여벌 옷으로 갈아입고 저녁밥상이 차려지길 기다렸습니다. 선산에서 술자리가 끝난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녁밥을 먹고 나니 큰집으로 모이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고 따라나섰습니다. 어려운 자리이니 정신을 바짝 차려 상에 둘러앉았습니다. 특별한 날, 귀한 손님(새 신랑인 저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처가 작은 형님의 처)이 둘이나 왔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비싼 술을 내주셨습니다. 낮에 마신 술로 이미 취기가 오른 상태였지만 주는 잔을 마다할 수 없었습니다. 긴장한 체로 술잔을 받았고 두 잔을 받아 마신 것까지 기억에 남긴 체 필름이 끉기고 말았습니다. 정신이 흐릿하게 돌아온 순간은 비가 오는 대문 아래 작은 형님과 나란히 앉아 아내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몇 마디를 했을까 다시 기억이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억이 돌아왔을 땐 장모님 댁 평상에 엎드려 마당을 향해 오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토하는 그 순간이 너무 괴로워서 술도 잠도 깼던 것 같습니다. 밤새 이어진 토악질에 장모님은 제가 죽기라도 할 것 같아 안절부절못하셨습니다. 날이 밝아도 병원에 데려갈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섬 안에는 마땅한 병원도 없었고, 제대로 된 병원은 배를 타고 나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술병이 제대로 나서 며칠을 고생했습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처가 식구가 모이면 제 행동은 여전히 안주거리입니다.
흉이 될 만한 주사를 부리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술을 이기지 못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났고 몸을 회복하기까지 제법 긴 시간이 걸렸다는 겁니다. 그렇게 호되게 당하고 나면 다시 술을 안 마시고 싶어 집니다. 하지만 얼마 못가 기억은 리셋되고 어느새 술자리에서 술잔을 부딪히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스무 살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면 27년 동안 마신 게 됩니다. 그 사이 술로 인해 실수도 하고 술 때문에 몸도 상하고 술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술이 술자리가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술자리를 통해 마음을 터놓는 친구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술자리에서 연인에게 마음을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술자리에서 삶에 도움이 되는 진리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27년은 장단점을 두루 경험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기간이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술은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술을 끊을 수 있길 바랐습니다. 다행히도 코로나 3년을 겪으며 바람이 현실이 될 수 있었습니다.
3년 가까이 강제로 사람을 안 만나며 지냈습니다. 자연히 술자리도 줄었습니다. 회사에서 회식도, 모임의 술자리도, 친구와 소주 한 잔을 마시는 기회마저 잃었습니다. 그나마 집에서 아내와 마시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주말 저녁 반주로 기껏 소주 한 병이 최대였습니다. 마시는 횟수와 양이 줄자 술에 대한 생각도 줄었습니다. 그러다 결심이 섰습니다. 9개월째 입에 안 댔습니다. 다시 일상이 회복되었고 술자리를 갖지만 술은 안 마십니다. 안 마셔도 사람 만나는 데 아무 지장 없습니다. 눈치를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저만 참아내면 술을 마실 일은 없습니다. 잘 견뎌내고 있습니다. 안 마시는 지금, 마실 때보다 당연히 좋은 게 많습니다. 몸도 정신도 일상도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술자리로 인해 다음날 아침을 걱정할 일도 없어졌고, 마신 술로 인해 몸이 괴로울 일도 사라졌고, 술자리에서 얼마나 마셔야 할지 눈치 볼 이유도 없습니다. 술은 스스로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마시는 게 좋고, 이보다 더 좋은 건 아예 입에 대지 않는 것입니다. 술을 숱하게 마셔보고, 술을 마시지 않는 지금을 비교해본 저만의 결론입니다.
성인이 될 큰딸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선택할 문제입니다. 마시지 말라고 말려도 언젠가 어디선가 마시고 있을 것이고, 말리지 않아도 아예 술에 입을 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보다, 좋은 걸 보여주는 것만큼 설득이 되는 것도 없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지금의 저를 보고 큰딸도 느끼는 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호기심에 술을 마실 수는 있지만 술을 마시지 않을 때 얻을 수 있는 장점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장점도 경험해보면 좋겠습니다. 물론 단점도 경험해봐야 장점을 더 기억하게 될 겁니다. 술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잃을 수 있는 게 많다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TV에서 본 도로를 안방 삼아 잠든 이들을 오래오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술이 과하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꼭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더 나아가 지금 제가 술을 끊고 누리는 일상도 큰딸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길 바라봅니다.
2022. 08. 22. 1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