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8. 27. 07:26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 약속만 하고 지키지 않는 부모, 모든 걸 해주겠다며 속삭이는 연인, 허세만 가득한 친구.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정치를 안 해봐서 공약을 남발한 적은 없지만, 부모로, 연인으로 친구로 살면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던 적은 있었습니다. 지키지 못한 약속은 결국 관계의 신뢰로 이어집니다. 거짓말하는 부모, 연인을 기만하는 애인, 허풍만 떠는 친구. 약속은 상대방과 하기 이전에 자신이 먼저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한 말을 스스로 지키는 게 약속의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직장을 다니지만 월급을 못 받았습니다. 아니 안 받을 각오로 함께 사업을 했습니다. 그래도 생활은 해야 했습니다. 지갑에는 신용카드 3장이 있습니다. 매달 카드대금을 돌려막기 합니다. 막아야 할 돈은 매달 늘어납니다. 더 이상 돌려 막을 여유가 없어지자 카드도 중지됩니다. 친구를 찾았습니다. 자주 연락을 하는 몇몇 친구를 찾아 나섰습니다. 자연스럽게 만나 헤어지기 전 돈 좀 빌려달라고 부탁합니다. 흔쾌히 10만 원을 빌려줍니다. 20만 원을 빌려주는 친구도 있습니다. 빌릴 때 당당하게 말합니다. "고맙다, 조만간 꼭 갚을게." 당당하게 말했지만 '조만간'이라는 애매한 말만 남겼습니다. 시간이 제법 흘렀습니다. 여전히 빌린 돈을 못 갚았습니다. 빌려 준 친구는 빌려준 걸 잊은 것 같습니다. 가끔 만나지만 돈 갚으라는 말을 안 합니다. 친구가 말하지 않으니 저도 굳이 먼저 꺼내지 않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여전히 갚지 못한 돈이 남아 있습니다. 약속을 해놓고, 빌릴 땐 꼭 갚겠다고 다짐을 하고는 잊은 척 살아왔습니다. 처음 약속했던 그때의 저는 그 약속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친구와의 약속 이전에 나 자신이 먼저 알고 있습니다. 나와의 약속이 먼저였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아파트 60평짜리 사 준다." 5년 전 적어놓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입니다. 그 약속을 지킬 마음으로 허풍 비슷하게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아내는 단박에, "사주고 나서 말 해라, 뜬구름 잡는 말 백 마디 하면 뭐해 손에 잡히는 게 없는데." 맞습니다. 아무리 입으로 떠든 들 내 집이 생기지 않습니다. 약속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말로는 팬트하우스도 사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세입니다. 버킷리스트를 쓰고 지키기 위해 지금껏 책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직업을 바꾸기 위해 직장을 다니며 매일 자기 계발을 합니다. 5년째 같은 일상을 반복하지만 내 집을 마련할 만큼 경제적 안정을 갖지 못했습니다. 이런 저를 지켜보는 아내에게 마음의 위로라도 주고 싶어 집을 사주겠다고 허풍을 떨었습니다. 아내는 현실적입니다. 노력하는 건 보기 좋은데 실현 가능하고 현실이 되었을 때 말을 꺼내라고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아내도 제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닐 겁니다. 누구나 장밋빛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현실을 잠시 잊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다시 힘을 내기도 하지요. 그렇게 매일 꾸준히 하다 보면 기회도 올 거라 믿습니다. 기회가 오면 약속을 지킬 기회도 갖게 될 테고요.
부회장 선거를 치른 큰딸이 큰 차이로 당선되었습니다. 공약을 무엇으로 했는지 물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급하게 정했다고 답합니다. "지킬 수 있겠어?" 잘 모르겠답니다.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이미 뱉은 말이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알려줬습니다. 방법을 찾아서라도 지켜야 한다고 하니 뜨끔했는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지켜보겠다고 약속합니다. 큰딸에게 듣기 좋은 말로 설교했지만 정작 제 자신은 여전히 지키지 못한 약속이 남아 있었습니다. 저 또한 뜨끔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키지 못한 약속은 마음에 찌꺼기를 담아두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오래된 찌꺼기는 악취를 풍기게 됩니다. 악취에서 그치지 않고 썩으면서 온갖 질병을 유발합니다. 오래 두면 결국 건강을 위협할 것입니다. 건강하게 잘 사는 방법은 찌꺼기를 깨끗하게 치우는 것입니다. 약속한 걸 지키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일 것입니다.
내가 한 약속은 모두 내 입에서 나왔습니다. 내 입에서 나오면 나 자신이 가장 먼저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당당하기 위해서도 내가 뱉은 약속은 꼭 지켜야겠습니다. 시간이 걸리는 것도, 지금 당장 지킬 수 있는 것도 결국 나 자신에게 당당해지기 위해서라도 실천해야겠습니다.
2022. 08. 27. 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