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놈만 걸려라

독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by 김형준

2022. 09. 06. 07:36




단어나 이름이 기억날 듯 입 안에서 맴돌 때가 있다. 단어 관련된 신경 세포들이 일부만 활성화되었을 때 생기는 현상으로 뇌과학 용어로 '설단현상'이라 한다. 애를 태우다 알아채는 경우도 있고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기억력을 때문이라고 자책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는 기억력 문제가 아닌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나이 불문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때는 검색이나 주변의 도움을 통해 알아내면 그만이다. 마치 배가 고플 때 눈앞에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다. 굳이 자신의 기억력을 자책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다.


책을 읽고 나서도 이 같은 경우를 경험하기도 한다. 독서모임을 중간 상대방이 하는 말과 관련된 책을 읽었던 기억은 나는데 제목과 저자가 떠오르지 않는다. 또 상대방이 궁금해하는 걸 책에서 본 사례로 설명을 이어가고 싶은데 이마저도 기억이 나지 않기도 한다. 그럴 때면 자신의 기억력을 탓하고 심하면 책 읽는 것에 회의가 들기도 했다. 책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읽었던 목록을 뒤져야 하고, 글을 쓸 때 필요한 정보는 정리했던 책을 다시 찾아봐야 겨우 생각이 난다. 독서에 진심인 이들은 같은 상황에서 성능 좋은 복사기처럼 바로바로 대답하는 걸 볼 수 있다. 이들은 책을 천천히 꼼꼼하게 읽으면서 기록도 했기에 오래 기억에 남아서 일 수 있다. 그렇다고 책을 읽는 이유가 잘난 척 아는 척을 하기 위한 건 아니다. 책을 통해 배운 걸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읽은 책을 기록으로 남겼다. 목록이 길어질수록 나에게 남은 게 무언인지 다시 생각했다. 쌓여가는 책에서 내가 얻은 것과 실천하고 있는 건 무엇인지 돌아봤다. 읽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글자만 읽고 덮는 책도 있었다. 한 권의 책이 다루는 내용 모두를 내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렇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한 가지 원칙을 정했다. 읽은 책에서 적어도 한 가지는 기록으로 남기고 내 것으로 만들기로 했다. 눈에 들어오는 문장은 많았지만 모두 기록으로 남기는 시간이 허락지 않았다. 밑줄 그은 문장 중에서도 추리고 추려 기록했고 생각을 달며 다시 한번 복기했다. 그렇게 기록한 책이 백 권이 되고 오백 권이 되고 천 권이 됐다. 기록은 했지만 기억은 오래 남지 않았다. 대화나 독서모임, 강연을 할 때 늘 '설단현상'을 겪고 있다. 기억이 안나는 그 순간은 미칠 듯이 답답하다. 분명히 읽었는데 원하는 내용이 떠오르지 않고 혀를 간질럽히는 경험이 자주 있었다. 그때는 수백 권을 읽었는데도 이것밖에 안되나 싶었다. 자책도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을 달리했다. 기억이 안나는 건 그만큼 관심이 덜 갔던 주제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여전히 관심 갖는 주제는 꾸준히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고, 그게 곧 내가 잘할 수 있는 주제가 되는 것이었다.


책을 읽는 이유는 부족한 걸 배우기 위해서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기에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음식은 욕심을 부리면 배불리 먹을 수 있지만, 책을 통해 지식의 갈증을 채우는 건 평생토록 채워지지 않는 게 진리라고 생각한다. 변하지 않는 진리라면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책에서 얻고자 하는 걸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이 말하는 모든 걸 가져갈 것인지, 필요한 것만 내 것으로 만들 것인지를 말이다. 기준이 정해지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알게 될 것이다. 정독, 속독, 발췌독 등 읽는 방법의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이 또한 선택하면 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책을 읽는 데 부담감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통해 얻고자 하는 무엇인지 방향을 정했으면 그대로 실천하면 된다. 한 권에서 하나라도 얻는다면 이 또한 삶을 의미 있게 해 준다.


한 번 노출된 정보는 뇌 안에서 15~30초 정도 머무른다. 이때 특별한 자극이 더해지면 기억이 강화되고, 아무런 자극이 없다면 사라지고 만다. 이 말은 우리는 뇌에 저장할 걸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의미를 더해 오래 기억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한 번에 하나씩 정성 들인 기억이 쌓인다면 우리를 자책하게 만들었던 '설단현상'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2022. 09. 0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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