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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Sep 14. 2022

인생은 결승선이 없는 레이스

2022. 09. 14.  07:46



'하세가와 치매척도'는 치매 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 검사 기준입니다. 치매 전문 의사 하세가와 가즈오 박사가 제안해서 그의 이름 땄다고 합니다. 정해진 11개의 질문에 답을 하고 점수를 계산에 치매 정도를 결정한다고 합니다. 1974년에 제정되기 전까지 이렇다 할 검사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후 몇 차례 개정을 통해 현재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치매가 발생하는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뇌신경세포가 외상이나 염증, 혈관 장애 등으로 인해 발병할 수 있다고 전합니다. 치매 척도를 만든 그도 얼마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합니다. 고령에 치매까지 더해지며 삶에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넘어지는 건 일상이고 말하는 중간 할 말을 잊는 건 익숙해졌다고 합니다. 그런 그에게 마지막까지 이루고 싶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치매에 대한 사람의 인식을 바꾸고, 전문 인력을 양성해 치매 환자가 일상에서 보다 안전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상황을 탓하기보다 지금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만 최선을 다하는 게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라고 합니다.


연휴를 핑계로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장거리 운전도, 친척집 방문도, 음식을 만들거나 살림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릴없이 몸도 마음도 편히 연휴를 즐겼습니다. 일어나는 시간은 들쭉날쭉 이었습니다. 겨우 눈이 떠지면 일기 한 페이지 쓰는 걸로 해야 할 일을 때웠습니다. TV 채널을 돌리다 드라마 <도깨비>에 꽂혀 역주행했습니다. 짬짬이 채널을 돌리며 봤던 영화를 또 보고 못 봤던 드라마를 다시 보기 했습니다. 먹는 것도 손이 가는 대로 먹었습니다. 빵, 과자, 떡, 과일 등 보이는 족족 먹어치웠습니다. 그나마 아침 1시간 정도 운동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연휴니까, 그동안 일하느라 애썼으니까 그래도 된다고 속으로 핑계 댔습니다. 그동안 흐트러짐 없는 일상을 살아야 한다고 제 자신을 몰아세웠습니다. 그렇게 살아야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실제로도 그렇게 살아야 원하는 걸 손에 넣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남들 하는 거 다 따라 하면서 남들이 갖지 못하는 걸 갖겠다는 건 욕심일 뿐입니다. 바란다고 얻어지지 않을 테고요. 몰아세워야 그나마 조금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몰아붙이는 이들 중 대표적인 게 운동선수 일 겁니다. 결과에 따라 평가받는 그들은 누구보다 혹독하고 엄격합니다. 그렇게 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게 스포츠 세계입니다. 자칫 나태해지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부지기수입니다. 그들은 결승선이 정해진 경기를 합니다. 먼저 통과했을 때에만 주목을 받을 수 있습니다. 2등은 의미 없습니다. 그러니 죽을 각오로 제일 앞에 서려고 하는 겁니다. 우리 삶도 경기에 비유하고 합니다. 우리 각자를 선수에 비교하며 저마다 레이스를 펼친다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펼치는 경기에 결승선이 존재할까요? 누가 먼저 들어가는 게 과연 의미 있는 것일까요? 설령 1등으로 들어왔다고 해도 계속 1등으로 남을까요? 저는 우리 삶은 결승선이 없는 경기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각자의 레인에서 저마다의 속도로 같은 트랙을 계속 도는 것입니다. 어느 때는 1등으로, 어느 때는 꼴등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멈춤 없이 뛰는 겁니다. 그러니 굳이 자기 자신을 밀어붙일 필요가 있을까요?


게을러진 제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게으름도 다르게 보면 부지런했기에 누릴 수 있는 보상 같은 거라 생각합니다.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건 있습니다. 사는 목적입니다. 하세가와 박사처럼 환경을 탓하기보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삶의 목적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1등을 목적으로 달리는 게 아니라면 저마다의 목적이 있을 겁니다. 그에 맞게 속도를 조절하고 레인을 벗어나지 않으며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그렇게 닿는 곳은 각자가 정한 목적지이고, 또 다른 목적지를 정해 꾸준히 나아가는 게 인생일 겁니다. 그러니 지금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지 않았으면 합니다. 적당히 풀어줄 땐 풀어주고, 또 쪼일 때는 쪼여주면 됩니다.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는 게 우리입니다. 한 번쯤 게으름을 피우면 분명 다시 달리고 싶은 순간이 올 겁니다. 그때 신발끈을 다시 묶고 정면을 바라보고 힘껏 내달리면 됩니다.  


2022. 09. 1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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