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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Sep 13. 2022

삶을 물들이다

저마다의 속도로 변화하다

2022. 09. 13.  07:36



연휴를 보내고 출근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학생이 여럿 보입니다. 그들 사이 키 만한 빗자루를 든 아저씨가 보입니다. 근처 청소년 센터를 관리하는 분인 것 같습니다. 색이 바랜 나뭇잎을 부지런히 쓸어 모으고 있습니다. '벌써 낙엽이 떨어질 때인가' 고개를 들어보니 새치가 나듯 군데군데 색이 바랜 나무가 보입니다. 며칠 안 본 사이 나뭇잎이 색을 바꿔가고 있습니다. 땡볕에 그늘을 만들어주던 이파리들은 제 역할을 다 한 듯 서서히 떨어질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차가워질수록 옷을 여미는 인간과 달리 나무는 앙상한 몸을 드러냅니다. 가지만 남은 나무를 마주할 때면 또 한 번의 계절이 바뀜을 실감하게 될 겁니다. 


나뭇잎이 피고 지는 과정은 알아채지 못하게 서서히 진행됩니다. 어느 날 고개를 들면 푸릇한 나무가 되어있고, 또 어느 날 눈을 돌리면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습니다. 몇 년 만에 만난 친구의 얼굴은 못 본 시간만큼 변해있기 마련입니다. 몇 개월 만에 만난 친척 눈에 그 사이 자란 둘째를 보고 놀라는 게 낯선 모습은 아닐 겁니다. 나무나 인간이나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게 당연합니다. 누구도 변화를 피해 갈 수 없습니다. 겉모습이 변하듯 생각이나 가치관도 변하기는 마련입니다. 이런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습니다. 나뭇잎 색이 바래지듯, 주변에서 보고 듣는 것들에 의해 서서히 자신의 색을 찾아갑니다. 우리는 점 하나 찍기 조심스러울 정도의 백지상태에서 부모와 선생님에게 배우며 성장해 갑니다. 사춘기를 겪고 여러 시험을 치르며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갑니다. 가정을 벗어나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며 비로소 어른이 됩니다. 갈고닦은 역량을 발휘하며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존재감이 도드라질수록 안락한 삶을 보장받습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 냅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사회에서의 역할도 줄어듭니다. 은퇴를 바라보게 됩니다. 다시 출발선에 서게 되고, 그렇게 삶은 때에 따라 변화를 요구해 왔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건 자연의 순리입니다. 자연의 변화를 알아채며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삶도 나이 듦에 따라 변화를 겪게 됩니다. 나이 드는 건 누구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외모의 변화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럼 외모가 아닌 '내 안의 나'의 변화는 어떨까요? 외모와 달리 내면의 변화는 의식에 따라 달라집니다. 변화의 시기, 방향, 정도는 스스로 정하게 됩니다. 직장인은 새로운 커리어를 위해 도전하고, 학생은 더 깊은 탐구를 위해 정진하고, 은퇴자는 남은 시간에 대해 진중한 고민과 선택이 필요할 것입니다. 어느 자리에서 어떤 준비하든 변화에는 과정이 따릅니다.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는 변화가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직장인이 하루아침에 원하는 직장이나 직업을 가질 수 없고, 자고 일어나도 모든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게 학생이고, 은퇴했다고 원하는 일이 저절로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에 필요한 움직임을 나뭇잎이 바래지듯 서서히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내가 외운 영어 한 줄은 표가 안 납니다. 오늘 익힌 전공 지식은 지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부분만 놓고 보면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입니다. 우리는 나뭇잎이 붉은색으로 물든다고 표현합니다. 물이 든다는 건 서서히 변화가 일어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변화를 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나씩 해내는 게 바라는 변화로 물들이는 거라 이해하면 어떨까요? 그러니 지금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조급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뭇잎이 붉게 물들면 저절로 눈에 띕니다. 마찬가지로 서서히 변화를 준비한 자신도 때가 되면 저절로 눈에 띄게 될 것입니다. 그게 목표한 것을 이룬 것일 수 있고, 원하는 곳에, 원하는 직업을 갖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매일 묵묵히 그 일을 해냈느냐입니다. 사소하고 별 볼일 없어 보이는 것에 정성을 다 했는지 말입니다. 


계절의 변화를 알아채 듯 자신에게 필요한 변화가 무엇인지도 알아채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때를 놓치지 않으면서 말이죠. 그러려면 일상에 정성을 다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얼마나 성실히 살아냈는지 답해 본다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2022.09.1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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