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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Sep 19. 2022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다

2022. 09. 19.  07:41



23살, 군대를 제대하고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곳이 여성화를 파는 매장이었습니다. 말주변이 없던 제가 어쩌다 그 일을 시작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의아합니다. 아마 말을 조금 더 잘하고 싶었던 욕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남자 사장님께 여성화에 대해 배우고 영업에 필요한 멘트도 전수받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 사장님은 강호동에 버금갈 덩치에 성격도 급했습니다. 그런 분이 섬세하고 깐깐한 여성분을 상대할 때면 또 다른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저도 곁에서 노하우를 배워 부지런히 팔았습니다. 일대일로 상대를 하다 보니 자신감이 점점 붙었습니다. 너스레도 제법 떨며 쥐락펴락 기술을 선보이도 했습니다. 그곳에서 단련을 한 덕분인지 대형 마트 판매 영업을 할 때도 큰 목소리로 손님에게 어필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경험만 더해도 사람 상대하기가 수월할 법도 한데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나이 탓인지, 자존감 탓인지 모르지만 여전히 사람을 상대하는 게 어렵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는 대화 트기도 물론 힘들고요. 그런 제가 독서 모임을 8개월째 운영 중입니다. 한 달에 두 번 화면으로 만나지만 시작 전 떨림은 극복되지 않습니다.


어제도 독서 모임이 있었습니다. 새로 두 분이 합류에 저를 포함 8명이 되었습니다. 그중 세 분은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새로 온 두 분과 기존 멤버 두 분, 다섯 명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줌 링크를 단톡방에 올리면서부터 손바닥에 땀이 나기 시작합니다. 한 달에 두 번 2시간씩 대화를 나누었는데도 여전히 시작은 긴장됩니다. 처음 들어오는 분과 무슨 주제로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할지 아득해집니다. 처음 들어오는 분이 접속하고 수락할 때면 마우스를 쥔 손이 달달거립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화면의 화살표를 겨우 진정시켜 수락 버튼 위에 올립니다. 상대방 얼굴이 뜨는 몇 초 사이 오만가지 생각이 오갑니다. 가장 좋은 건 모두가 같은 때 접속해 한 번에 인사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할 말이 적어질 테니까요. 마음은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이리저리 뛰고 있지만 애써 태연하게 첫 말을 꺼냅니다. 간단한 인사와 그동안의 안부를 묻는 걸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한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는 사이 다른 분도 접속합니다. 모두 한 화면에 모이기까지 짧으면 5분, 길면 30분이 걸리기도 합니다. 식사를 마치고, 살림을 정리하고, 직장에서 업무를 마무리하고 모이기에 시간이 들쭉날쭉입니다. 그래도 모이기로 한 분들이 화면에 다 보이면 저도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어제는 단연 새로 온 두 분에게 관심이 모였습니다. 한 분은 블로그를 통해 오래 인연이 이어져오고 있었고, 다른 한 분은 3년 전 '자기 혁명 캠프'를 통해 6주 동안 뜨꺼운 시간을 함께 했던 분이었습니다. 처음이라 어색하기도 했지만 저마다 준비한 내용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셨습니다. 50대에 새로운 걸 시작하겠다는 각오,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될 부모의 태도, 내 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 변화와 성장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시작은 어색하고 입술이 바짝 말랐지만 분위기 오르자 어제도 만난 사람인양 쉼 없는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적은 멤버여서 각자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또 서로가 경청한 덕분에 주제를 벗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책을 매개로 모였지만 책 보다 사람에게서 배울 게 더 많은 게 독서 모임의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같은 책을 읽지만 각자의 삶과 생각이 더해져 나오는 인사이트가 모임의 가치를 더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독서 모임과 별도로 글쓰기 모임도 함께 진행 중입니다. 매일 10분 글을 써 인증해온지 10개월째입니다. 기존 멤버 분들은 여전히 매일 인증을 남깁니다. 새로 온 두 분에게도 글쓰기를 제안했고 기다렸다는 듯 동참의사를 밝혔습니다. 두 분 다 최근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함께할 사람을 만난 게 운명인 것 같다며 신기해했습니다.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건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연한 만남이지만 실은 이전부터 이어질 운명이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고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 주변에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게 됩니다. 그게 멘토일 수도 있고 함께 하는 모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제가 필요할 때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을 통해 성장을 이어왔습니다. 그래서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준비가 되어 있다면 언제든 어디서든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을 통해 도움을 받고 성장하면 나 또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사람이 사람을 성장시키고 이런 선순환이 결국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책을 통해 만고불변의 진리를 배웁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익히기도 합니다. 저는 거기에 사람이 더해지면 더 큰 가치를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왕이면 같이 책을 읽으며 서로의 성장을 돕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테고요. 함께하는 모든 분이 책과 사람을 통해 더 나은 지금을 살 수 있길 바라봅니다.  

    


2022. 09. 1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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