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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Sep 16. 2022

딸들아! 집안일 좀 도와주지 않을래?

2022. 09. 16.  07:43



비대면이 익숙지 않았을 땐 대면 수업이 그리웠습니다. 3년 동안 비대면 수업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비대면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대면 수업에 기대 반 걱정 반이었습니다. 대면 수업으로 전환되고 반년이 지났습니다. 그사이 아이들은 학교 생활에 적응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아내도 비대면으로 지난 학기 수업을 들었습니다. 2학기가 되면서 전면 대면 수업으로 바뀌었습니다. 걱정이 많았습니다. 직장, 대학원, 집. 일주일 3번, 저에게도 남다른 각오가 필요했습니다. 아내가 수업을 듣는 3일은 살림을 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연휴를 보내고 지난 수요일부터 다시 수업을 듣기 위해 늦은 등교를 했습니다. 아내가 등교하는 시간 저는 칼퇴근 후 집에 돌아옵니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저녁밥 고민이 시작됩니다. 그나마 추석 때 만든 음식이 많아서 돌려 막기가 될 것 같습니다. 잡채는 프라이팬에 한 번 볶고, 돼지갈비찜은 중불에 끊여내고, 나물은 담아내기만 하고, 진미채와 멸치볶음도 덜어 담으면 한 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언니가 올 때까지 못 참겠다는 둘째를 위해 먼저 상을 차립니다. 저도 같이 먹습니다. 둘째가 밥 먹다 뜬금없이 앞으로 매일 머리를 감겠다고 선언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틀, 삼일에 한 번 감는 것도 싫다며 도망 다니기 일 수였던 아이입니다. 무엇 때문에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라고 했습니다. 밥을 다 먹고 치우고 설거지까지 마치니 그제야 머리를 감겠다며 욕실로 들어갑니다. 머리를 감겨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외면하지 못하고 바지를 걷고 따라 들어갑니다. 둘째도 저도 구부정한 자세로 머리를 감고, 감겨줍니다. 린스까지 마치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자리를 옮겨 드라이로 머리를 말립니다. 뜨거운 바람과 찬 바람으로 10분 남짓 말리니 제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힙니다. 드라이기를 내려놓고 헹굼을 마친 빨래를 꺼내기 위해 세탁실로 갑니다. 다 마른빨래는 걷고, 그 자리에 젖은 빨래를 넙니다. 걷은 빨래는 각자 정리할 수 있게 나누어 개킵니다. 이제 청소기로 바닥 먼지를 쓸어 담습니다. 마지막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며 집안일이 마무리됩니다.


2학기가 시작되면서 두 딸에게 당부의 말을 했습니다. 집안일을 도우라고 안 할 테니 적어도 자기 껀 스스로 치워달라고 했습니다. 과자를 먹고 나면 봉지를 버리고 부스러기를 치우고, 벗은 옷은 빨래통에 담고, 수저통과 물통은 싱크대에 담그고, 개켜놓은 옷은 각자 옷장에 정리하고, 먹고 난 그릇은 물에 담가 달라고 했습니다. 중1, 초3에게 무리한 요구는 아니라 판단했습니다. 그것만 해줘도 엄마와 아빠가 살림을 하기에 수월하겠다는 설명까지 덧붙였습니다. 무리한 부탁이었을까요? 기대가 컸던 걸까요? 같은 부탁을 올 초부터 했었는데 여전히 어느 것도 제대로 지키지 못합니다. 늘 같은 잔소리로 아이들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가끔 참지 못한 아내가 큰소리를 내 보지만 그때뿐입니다. 여전히 자기 몫의 살림은 안 하고 있습니다.      


잔소리를 할 때면 눈앞에 익숙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두 딸과 비슷한 또래 때의 제 모습입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부터 잔소리를 했습니다. '집 꼴이 뭐니', '먹은 건 좀 치우지', '숙제는 했니' 등등. 저도 똑같은 잔소리를 들었지만 안 했던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 두 딸도 말을 안 듣는 게 당연해 보입니다. 살림을 살아보니 그때의 어머니 잔소리를 이해하게 됩니다. 진즉에 말 좀 잘 들을 걸 그랬습니다.


살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누가 누구를 돕는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동등한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서로를 위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일방적인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가 있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때가 있습니다. 부모는 스스로 할 수 있게 가르치고 기다려주는 게 필요합니다. 아이도 한 번에 모든 걸 다 할 수도 없을 겁니다. 하나씩 시도하면서 배우고 익혀야 비로소 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가족끼리도 저마다 일상으로 바쁘고 피곤한 하루를 보냅니다. 누가 덜 힘들고 더 피곤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왕이면 아이들도 스스로 자기 몫의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잔소리해봐야 서로 기분만 상할 뿐이고, 잔소리 듣고 해 봐야 얼마 못 갈 테고요. 가장 좋은 훈육은 부모가 직접 보여주는 거라고 했습니다. 묵묵히 제 역할의 살림을 해내면 아이들도 머지않아 따라 할 거라 믿어봅니다.    


   


2022. 09. 16.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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