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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Sep 23. 2022

다 읽지 못한 책에게
미안한가요?

2022. 09. 21. 06:31



100수를 누린 성진이의 할머님이 돌아가셨다고 연락 왔다. 강진에 사는 성진이를 오랜만에 볼 겸 조문했다. 근호와 현석이도 왔다. 넷이 모였지만 성진이는 손님 맞느라 바빴다. 남은 셋 도 오랜만이라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갔다. 근호가 뜬금없이 집값 좀 올랐냐고 묻는다. 집 팔고 전세 산다고 했다. 처음 듣는다는 반응이다. 그 반응에 내가 더 어이없었다. 이미 한 달도 전에 내 책에 사인까지 해서 선물했고, 그 책에 집에 대한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따졌더니 앞 만 읽고 덮었단다. 짐작은 했지만 짐작이 맞을 때의 씁쓸함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근호뿐 아니라 주변에 책 한 권을 다 읽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바빠서 못 읽을 수도 있고 재미없어서 안 읽을 수도 있다. 이처럼 완독을 못하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유도나 합기도를 처음 배우면 낙법부터 배운다고 한다. 상대에게 공격당했을 때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반대로 방어하는 법을 알면 공격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이런 기본기 위에 다양한 기술을 익혔을 때 공격과 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된다. 한마디로 기본기가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기본기가 없으면 기술도 익히지 못할뿐더러 상대 공격에 쉽게 무너지고 만다. 격투기뿐 아니라 직장이나 가정, 대인관계에 필요한 태도에도 기본기가 필요하다. 서류는 약속된 양식으로 작성하고, 정해진 보고 체계를 따르고, 출퇴근 시간을 지켜야 한다. 또, 먹고 난 그릇은 음식찌꺼기가 남지 않게 닦고, 빨래는 색이 들지 않게 구분해서 빨아야 한다. 사람을 만날 때도 인사하고 존칭을 쓰고 존중하는 태도를 잃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기본을 당연하게 지키면 삶의 질도 올라갈 수 있다.


책을 완독 하는 것도 독서의 기본기라 할 수 있다. 5년 전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고 한 권 씩 완독 했다. 그때는 다른 방법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일단 무작정 읽으면서 흥미를 잃고 싶지 않았다. 무식하게 읽었지만 덕분에 습관처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그렇게 읽은 게 나름 기본기를 다졌던 것 같다. 책 한 권을 완독 하면 구성과 주제를 파악할 수 있다. 자기 계발, 경제경영, 인문, 에세이 등 장르별로 100권 이상 정독을 하니 구성이 눈에 들어왔다.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주제를 담은 서문, 책을 쓰게 된 동기나 화두를 던지는 도입부, 구체적인 실천법이나 핵심 내용을 담은 본론, 주제를 상기시키고 메시지를 던지는 결론과 맺는 글. 대게 이런 구성이었다. 물론 주제에 따라 구성을 달리하는 책도 있다. 그래도 큰 틀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구성이 눈에 들어오니 주제에 따라 어디를 중점으로 읽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책에 따라 필요한 부분만 읽는 방법을 병행하고 있다.


나는 서문과 목차를 읽는 것부터 시작한다. 서문에서 주제를 파악한다. 목차를 보며 구성과 흐름을 이해한다. 첫 장부터 읽어 나간다. 나에게 필요한 내용이라고 생각되면 계속 읽어나간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면 읽기를 멈춘다. 내용이 기대와 다를 경우, 저자가 말하는 중요한 부분만 읽어도 될 것 같으면 그 부분으로 이동한다. 그렇게 읽으면 적어도 읽은 부분에서 얻는 게 있다. 그리고 책을 덮는다. 그 책 자체로는 가치 있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다. 맞지 않는 걸 억지로 읽으면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 시간에 다른 책을 펴는 게 더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옷을 살 때 디자인과 색은 마음에 들지만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으려면 결국 찢어진다. 옷을 사기 전 자신의 몸 사이즈를 아는 게 먼저이듯, 책을 고를 때도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를 먼저 아는 게 필요하다. 관심사를 따라 읽으면 세상에 널린 다양한 책을 읽고 싶은 호기심도 자연히 따라 생길 테니 말이다. 


잔챙이를 많이 낚아본 사람이 대어를 낚을 가능성이 있다. 쨉을 많이 때린 선수가 KO 시킬 가능성이 높다. 책도 많이 읽어본 사람이 주제를 이해하기 수월하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는 데는 그만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독서법을 찾아 읽게 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방법을 배워 조금 더 수월하게 읽고 싶어서 일 것이다. 물론 그런 노력은 필요하다. 자신에 맞는 방법을 찾는다면 시간과 노력을 줄여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그보다 스스로의 방법을 만들었으면 한다. 제일 먼저 완독의 부담감을 내려놓으면서부터다. 나처럼 수백 권을 정독하고 나서 방법을 깨달을 필요는 없다. 지금 손에 든 책을 부담 없이 읽어보겠다는 마음만으로 이미 자신만의 방법을 갖게 된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한 권씩 필요한 부분을 읽고 다양하게 선택하면서 책을 통해 얻고 싶은 게 무엇인지도 선명해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내 삶의 기준은 내가 정하면 된다. 내 삶을 남의 기준대로 살 필요는 없다. 남이 만든 독서법은 그 사람의 기준일 뿐이다. 정독을 해야 하고 완독을 해야 한다는 것도 세상이 말하는 기준일 뿐이다. 한 권을 다 읽지 않았다고 독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건 그 사람의 기준일 뿐이다. 내 기준에서 나에게 필요한 독서법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얻어진 답을 따라 읽으면 그만이다. 완독이든 발췌독이든 서문만 읽든 목차만 읽든 상관없다. 단 한 문장으로도 사람은 변할 수 있다. 그 문장이 어느 책에 들어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세상에 널린 책으로 눈을 돌린다면 완독의 부담은 덜 수 있지 않을까?   


2022. 09. 23.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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