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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Sep 29. 2022

둘째 딸이 포르쉐를 사준다

2022. 09. 29.  07:43



초등학교 때 나머지 공부를 했었다. 받아쓰기를 하면 두세 개 맞는 게 평균이었다. 나 같은 아이를 모아놓고 틀린 단어를 익힐 때까지 쓰고 갔다. 한두 번은 창피했다. 일상이 되니 익숙해졌다. 그런 자극을 받으면 공부를 할 법도 한데 그때 이미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정규 교육을 받는 내내 평균만 유지했다. 그러니 내 아이에게 공부를 잘하라는 말을 선뜻 내뱉지 못했다.


밤 10시가 다 되면 둘째는 잘 준비를 한다. 자기 전 가방을 챙기라는 엄마의 말에 주섭주섭 종이를 하나 꺼낸다. 종이를 받아 든 아내는 채윤이에게 물었다. 내일모레 단원 평가 보기 전 수학 실력이 부족한 아이에게 한 번씩 풀어 오라고 내준 거라고 했다. 아내는 다시 물었다. 정말 실력이 부족해서 받은 거냐고? 그렇다고 태연하게 말한다. 아마 아내는 그 말에 슬슬 열이 오르기 시작한 것 같다. 채윤이는 공부에는 소질이 없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서 평소 수학 학습지를 풀게 했다. 학습지는 곧잘 풀었다. 틀리는 개수도 적었다. 이해도 빨랐다. 또래보다는 뒤처지지 않는다고 믿었다. 손에 들린 시험지는 그간의 믿음을 의심케 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채윤이를 옆에 앉혔다. 문제를 하나씩 풀었다. 나는 멀리서 바라봤다. 첫 문제를 푸는 데 채윤이가 운다. 왜 우냐고 물으니 그냥 눈물이 난다고 한다. 아이 엄마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문제에 집중하란다. 아마 하기 싫어서 잔꾀를 부리는 정도로 이해했나 보다. 내 눈에도 그래 보였다. 눈물을 훔치면서도 한 문제씩 풀었다. 이해를 못 하는지 아내의 목소리가 커진다. 그럴수록 채윤이 목소리는 더 작아진다. 목소리가 작아지면서 우는 소리도 커진다. 이제는 울부짖음에 가깝다. 분하고 억울해하는 목소리다. 무엇이 분하고 왜 억울할까?


10여 분 동안 실랑이를 주고받았다. 겨우 한 장 짜리 시험지를 다 풀었다. 그 사이 진정이 된 채윤이는 왜 분하고 억울했는지 말했다. 수업시간에 내준 문제의 답과 풀이 과정은 알고 있었다. 선생님은 채윤이에게 풀이 과정을 설명해 보라고 시켰다. 숙기가 없는 편은 아니지만 공부가 약점이라 그런지 설명을 제대로 못했단다. 이를 본 선생님이 이해를 못 한다고 판단했고 나머지 공부 같은 시험지를 아이 손에 들려 보냈던 거였다. 그제야 아내도 채윤이를 보듬어 줬다. 당부의 말도 남겼다. 수학 문제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는 걸 제대로 설명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그런 말주변을 가지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도 알려줬다.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 뒤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춤 연습을 하는 채윤이었다. 안방에서 음악도 안 틀고 거울을 보면서 연습하고 있었다. 태권도와 춤에는 진심이 아이다. 공부는 멀리해도 예체능에는 안테나를 바짝 세우는 아이다.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농담으로 "우리 채윤이는 꼭 춤으로 성공해서 엄마 아빠 호강시켜줘"라고 했다. 눈을 반짝이며 대뜸 아빠에게는 '포르쉐'를 사주고 엄마에게는 집을 사주겠단다. 언제 말했는지도 모를 농담을 채윤이는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도 아이는 진심일 테다. 1백만 원이면 집을 살 수 있다고 믿는 순수한 아이니 그 말도 진심 일터였다. 이 맛에 아이를 키우는구나 싶었다.


다음 날 퇴근길에 아내가 카톡으로 채윤이 알림장 내용을 보내왔다. 낮에 있었던 단원 평가 답안지였다.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서 부모님 확인받아 다시 가져가는 거였다. 전날 일도 있어서 아내도 신경이 쓰였나 보다. 태권도장을 다녀온 채윤이와 저녁 먹으면서 알림장 내용을 알려줬다. 기다렸다는 듯 시험지를 내 보였다. 백 점이었다. 뒷모습에서 당당함이 보였다. 웃음에는 여유가 묻어났다. 원래 이렇게 잘하던 아이였다. 어쩌다 뜻하지 않은 상황에 어리바리하는 바람에 나머지 공부를 했던 거였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잘했다고 칭찬했다. 유난히 표정이 밝았다.


 아이의 성적은 부모의 믿음에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시간이 걸려도 믿고 기다려주면 언젠가는 자신의 실력을 보여준다. 간혹 공부가 아닌 다른 소질을 보여주는 아이도 있지만 말이다. 중요한 건 공부이건 다른 재능이건 빛을 발하는 시작은 부모의 절대적 지지에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믿지 못하면 아이는 누굴 믿겠는가 말이다. 어쩌면 당연한 말이다. 부모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신뢰해야 한다. 조바심이 나는 건 어디까지나 부모의 욕심일 테다. 아이의 생각 관심사는 제쳐두고 오로지 부모의 바람대로만 따라와 주길 바란다. 그런 아이는 가능성 대신 답이 정해진 인생을 살게 될 수도 있다. 물론 부모는 아이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말한다. 반대로 생각해봐야 한다. 어디까지 간섭을 해야 하는지 부모 스스로 정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조바심을 냈던 나를 반성한다. 공부에는 소질은 없어도 좋아하는 태권도와 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한다. 그런 노력이면 굳이 공부가 아니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남들이 정해놓은 길을 걷기보다 스스로 가고 싶은 길을 만들어 갈 테니 말이다. 나는 믿음만 보이면 된다. 그 믿음에 채윤이는 '포르쉐'로 답을 할 테니 말이다. 입꼬리가 올라간다.  

    


2022. 09. 29.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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