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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01. 2022

맥도날드, 토요일 아침 단상

2022. 10. 01.   07:11



평소 주말보다 30분 정도 늦게 맥도날드에 도착했다. 한 무리의 단체가 2층 매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수개월 만에 보는 풍경이다. 당연히 시끌시끌하다.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켠다. 이어폰을 꽂았지만 그들의 말소리가 뚫고 들어온다. 집으로 가야 할 시간도 정해져 있다. 이 자리에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30분이다. 30분 안에 쓰고 싶은 글을 완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음악에 집중해보지만 말소리가 계속 거슬린다. 유난히 목소리가 큰 사람이 있다. 주변 사람 신경 안 쓰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마주 앉은 사람만 보인다. 연인인지 친구 사이인지 모르겠지만 상대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바로 옆 단체 테이블에는 매주 만나는 동호회(?)가 오늘도 자리하고 있다. 네댓 명이 모여 각자 두 대 이상의 스마트 폰을 앞에 두고 포켓몬을 잡고 있다. 이들을 지켜본 지 1년이 넘어가는 것 같다. 아마 그 이전에도 이곳에서 그들만의 의식을 치렀을 거라 짐작한다. 토, 일요일 7시면 어김없이 모인다. 어떤 목적이 그들을 매주 같은 곳으로 이끄는지 모르겠지만 꾸준함은 인정해줘야겠다. 그런 정성이면 포켓몬 잡이로 저마다 바라는 성취를 이루 낼 수 있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매주 비슷한 시간 비슷한 차림으로 같은 자리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두고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모습. 그들에게 나도 목적을 갖고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그런 사람으로 보일까? 매주 반복하는 행위만 보면 그렇게 볼 수 있다. 그 안에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시간 같은 자리를 지키는 꾸준함은 인정해주지 않을까? 마음속으로 '저 아저씨 오늘도 나왔네. 대단하구먼.' '대단'은 아니더라도 열심히 사는구나 정도면 충분하지 싶다.


포켓몬 잡이 아저씨들을 본 게 지난겨울 언제쯤인 걸로 기억한다. 장갑을 끼고 부지런히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정해진 시간이 다가올수록 한 사람씩 모습을 나타낸다. 각자 마실 음료수 나 아침 거리를 챙겨 2층 테이블로 모인다. 시선은 아래에 고정한 채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고 마주 앉는다. 간간히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이렇다 할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지나칠 정도 건조해 보이지도 않는다. 아마 긴 시간 함께해온 익숙함 같은 게 서로를 어색하지 않게 만든 건 아닐까 싶다.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최선(?)을 다하고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걸 봤다. 계절의 주기가 선명하지 않은 요즘, 그래도 그들을 4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함께 했다. 어느새 다시 겨울로 들어서고 있다.


그들과 멀리서 함께한 시간 동안 나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 매주 토요일, 일요일 같은 시간 같은 행위를 반복한 덕분에 바라는 책을 냈다. 드물기는 해도 자기소개서 첨삭 일도 들어온다. 더 드물기는 해도 강연 의뢰를 받기도 한다. 난생처음 정기 간행물에 내 글을 싣고 싶다는 제안도 받았다. 4년 동안 3센티미터만 자라는 모소 대나무는 5년이 되는 해부터 매일 30센티미터씩 자란다고 한다. 성과를 내는 것도 다르지 않을 터다. 축적의 과정을 거쳐야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나처럼 맨땅에 헤딩하며 시작했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 시간을 버티고 꾸준히 쌓아온 덕분에 이제야 겨우 땅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 가늠할 수 없지만 해오던 대로 하다 보면 또 다른 성과가 따라올 거라 믿는다. 대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 물과 양분을 주듯, 오늘도 이렇게 한 편의 글을 완성하며 나에게 거름을 준다.        


2022. 10. 01.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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