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이거 묻겠다고 면접을 보나

면접관의 갑질

by 김형준

2022. 11. 02. 07:41



갑질은 힘이 없는 자에게 자신이 가진 힘을 휘두르는 행위이다. 다양한 직업과 계층에 따라 갑질의 종류도 다르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에서 취업 준비생만큼 힘이 없고 갑질에 시달리는 이도 없다고 생각한다.


채용공고가 올라오는 족족 입사지원서를 보냈다. 대충 조건만 맞으면 앞뒤 안 가리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지원했다. 수십 곳에 지원해도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은 건빵에 별사탕만큼이나 드물었다. 그러니 이것저것 따지며 지원하는 건 사치였다. 문어발식으로 지원하는 나도 문제가 있었다. 정작 면접 보라고 연락이 오면 언제 지원했는지도 모르는 회사가 더러 있었으니 말이다. 어찌 되었던 면접 기회가 생기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모든 면접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한결같은 자세로 준비했다. 어디서 어떤 인연이 닿을지 모를 일이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누군가와 연결된다고 믿었다.


더러는 이런 마음가짐을 무참히 짓밟는 면접관도 있었다. 직장을 다니지 않는 상태에서 재취업을 준비하면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심정이다. 이럴 때 면접 기회를 주는 회사는 더 감사하고 더 정성을 다하게 된다. 그때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역곡역에 위치한 회사였다. 일산에서 역곡까지 지하철로 1시간 반 거리였다. 출퇴근이 부담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할 수 있다면 기꺼이 다닐 각오로 면접에 응했다. 건물 한 층 일부를 사용하는 걸로 봐서 회사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여느 회사처럼 여직원이 안내하는 회의실에서 물 한잔을 받아 들고 기다렸다. 둘러봐도 눈에 띄는 사진이나 사훈, 비전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어떤가, 일만 할 수 있는 좋겠다 싶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30여 분을 기다린 끝에 두 명이 들어왔다. 대화로 짐작컨데 임원과 부장급 실무자로 보였다. 나를 앞에 두고 둘이 몇 마디 주고받는다. 아마도 이력서를 두고 의견을 주고받는 것 같았다. 손바닥에 땀을 닦으며 질문을 기다렸다.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어요?"

"출근거리가 너무 멀지 않을까요?

"이쪽은 일은 해봤죠?"

질문은 모두 단답식 대답을 원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임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연락을 주겠다며 면접이 끝났음을 알렸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이러려고 일산에 사는 나를 불렀나? 보아하니 뽑을 마음도 없어 보였다. 면접을 많이 다니다 보니 이 정도 촉은 생겼던 것 같다. 아니라 다를까 연락은 없었다.


그래도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기다린 시간 30분, 면접 시간 5분 남짓. 이걸 면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때 내 처지를 돌아봤다. 그래 이런 기회라도 갖는 게 어딘가. 이렇게 두드리다 보면 뽑아주는 곳도 있을 거로 믿었다. 하지만 이런 대접을 받을 때의 씁쓸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나도 면접관이 됐을 때가 있었다. 해외 현장 지원 업무를 맡았을 때였다. 대표는 해외에 체류 중이어서 내가 대신 면접을 봤다. 채용을 결정할 권한은 없었지만 면접을 보러 오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질문지도 만들고 질문을 할 수 있게 유도도 하고 이력서에 담지 못했던 말을 할 수 있게 기회도 줬다. 한 사람을 보는 데 짧으면 30분, 길면 1시간을 보기도 했었다. 충분한 대화를 주고받아야 지원자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는 지원자도 많지 않았고 해외 공사다 보니 신중하게 사람을 뽑아야 하는 이유도 있었다.

그때 그 회사가 지원자도 많고 시간에 쫓기다 보니 면접의 질이 떨어졌을 수도 있다. 내가 아닌 다른 지원자에겐 넉넉한 시간을 할애했을 수도 있다. 내가 운이 없어서 그런 대우를 받았을 수도 있다. 그래도 지켜야 할 선은 있다고 생각한다. 이력서로 한 번 거른 뒤 면접을 보는 거라면 특히 더 정성을 들여야 한다. 설령 면접을 생각했던 것과 다르더라도 지켜야 할 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면접관은 회사 이미지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지원자는 면접관을 통해 그 회사를 가장 먼저 접하게 된다. 그들의 태도에서 회사의 이미지가 결정된다고도 할 수 있다. 면접에서 떨어지더라도 기업에 좋은 이미지를 갖는 건 이들의 역할도 한 몫할 것이다.


조직이 크면 인사 담당자가 있기 마련이다. 내가 다녔던 대부분의 건설사는 인사담당자 대신 관련 부서 임원이나 상급자가 대신 면접을 봤다. 밀도 있는 질문을 주고받기보다 실무나 경력을 확인하는 정도의 대화를 주고받았다. 인사 기준에 따른 심도 있는 면접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인사를 책임지는 실무자가 아닌, 같은 부서의 상사 정도로 생각하고 부하직원을 뽑는다는 생각으로 면접을 보니 그런 대우를 받았던 게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모르길 몰라도 취업 준비생 중 나 같은 경우를 종종 당한다고 짐작한다. 그들에게 스치는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일 수 있지만 지원자에게 다시 안 올 기회이고 매달여야 하는 순간일 수 있다. 적어도 면접관 입장이 아닌 지원자를 배려한다면 질문은 달라질 것이다. 준비된 질문을 던질 때 지원자도 몰랐던 자신의 역량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과정은 힘을 가진 자에 의해 만들어지기보다, 힘을 빼고 진심을 다했을 때 뜻하지 않은 인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22. 11. 0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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