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갑질
2022. 11. 04. 07:33
'정도'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알맞은 한도'라고 풀이되어 있다. 정도가 지나치다는 말은 알맞은 한도를 넘어섰다로 풀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알맞다'는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일까? 나에게 알맞은 한도가 상대방에게는 도를 넘었다고 이해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생각에 정도를 지키는 기준은 상대방 입장이 되었을 때 한도가 정해지는 것 같다.
서른 살의 신입은 눈치를 봐야 한다. 나이 어린 동료보다 아는 게 없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면 부지런히 쫓아다녀야 했다. 낙하산 비슷하게 자리를 꿰차서 더 눈치 보였다. 그렇다고 날을 세워 내놓고 갈구는 선배는 없었다. 내 사정을 딱히 여겨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배려해주는 곳이었다. 나만 잘하면 능력을 인정받고 입지를 단단히 할 수 있었다. 사람 살이가 다 내 뜻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인원이 적은 조직이라도 체계가 있고 위계가 있는 법이다. 10명 남짓 직원 사이에도 직급에 따라 명령과 복종이 존재했다.
전화가 걸려오는 타이밍도 적절하다. 7시부터 시작된 현장 업무는 9시가 넘으면서 숨 쉴 틈이 생긴다. 이때를 노려 전화를 한다. 어제는 또 어디서 술을 마셨는지 들릴랑 말랑한 목소리로 "데리러 와라" 이 한 마디에 모든 일을 멈추고 운전대를 잡는다. 사수의 눈치를 슬쩍 보고 사무실을 나서면 뒤통수가 따갑다. 말없이 나가는 걸 보면서 사수도 짐작한다.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내가 한심해 애꿎은 핸들에 화풀이를 한다.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두드려 패고 풀리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씩씩대면서 선임과 마주할 수는 없다. 최대한 아무 일 없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인사를 한다. 코스는 정해져 있다. 전날 마신 양에 따라 해장국으로 끝날 수도, 사우나를 갔다 온 뒤 해장국을 먹을 수도 있다. 코스를 어디로 할지는 오롯이 선임의 지시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알려주는 대로 운전만 하면 된다.
얼마 전 뉴스에서 사병에게 갑질한 장교가 논란이 됐었다. 관사 관리병을 마치 자시 수족 부리듯 했다는 내용이다. 한 술 더 떠 기분에 따라 폭행도 일삼았다는 데 공분을 샀다. 해장을 위해 나를 부르는 선임이 혼자 술을 마시지 않는다. 거의 매일 선임의 상관과 부어라 마셔라였다. 그래도 선임의 상관은 출근은 알아서 했다. 대신 가끔 개인적인 볼일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름 이유는 있었지만 대개는, 외아들인 아들을 학원이 끝나면 집에 데려다주거나, 정수기 교체로 집에 방문하는 기사를 맞아주거나, 세탁소에 맡긴 옷과 맡길 옷을 주고받는 일이었다. 혼자 아들을 키우니 좋은 마음으로 기꺼이 해주려고 했다. 밤낮없이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그나마 여유가 있는 내가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고 다독였다. 뉴스에 보도된 장교만큼은 아니었지만 한 번씩은 현타가 오기도 했다. 서른 살에 지금 이러고 있는 게 맞나 싶었다.
낙하산 비슷했지만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준 게 선임이었다. 그분의 배려로 서른 살에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내 사정을 딱히 여겨 여러모로 도움도 많이 받았다. 선임의 상관도 일하면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배려해 주었고 한 푼이라도 아낄 수 있게 도움도 줬다. 그들에 의해 내가 누린 혜택은 가치를 따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보통의 직장에서는 선뜻해주기 어려운 것들이니 말이다. 받은 것에 대한 보답으로 그들의 손발이 되어 줄 수도 있지 않냐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나도 반은 동감한다. 앞서 정도는 알맞은 한도라고 정의한다고 했다. 알맞다는 정도의 기준은 지시하는 쪽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시하는 입장에서는 모든 게 당연하다 여길 수 있다. 반대로 지시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모든 게 불합리하다 여길 수 있다. 그들은 받은 게 있으니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냐고 속으로 생각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업무에 지장을 안 주고 내 시간을 크게 빼앗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문제는 본인의 지시가 '알맞은 한도'라고 여기는 태도이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고 했다. 내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그들이 애써준 덕분이다. 그것에 감사해하고 보답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래야 한다. 문제는 힘의 균형에 있다. 나와 그들의 관계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한다. 그들이 가진 힘은 그들의 지시를 당연하게 만들고, 나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위치이다. 물론 그들이 그걸 악용하지는 않는다 걸 안다. 그들 나름 나를 편하게 생각하고 이해해 줄 거로 믿는 것일 수 있다. 그래도 가끔은 물어봐줬으면 했다. 자신의 부탁과 지시에 내가 불편하지는 않으냐고. 어쩌면 갑과 을의 허무는 시작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이지 않을까 싶다. 직장이든 사회에서는 갑을 관계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갑은 갑의 권리만, 을은 을의 피해 의식만 내세우면 공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를 배려하는 말이나 태도를 보임으로써 그러한 거리를 좁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022. 11. 04. 0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