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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Nov 10. 2022

놓치마, 평정심

2022.  11. 10.  07:38


카타르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20년 전 한일 월드컵을 재조명하는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을 한 화면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를 중심으로 이영표, 박지성, 황선홍, 설기현, 이천수, 김태형, 송종국, 박항서 코치 등 그들을 보고 있으니 20년 전으로 돌아간 듯했습니다. 제 생각에 한일 월드컵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박지성과 이영표 선수입니다. 박지성 선수는 명문 구단을 거치면 수식어가 필요 없을 만큼의 활약을 펼치고 명예로운 은퇴를 했습니다. 이영표 선수는 월드컵을 앞두고 출전이 불투명할 만큼의 부상을 당했지만 히딩크는 그를 명단에 올렸습니다. 감독이 그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선수를 원했다는 히딩크 감독에게 이영표 선수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감독이 요구하는 평정심의 수준은 단순한 체력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선수 본인은 물론 팀 전체 분위기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영표 선수가 적임자였다고 합니다. 감독의 혜안과 선수들의 투지가 결국 4강 신화를 만들어냈다고 모두 입을 모읍니다. 


히딩크 감독은 왜 평정심을 강조했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평정심은 선수는 물론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상황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일상에서 자칫 감정에 휘둘리면 실수를 하거나 큰 대가를 치르기도 합니다. 누구나 갖추어야 할 소양이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게 평정심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어제 둘째 딸이 출전한 고양시 주최 육상대회에 응원을 갔습니다. 고양시 모든 초등학교가 참가하는 규모였습니다. 각 학교는 1달 전부터 출전 선수를 선발해 연습했고 이날 기량을 겨루는 날이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질풍노도의 아이들입니다. 경기 운영은 둘째치고 통제가 쉽지 않은 학생들입니다. 제 눈에 보이는 아이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지시는 아랑곳 않고 자기 할 일만 합니다. 그나마 한 달 동안 연습한 시간 때문인지 비교적 통제가 되는 모습이 보이기는 했는데도 말이죠. 예선과 결선이 진행되는 동안 두 분의 인솔 선생님은 정신없어 보였습니다. 출전 순서 챙기랴 기록 정리하랴 우는 학생 달래랴 1인 다역을 해내고 있었습니다.   


7시부터 시작된 그날 일정은 1시 반이 넘어 마무리되었습니다. 저는 10시부터 경기하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점심시간에는 다른 볼일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움) 모든 경기의 순위가 결정되면서 대회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남은 건 뒷정리와 학생들에게 메달과 기념품을 나누어주는 순서였습니다. 다 끝났다는 후련함 때문인지 학생들은 점점 고삐가 풀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에 아랑곳 않고 선생님 목소리는 더 차분해졌습니다. 또박또박 큰 목소리로 눈에 보이는 학생 한 명 한 명이 들릴 수 있게 말했습니다. 같은 단어를 반복하면서도 말이 빨라지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선생님의 태도는 평정심이 있어야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아이를 가르치는 사명감 안에는 평정심도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그래야 여러 아이들을 똑같이 대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도 선생님도 사람인지라 결코 쉽지 않은 마음가짐일 거로 짐작됐습니다. 


비단 선생님뿐 아니라 직장인, 학생, 사업가 등 평정심이 필요치 않는 이가 없을 겁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한결같은 태도를 지키려는 마음가짐이 일에 성과를 내고, 성적을 향상하고, 사업이 번창하는 역할을 해줄 것입니다. 또 저마다 자기 관리에도 평정심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건강을 위해 몸에 음식을 먹겠다는 마음가짐, 살을 빼기 위해 꾸준히 운동하겠다는 마음가짐, 매일 꾸준히 책을 읽고 공부하겠다는 마음가짐. 어느 것도 마음이 흔들리면 바라는 성과를 얻기 힘들 것입니다. 시작은 쉬울 수 있지만 끝까지 해내려면 결코 평정심을 잃어서는 이룰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저도 흔들리는 마음 탓에 음식 관리를 잘 못하고 있습니다. 나름 분석하고 이유를 찾아 반성하며 의지를 되새기지만 만만치 않습니다. 아마도 처음 가졌던 마음이 흔들리며 평정심을 잃은 것 같습니다. 나 자신에게 관대해지면서 빠져나갈 이유만 찾고 있었습니다. 2년을 이어왔지만 여전히 힘이 드네요. 그렇다고 이제와 포기하면 지난 2년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됩니다. 그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다시 운동화 끈을 묶듯 마음도 단단히 묶어보려고 합니다. 멀어져 가는 평정심을 다시 곁으로 끌어다 놓으려고 합니다.        


2022. 11. 1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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