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Nov 16. 2022

발 밑 난로와  겨울을 납니다

2022. 11. 16.   07:40


운전하는 동안 온열시트를 켜놔서 엉덩이가 따뜻합니다. 한 겨울 추위가 아니어서 히터를 틀지 않아도 견딜만합니다. 온열시트만 켜놔도 어쩔 때는 졸음이 오기도 합니다. 시트의 온기에 익숙해질 즈음 회사에 도착합니다. 여전히 밖은 어둡습니다. 공기도 차고요. 데워진 몸은 차 문을 열고 마주하는 공기에 이내 차가워집니다. 그때 머릿속에는 책상 밑 난로가 떠오릅니다. 두 발바닥으로 덮이는 만큼의 크기이지만 뿜어내는 열기는 세상 부러울 게 없을 정도입니다. 요즘 같은 때 발 밑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습니다. 여름 내내 책상 아래서 이리저리 차였다가 지금은 애지중지 합니다. 더울 땐 소중한 걸 잊고 살다가 찬 바람 조금 난다고 이렇게 호들갑을 떱니다. 저라는 사람 참 간사합니다.


남태령 고개를 넘어선 끝자락에 자대가 있었습니다. 서울이나 다름없는 곳이었습니다. 관악산 줄기 중 언덕 높이밖에 안 되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누구나 걸어 올라갈 수 있는 높입니다. 군대를 다녀왔다면 대부분 공감할 겁니다. 내가 근무한 부대가 세상에서 가장 춥다는 것을요. 전방 후방 따질 것 없이 어는 곳이든 겨울이면 칼바람이 부는 것 같았습니다. 내복부터 방한복까지 껴입어도 추위를 막아주지 못합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꼴로 새벽 경계 근무를 나갈 때면 두려움을 느낄 정도입니다. 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서울 근처에 지대가 낮은 곳에 위치해 있었지만 경계 근무를 서는 그 순간은 시베리아 추위가 이런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선임과 함께 근무를 서니 춥다는 내색도 못합니다. 그렇다고 복지 차원으로 난로를 켜줄 일은 더더욱 없을 테고요. 오롯이 몸의 온기로 1시간 반을 버텨내야 했습니다. 몸에 감각이 사라져 갈 즈음(양념 조금 칩니다) 내무반으로 복귀합니다. 옷을 갈아입고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갈 때면 여기가 어머니 뱃속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서른 살에 처음 현장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지하철을 연결하는 공사였습니다. 지붕도 벽도 없는 길 한복판이었습니다. 1월 10일 첫 출근했습니다. 내복을 껴입어도 현장을 한 바퀴 돌려면 커다란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여기저기 작업 중인 근로자를 일일이 확인하는 게 제 일이었습니다. 저도 저지만 하루 종일 입은 옷만으로 추위를 이겨내야 하는 근로자가 대단해 보였습니다. 바람을 막아주는 장치도 없고 난로를 옆에 두지 못해도 매일 무심한 듯 제 역할을 했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서서야 "아! 춥다"한 마디 내뱉는 정도였습니다. 그들에겐 식당 안의 따뜻한 온기와 김이 올라오는 밥 한 공기, 국 한 그릇이 추위를 잊게 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과 달리 언제든 따뜻한 사무실에 있을 수 있는 저는 적어도 그들 앞에서는 춥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게 맞았을 것 같습니다.  


한 해가 다르게 추위를 더 느끼는 것 같습니다. 조금만 기온이 내려가도 옷이 두꺼워집니다. 작년에는 비슷한 시기 바람막이로도 충분했다면, 올해는 경량 패딩에 손이 갑니다. 유난 떠는가 싶어 주위를 둘러봅니다. 비슷한 옷을 입을 사람을 발견하면 속으로 안도합니다. '나만 추운 게 아니었어.' 그렇다고 찬바람으로부터 완벽히 따뜻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조금 덜 느껴지는 정도입니다. 하루하루 더 추워질 텐데 벌써부터 약해지면 긴 겨울을 어찌 버텨낼지 걱정입니다. 그래도 겨울은 지나갈 겁니다. 발 밑 난로에 의지하고 솜털이 빵빵하게 든 패딩에 몸을 숨기고 말입니다. 나이 드니 내 몸 내가 챙겨야 할 것 같습니다. 추위에 장수 없다는 말처럼 난로에 의지하고 패딩에 몸을 숨겨도 나를 위해서라면 조금은 간사해지려고 합니다. 그렇게 겨울을 버텨내야 또다시 봄을 맞을 테니 말입니다. 수십 해 겨울을 보냈지만 여전히 추위는 적응이 안 됩니다. 저마다 건강하고 따뜻하게 올 겨울나기를 바라봅니다.  


2022. 11. 16.  08:37

매거진의 이전글 놓치마, 평정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