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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Dec 01. 2022

글을 써서 다행이다

2022. 12. 01.  07:38


격세지감, 초등학생 중학생인 두 딸의 학교 생활을 전해 들으면서 든 말입니다. 뮤지컬 연출, 신문 만들기가 과제인 큰딸. 일주일 동안 마니또 게임을 진행 중인 막내.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상상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교과서만 배우기도 빠듯했던 것 같습니다. '특별활동'이라고 2주에 한 번 학교에서 정해놓은 취미를 선택해 참여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모둠끼리 창작과 연습을 통해 뮤지컬 한 편을 만드는 과제입니다. 큰딸은 연출과 리듬을 담당한다고 했습니다. 또 직업을 주제로 신문을 만드는 과제도 있습니다. 관심 있는 직업을 탐구해 기사식으로 글을 써 신문을 만들어보는 과제라고 합니다. 신문이다 보니 자신이 맡은 기사가 4건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기꺼이 돕겠다고 했습니다. 


퇴근길에 평소보다 일찍 학원 수업이 끝난 큰딸을 태우러 갔습니다. 옆자리에 앉으며 사설을 써야 하는데 막막하답니다. 어떤 사설을 쓰냐고 물었습니다. 신문 만드는 과제에 직업을 주제로 사설을 싣기로 했답니다. 옳다구나 싶어 입을 열어재꼈습니다. 

"PREP이라는 글쓰기 구성이 있어. 사설을 쓸 때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인데, P는 포인트로 글의 주제라고 생각하면 되고, R은 이유, 이 주제를 쓰려는 이유에 대해 쓰고, E는 이유를 뒷받침하는 사례나 경험을 써주고 마지막 P는 다시 포인트로 앞에 말한 주제에 대한 메시지나 의견으로 마무리하는 방식이지."

차로 이동하는 동안 설명했더니 집중해 듣는 것 같습니다. 알려준 대로 써볼 테니 다시 봐달라고 합니다. 얼마든 봐줄 테니 써보라고 했습니다.


하루가 지나 쓴 글을 보여줍니다. 영화감독의 단점을 주제로 정했습니다. 직업으로써 영화감독을 선택했을 때 어떤 단점이 있는지 조사한 것 같습니다. A4 한 페이지 정도 분량입니다. 읽어보니 사설보다는 정보 전달에 가까운 글이었습니다. 구성을 다르게 써보라고 권했습니다.

"이런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글은 주제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조사해 차례로 보여주는 게 효과적이야. 영화감독의 단점 몇 가지를 정해 뒷받침할 자료까지 조사를 해. 그리고 한 가지씩 번호를 붙여 설명해 주는 거지. 첫째, 둘째, 셋째 이런 식으로 정리하면 훨씬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듣습니다. 감탄사도 연발합니다. 신기한가 봅니다. 설명해주니 그렇게 써보겠다고 합니다. 다시 써오면 또 봐주겠다고 했습니다.


5년 동안 글 쓰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이럴 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글쓰기와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면 아무런 도움도 못 줬을 겁니다. 책에서 강의에서 배운 덕분입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글쓰기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달았습니다. 물론 직업으로써 글쓰기를 선택했으니 저에게는 더 남달랐습니다. 저는 둘째치고 두 딸이 앞으로 겪게 될 세상 살이에서 글쓰기 능력은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조금씩 글 쓰는 연습을 했으면 좋겠는데 섣불리 말을 못 꺼내겠습니다. 학교와 학원 공부도 버거워하는데 글까지 쓰라고 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이 될 것 같습니다. 당분간은 제가 쓰는 모습만 보여주려고 합니다. 


몇 권의 책을 낸 걸 보면서 글쓰기만큼은 저를 신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쓴 글을 선뜻 보여줄 테니 말입니다. 저라면 아마 못 그랬을 것 같습니다. 신뢰의 문제를 떠나 글 쓰는 게 창피했다고 여겼을 겁니다. 아빠라는 믿을 구석이 있으니 당당하게 보여주는 거로 생각합니다. 글을 썼으면 하는 욕심은 있지만 드러내지 않을 겁니다. 이번 일처럼 큰딸이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주고받으면 분명 스스로 느끼는 것이 있을 겁니다. 또 글쓰기가 필요한 이유도 알게 될 것입니다. 입시는 물론 내 일을 하는 데 있어 글쓰기가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스스로 깨닫고 시작하는 것만큼 빠른 출발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그 속도는 하늘과 땅 차이일 테니 말입니다. 그때가 올 거로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도 매일 이렇게 글을 쓰면서 더 도움을 줄 수 있게 실력을 갈고닦으면서 말입니다. 글 쓰는 부녀지간, 상상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2022. 12. 0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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