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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Nov 25. 2022

여기를 봐주세요! 저 여기 있습니다

2022. 11. 25.  07:36


글을 쓰기로 작정한 것과 쓴 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나만 보기 위해 글을 쓰는 이들이 있고, 저처럼 쓴 글을 보여주는 이들도 있습니다. 보여준다는 건 나를 드러낸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이 쓴 글에는 자기가 담겨 있기 마련입니다. 내가 담겨 있지 않은 글은 쉽게 써지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나를 드러내면서까지 글을 쓰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작가에게 관심은 다양한 면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심을 많이 받는다는 건 소통이 활발하다는 의미입니다. 관심을 많이 받는다는 건 내 글이 대중적이다는 의미입니다. 관심을 많이 받는다는 건 경제적인 부분도 충족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직업으로써 작가는 대중의 관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관심=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작가가 된다고 해서 이 등식이 성립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관심을 받기 위해, 관심을 끌기 위해 저마다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매일 글을 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 째는 어제보다 나은 글을 쓰기 위한 연습입니다. 두 번 째는 매일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생각을 다듬어 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세 번 째는 나를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 째는 개인적인 행위입니다. 나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함입니다. 세 번 째는 대상이 필요한 행위입니다. 내가 성장하려는 목적은 더 많은 사람을 돕기 위함입니다. 그러려면 많은 사람과 닿아야 합니다. 가만히 있는다고 다가와 주지 않습니다. 글재주가 탁월해 어느 순간 짠하고 세상을 놀라게 할 재능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러니 먼저 나를 알리는 게 순서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녹지 않습니다. 

자기 살기도 바쁜 세상에 주변의 누군가 글을 쓴다는 데 관심이나 가질까요? 또 글 쓰는 자체가 골치 아픈 일이기도 합니다. 관심 갖지 않고 살아도 그만인 것입니다. 어쩌면 덜 대중적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발버둥도 모자랄 것입니다. 직업으로써 작가를 선택했다면 관심은 곧 생명줄이자 수익이 될 것입니다. 그런 척박한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나를 알리는 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매일 쓰는 것입니다. 매일 쓰면서 나라는 사람이 여기 이렇게 존재하니 한 번 봐주세요 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어색했습니다. 생전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다가 어느 순간부터 나를 드러내려니 고민도 많았습니다. 이게 과연 나와 맞는 건지 의심도 들었습니다. 이러다 지치면 포기하는 게 아닐지 걱정도 했습니다. 이런다고 효과가 있을까도 싶었고요. 일단 두 눈 질끈 감고 시작은 했습니다. 잘하든 못하든 일단 까발려보자는 심정이었습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단 한 명이라도 내 편을 만들자. 나랑 통하는 사람은 분명 있다. 그런 마음 덕분인지 날이 갈수록 부담은 덜어졌습니다. 적당히 수위를 조절하며 나를 드러내기를 꾸준히 했습니다. 그러니 조금씩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처마 끝 고드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땅이 젖는 것처럼요. 그러다 출간을 했고 그 책을 통해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저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 내 글을 읽고 잡지에 싣고 싶다는 제안도 받게 되었고요. 그 잡지를 통해 아마 어딘가 누군가는 제 이름 석자를 알게 되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제가 쓴 책 제목도요. 


가끔은 너무 더딘 건 아닌지 의심도 듭니다. 욕심 같아서는 천운이 통해 한 방 같은 기회가 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저도 사람이니까요. 그럴 때면 이런 생각도 합니다. 지금 나에게 그런 기회가 온다면 오롯이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나? 누군가는 그런 기회를 가져도 견디지 못해 나가떨어지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버텨낼 준비가 되었을 때 기회가 찾아오길 바랐습니다. 물론 준비가 되어도 그런 기회가 안 올 수도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천운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믿게 된 것 같습니다. 저마다의 깜냥에 따라 행운도 따라준다는 것이죠. 그러니 조급해할 필요도 남들과 비교할 이유도 없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한결 가볍게 이렇게 매일 나라는 사람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천 매거진 11/12월호에 제 글이 실렸습니다. 발행된 잡지를 받아 들고 제 이름이 적힌 페이지를 가족에게 보여줬습니다. 아내와 두 딸의 반응이 제각각입니다. 아빠가 최고라는 둘째, 보일 듯 말 듯 놀란 표정을 보여주는 첫째, 곁눈으로 흘끗 보고 마는 아내. 가족끼리도 반응이 다 다르니 생판 모르는 이들은 안 봐도 눈에 그려집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마음을 비우자. 그저 색다른 경험 한 번 했다 치자. 이렇게 조금씩 나를 알리다 보면 덤덤해질 수 있겠지. 그럴수록 더 큰 반응도 무던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을 단련시키는 과정으로 여기기로 했습니다. 굳은살이 단단해지는 정도에 따라 일희일비 않을 테니 말입니다. 


2022. 11. 25.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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