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믿어주는 아빠?
꿈에 간섭하는 아빠?

by 김형준

2022. 12. 07. 07:37


쪄놓은 고구마로 저녁밥을 대신하려고 식탁에 앉았습니다. 식탁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먹은 흔적만 남았습니다. 어머니가 담근 파김치를 한 입 크기 고구마에 돌돌 말아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달달 매콤 알싸한 맛이 어우러집니다. 주먹만 한 게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파김치 맛에 결국 고구마 하나를 더 꺼냈습니다. 이번 고구마는 단맛이 더 강합니다. 만족스러운 한 끼를 즐기는 데 큰딸이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옵니다. 분명할 말이 있다는 표정입니다. 여러 번 경험한 표정은 분명 부탁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넷플릭스 볼 수 있게 해 주면 안 돼? 아니면 디즈니도 좋고."

여러 번 부탁했었고 그때마다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인스타 들여다보는 걸로도 충분하다. 둘 다 갖는 건 아니지 않을까?"

실망한 표정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또 한 번의 방어전을 치르듯 큰딸의 요구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오늘 아침,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무 자르듯 거절할 게 아니겠다 싶었습니다. 며칠 전 큰딸이 쓴 글 때문입니다. 꿈이 없다고 말했던 딸이 영화감독이 꿈이라는 글을 적었습니다. 영화감독의 단점에 대해 조사한 내용이었습니다. 선택에 앞서 장단점을 파악하는 건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아직은 꿈이겠지만 이번 글을 적으면서 본인도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기회이지 싶었습니다. 그러니 거절만이 능사는 아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 다양한 콘텐츠에 막무가내로 노출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됩니다. 스마트폰을 유용하게 사용하면 편리한 도구이지만, 단순히 재미만 좇으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제가 본 큰딸은 아직 아닌 것 같았습니다.


고민이 됩니다. 꿈이 있다는 딸에게 꿈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인지, 아니면 공부를 위해 시간만 빼앗을 것 같은 기기를 멀리할 것인지를요. 한 편으로 딸아이도 이번 기회를 자기 꿈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으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콘텐츠 소비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공부의 기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책 한 권 쓰기 위해 4년을 투자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매일 읽고 쓰기를 반복하며 책을 쓸 수 있는 역량을 키워 왔습니다. 읽은 책에서 배운 걸 기록하고,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며 쌓인 글이 책이 되고 저만의 콘텐츠가 된 것입니다. 이 말은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영화감독이 꿈인 큰딸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축적하는 건 꼭 필요합니다.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노력도, 내가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도 명확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기만의 생각, 가치관을 가져야 하고 그러기 위한 공부도 반드시 필요할 테고요. 그렇다고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바라는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부터 시작해보겠다면 나름의 전략을 가졌으면 합니다.


조언을 해주고 싶지만 잔소리로 들릴까 싶어 망설여집니다. 또 조건을 내거는 것 같아 조심스럽습니다. 넷플릭스를 보고 싶은 이유는 있을 겁니다. 먼저 그 이유부터 분명히 해봤으면 합니다. 왜 보려고 하는지, 보는 걸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내 꿈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등. 모든 시작은 호기심에서 비롯됩니다. 재미를 붙이면서 더 잘하기도, 반대로 내 일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고비는 오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이유가 분명하지 않으면 끝까지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려면 시작 전에 자기 만의 이유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끝까지 해내게도 아니면 깔끔하게 포기하게도 할 수 있습니다. 이왕이면 끝까지 해보고 포기하는 게 덜 후회가 남을 테니까요.


중학교 1학년 때 꿈이 없었습니다. 있었어도 선명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껏 살아온 과정을 돌아보면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만 해왔습니다. 중1인 큰딸에게 꿈이 있다는 게 다행입니다. 어떤 꿈이든 지지하고 돕고 싶습니다. 아빠의 역할일 테니까요. 딸을 믿는다면 아무 조건 없이 원하는 걸 해주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어느 정도 조건을 걸고 그에 충족하도록 이끌어주는 게 맞을까요? 어느 방법이든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되긴 할 것입니다. 다만 오롯이 믿고 맡길지, 적당히 간섭해야 할지 의문이 듭니다.

작가님들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2022. 12. 07.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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