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1. 09. 07:36
'아빠는 너희들에게 어떤 아빠니?'
묻고 싶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질문이었다. 이런 질문조차 할 자격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 내 말투 행동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줬었다. 상처가 될 걸 알면서도 쉽게 고치지 못했다. 그때는 직장에서도 사람 사이에서도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였다. 밖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풀었던 것 같다. 그만큼 자격이 부족하고 못난 아빠였다.
2020년, 큰딸이 초등학교 5학년,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큰딸은 서서히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그때쯤부터 가끔씩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했다. 밥상을 다 차려놓고 밥 먹으라고 부르면 한참만에 나왔다. 학원 갔다 오면 잠들기까지 스마트폰만 봤다.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을 피해 다녔고, 책상은 먹다 남은 음식과 교과서가 뒤섞여 있었다. 내 눈에는 모든 게 못마땅했다. 대놓고 말도 해봤다. 밥은 같이 먹었으면 좋겠다. 벗은 옷은 빨래통에 넣고 책상은 늘 정리하면 좋겠다고. 그리고 스마트폰은 정해진 시간만 보자고. 아내와 큰딸은 자주 이런 문제로 부딪쳤다. 나는 언제나 아내 편을 들었다. 때로는 아내의 잔소리를 거들었고, 때로는 먼저 큰딸이 고쳤으면 하는 걸 말했다. 당연히 고쳐지지 않았다. 오히려 감정만 상하는 것 같았다. 나도 아이도.
방법을 바꿔보기로 했다.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밥상을 차리고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지저분한 방은 아내와 내가 가끔 청소해 줬다. 스마트폰은 학원과 학교 숙제를 알아서 하기에 믿고 자유를 줬다. 또 밥 먹으면서 대화를 시도했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무슨 일 있었는지 물었다. 공부는 어떤지, 친구 관계에 문제는 없는지, 먹고 싶거나 가고 싶은 곳은 없는지. 조금씩 관심을 보이며 대화했고, 두 딸은 곧잘 자기들 이야기를 해줬다. 나는 듣고 맞장구쳤다. 잔소리는 줄이고 귀를 열고 행동으로 보였다. 중학생이 된 큰딸과는 차로 학원을 오가는 5분 남짓 동안 나눈 대화가 큰 몫을 했다. 내가 궁금한 걸 묻기도 했고, 큰딸이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하기도 했다. 짧은 대화였지만 내 딴에는 최선을 다했다. 충조평판보다 귀를 열고 맞장구쳤다. 그렇게 3년을 보냈다.
지난 주말 아내가 뷔페에서 저녁을 먹자고 한다. 마다할 아이들이 아니다. 토요일에 학원 가는 게 늘 불만인 큰딸도 어느새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둘째 돌잔치 때 와보고 처음인 것 같다. 네 식구 한 끼 식사로 20만 원은 부담되는 비용이었지만 아내는 기꺼이 가자며 우리를 앞세웠다. 두 딸은 네댓 접시를 비우자 배가 부른 지 수저를 내려놓았다. 아내와 나도 근근이 다섯 접시를 채웠다. 더 먹을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그즘 아내가 아이들에게 이곳에서 저녁을 먹는 의미를 설명했다. 아내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지난 한 해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준 게 고마웠고, 올 한 해도 자기 역할하며 잘 지내보자는 의미로 자리를 마련했단다. 그리고 나도 한 마디 하라고 마이크를 넘겼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빠는 너희들에게 어떤 아빠니? 아빠에게 바라는 게 있을까?"
잠깐이라고 할 새도 없이 큰딸은 쌍따봉을 들어 보였다. 그리곤 덧붙인다. 지금이 제일 좋단다.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걸로 충분했다. 그간의 노력이 아이에게 전해진 것 같았다. 둘째도 마찬가지였다. 7살 때까지 아빠가 무서웠단다. 지금은 아니란다. 지금이 제일 좋다고 한다. 잘못 살지 않았구나 싶었다.
두 딸은 여전히 성장 중이다. 중2가 되는 큰딸,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는 둘째. 앞으로가 더 전쟁일 수도 있다. 아직 시작도 안 했을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적어도 못났던 아빠의 모습은 어느 정도 지울 수 있게 된 것 같다. 지금이 제로베이스라고 생각한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더 배우고 더 행동하고 더 노력하려고 한다. 대화가 통하고 신뢰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아빠로 진화할 것이다. 배우길 멈추지 않는다면 얼마든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게 아빠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2023. 01. 09. 0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