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큰딸과 데이트

by 김형준

2023. 01. 01. 08:00


1월 1일 태어난 둘째. 열 번째만에 생일 파티를 열어줬다. 아침부터 아내는 분주했다. 잔뜩 들뜬 둘째와 달리 큰딸은 동생 친구의 방문이 달갑지 않았다. 그나마 학원 가는 시간에 맞춰 집으로 불렀다. 나도 집에 없는 게 도와주는터라 큰딸이 학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 점심을 먹기로 했다.


메뉴 선택권을 딸에게 줬다. 돈가스가 먹고 싶단다. 주엽역에 가끔 갔던 정통과 맛을 자랑하는 돈가스 집으로 결정했다. 밖에서 단 둘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게 두 번째다. 큰딸이 초등학교 4학년 방학 때가 처음이었다. 그때도 돈가스를 먹었다. 아마 그때를 기억하고 돈가스를 먹고 싶다고 했을까?

중학교 1학년 딸과 마주 앉았다. 자주는 아니지만 학원을 데려다주는 5분 남짓, 저녁 먹는 사이 나누는 대화가 전부였다. 그때는 먼저 말을 걸어오기도, 내가 먼저 묻기도 했었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먼저 물었다. 수학을 놓지않고 잘 따라가는 게 대견하다고. 아빠는 중학교 1학년 인수분해를 배우면서 수포자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인수분해 그 쉬운 걸 왜 모르냐고 의아해한다. 그때는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묻는 법을 몰랐다. 수포자였지만 공학도를 선택했고, 직업으로 가졌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수포자가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설명해 줬다. 수학 때문에 건축공학과에서 건축설계학과로 옮겼다고 말했다. 각해보니 큰딸은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더 많다. 내가 먼저 설명해주는 친절한 아빠가 된다면 조금 더 거리를 좁히지 싶다.

그나마 수학대신 국어 영어는 나름 성적이 좋았다고 했다. 국어는 벌써부터 힘들어하는 눈치다. 가끔 국어가 어렵다고 하면 나는 단호하게 국어만큼은 포기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문해력이 모든 공부의 출발점이라 믿기 때문이다. 대신 영어는 제법 하는 하는 것 같다. 얼마 전 학원 레벨 테스트에서 반에서 1등 했다. 운이 좋았다고 겸손했다. 운도 실력일 테다.

동생 선물 사러 알라딘에 가자고 했다. 둘째는 언니에게 좋아하는 아이돌 앨범을 선물로 받고 싶다고 했다. 한 달 용돈의 1/3을 털어야 한다며 투덜댄다. 그래도 사주고 싶은지 기꺼이 앞장섰다. 흘리는 말로 아빠도 책을 살 거고 한꺼번에 계산하는 방법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한 마디로 아빠 찬스다.

나는 책을 고르고 큰딸은 앨범 코너로 갔다. 두어 바퀴 돌아도 눈에 들어오는 책이 안 보인다. 그사이 선물할 앨범을 손에 들고 온다. 대뜸 자기도 사고 싶은 앨범이 있다고 말한다. 그 말에 대놓고 안 된다고 못했다. 하나 더 고르는 동안 나도 책을 골랐다. 책 한 권에 앨범 두 개. 4만 원이다. 둘째 선물은 큰딸이 산 걸로 했다.

동생 친구가 돌아간 걸 확인하고 집으로 출발했다. 눈에 들어오는 간판 중 '임창정의 00 고깃집'을 보더니 정말 가수 임창정이 매장에 있냐고 묻는다. 아마 있지는 않을 거고, 프랜차이즈 매장이라고 말했다. 프랜차이즈가 뭐냐고 물었다. 예전의 나 같으면 프랜차이즈가 프랜차이즈라고 불친절하게 대답하고 말았을 거다. 친절하게 설명하는 게 익숙지 않았고 괜히 부끄럽기도 했었다. 아마 말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지금은 달라졌다. 묻는 말에 천천히 하나씩 설명했다. 들으면서 궁금한 게 생기면 또 물었다. 나도 또 천천히 설명해 줬다. 집에 가는 내내 프랜차이즈 사업 설명회 마냥 줄줄이 설명해 줬다. 처음 듣는지 중간중간 탄성을 내뱉기도 했다. 큰딸이 가끔 질문하는 게 수학 공식도 과학 이론도 아니다. 그저 나에게는 상식이고 먼저 알고 있는 것들이다. 여전히 모르는 게 많은 14살 소녀이다. 마찬가지로 아빠인 내가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해 주면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될 터였다.


해가 바뀌면서 큰딸은 그 무시무시한 중2가 된다. 중1은 무사히 잘 넘긴 것 같다. 지난 1년 동안 나와 아내 사이에서 큰 충돌 없이 잘 지내왔다. 물론 큰딸에게 사춘기 감성이 덜 왔을 수도 있다. 아니면 엄빠를 믿고 의지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 그래주면 더없이 감사하다. 나도 큰딸이 어릴 때 지은 죄가 있어서 그걸 속죄하는 마음으로 아빠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큰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또 딸에게 바라는 게 나를 위한 건 아닌지 한 번 더 고민한다. 무엇보다 말이 통하는 아빠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네들의 감성을 이해하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내가 옳다는 식의 일방통행은 지양하려고 한다. 그래서 들어주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듣고 난 뒤 할 말은 줄이고 또 줄인다. 내 기분에 내뱉은 말 치고 큰딸에게 공감받는 말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술을 끊어서 다행이지만, 술 마실 때 내뱉은 말이 대부분 공감받지 못하는 말들이었다. 항상 마른 정신으로 짧은 시간이라도 대화 다운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그 시간이 쌓이면 분명 더 속 깊은 대화도 할 수 있을 거로 믿는다.


2023. 01. 0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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