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Jan 26. 2023

나를 되찾는 마법 주문

2023. 01. 26.  07:35


눈이 오는 건 우리가 선택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출근길에 버스를 탈지 자가용을 이용할 지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내린 눈으로 인해 지각하지 않기 위해 평소보다 서두르는 것 또한 선택해야 합니다. 쌓인 눈을 탓한다고 도로에 차가 안 막히고 길이 안 미끄러워지는 게 아닐 겁니다. 이미 일어난 일은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다음 행동뿐입니다.


1년 동안 월급을 안 주고 버틴 사장을 증오했습니다. 끝까지 받아내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보상은 물론 형사 처벌까지 받게 하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듯한 태도에 더 화가 났습니다. 처벌을 피할 목적으로 해외에 체류한 것도 괘씸했습니다. 찾아가 머리끄덩이를 잡아끌고 오고 싶었습니다. 1년 넘게 이어진 다툼에도 받아야 할 돈에 절반만 받고 끝났습니다. 형사 처벌이 남기는 했지만 보상받을 방법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한편으로 그런 사장을 믿고 일 한 제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그렇게 사람 볼 줄 몰라서 어쩌나 싶었습니다. 가만히 보면 저는 사람을 잘 믿는 것 같습니다. 사탕발림인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믿어보고 결국 험한 꼴 당하고 끝이 납니다. 20대에 시작한 사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만 믿고 시작했지만, 믿은 사람 때문에 졸지에 백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제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잦은 이직으로 이력서가 볼품없었습니다. 면접 기회조차 갖지 못한 건 이력서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력서를 그렇게 만든 것도 결국 제 자신이지만 말이죠. 그래도 누군가는 기회를 줄 걸로 믿고 끊임없이 두드렸습니다. 튼튼한 회사 대신 불안하고 생기진 지 얼마 안 된 기업에서만 기회를 줬습니다. 그것 조차 감지덕지였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 이렇게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늘 더 좋은 직장을 찾아다녔습니다. 틈만 나면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면서 괜찮은 곳에 기웃거렸습니다. 노력만큼 좋은 직장에 다니지 못한 건 아마도 화장에만 신경 써서 인 것 같습니다. 당장 보여주기식의 자기 계발을 했지만 내놓을만한 성과는 없었습니다. 빈 수레였습니다. 늘 같은 과정을 반복하며 근근이 직장을 옮기는 제가 답답했습니다.


밖에서 새는 바가지, 안에서도 샙니다. 마음에 안 드는 직장을 억지로 다니니 없는 스트레스도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만든 스트레스를 술로 풀거나 혼자 꽁하고 있거나 아니면 아이들에게 풀었습니다. 태어난 죄 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온갖 잣대를 들이대며 잔소리를 가장한 화풀이를 했던 겁니다. 그때는 지질한 행동인지 조차 몰랐습니다. 부모니까 그래도 된다고 여겼습니다. 오발탄도 그런 오발탄이 없을 겁니다. 나를 보는 아내는 어땠을까요? 말해봐야 싸움만 난다고 포기했던 걸까요? 어떤 면에서 가만히 있어준 아내에게 고맙습니다. 만약 서로 화를 참지 못하고 부딪쳤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불행하게 말이죠. 변명이지만 그때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배우려는 마음도 노력도 안 했습니다. 그저 내 기준대로 아이를 키우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미련하게 말이죠.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이전과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글로 당당하게 말할 정도면 분명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마법 주문 덕분입니다. 이 주문을 알고 시작했던 건 아닙니다. 책과 주변에서 말하기를 과거의 나를 돌아봄으로써 스스로 달라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되면서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믿고 지난 5년 동안 과거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의 나에게 불만이 많았던 건 아마도 내 선택이 틀렸기 때문일 겁니다. 사람을 쉽게 믿는 탓에 1년 치 월급이 밀려도 버텼고, 사람을 좋아한 탓에 배신도 감당해야 했습니다. 나를 통제할 줄 몰라 애꿎은 아이들에게만 화를 냈습니다. 그런 선택도 행동도 모두 내 탓입니다. 


"내 탓이오."

과거 일어난 모든 일은 내 탓입니다. 누가 시켜서 그랬던 게 아닙니다. 세상 물정 몰랐다는 건 변명일 뿐입니다. 탓한다고 과거가 바뀌지 않습니다. 눈이 내리는 게 내 의지와 상관없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해져 있습니다. 과거의 실수가 무엇인지 알았다면 반복하지 않으면 됩니다. 사람을 만나면 두 번 세 번 자신에게 물어보고, 늘 내 감정이 어떤지 들여다보고, 부족한 걸 채우기 위해 공부하는 겁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앞으로 내릴 선택입니다. 또다시 내 탓하지 않을 그런 선택입니다. 그런 선택들이 분명 이전보다 나은 인생으로 이끌어 줄 거로 믿습니다. 여전히 진화 중이며 더 나아질 제 자신이 그 증거가 돼 보려고 합니다.  


2023. 01. 26.  10:47

매거진의 이전글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